바보야
학생시절, 군대시절, 회사원이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늘 어딘가 조금 물리적으로 '아팠습니다'.
많이 아픈 것은 아니고 늘 피곤하고, 비염이 있거나, 위염이 있거나, 감기에 곧잘 걸리고, 스트레스 때문에 피곤을 항상 겪는 정도로 '몸이 좀 약한 편이네' 얘기를 종종 듣곤하는 그런 아픔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무살 무렵부터 무릎이나 발목에 염증이 자주 생겼습니다. 관절염은 엑스레이나, 한의원에서나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격렬하게 몸을 쓰지도 않았고, 나이도 어린데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려니 하고 약을 달고 살았고, 운동은 늘 귀찮았고, 적극적인 치료는 돈과 게으름에 뒷전으로 밀려서 살았습니다.
재작년 참기 힘든 통증이 찾아왔고, 그제서야 제가 오랫동안 이어진 나쁜 자세 때문에 척추측만과 거북목 그리고 골반이 틀어진 상태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굳게 마음을 먹고 2015년 한해 동안 온갖 보험을 끌어 당겨서 재활치료에 전념했습니다.(연봉의 반 가량의 치료비가 나왔…) 차도는 더디었고, 여전히 늘 피곤하고 아팠고, 농담 삼아서 "퇴사하면 다 나을거야"라는 얘기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정말로 퇴사를 한 다음날, 너무도 고역이었던 9시 출근이 언제였냐는 듯 아침 7시 반에 상쾌하게 눈이 떠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 브런치에 썼듯이(#3, 2주차 퇴사인 조언을 구합니다.) 매일 약속을 다섯개씩 잡아가면서 인사를 드리고 다녔습니다.
몇 일이 지나지 않아서 "쿵", 다시 돌아온 뒷목의 통증. 이틀을 뻣뻣하게 지내고 보니, 누군가가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바보야, 문제는 체력이야
네가 이루고 싶은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네가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럼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그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 밖에 안돼
(드라마 '미생' 중에서)
저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에너지가 매우 많이 들 것 같습니다. 우선은 온전히 에너지부터 모아야 하기에 매일 운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운동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지만, 매일 팔다리에 느껴지는 근육통 사이에서 오히려 만나고 싶은 친구를 더 마음 편히 만나고, 읽어야 하는 것을 더 차분히 읽고, 고민을 더욱 깊게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일은 내 몸이 얼마나 더 건강해 질 수 있을까'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이런 즐거운 생각을 하며 잠에 들고, 아침에 햇빛이 이렇게 밝았던가 느끼면서 알람없이 눈을 뜹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생활이 유지될 정도의 적은 돈을 벌면서 내가 바라는 것을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건강한 활력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내 삶의 마지막인 것 처럼 살자는 목표아래, 매일의 Routine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난 2주간 매일 거르지 않고 지키고 있습니다.(+-30분쯤의 편차는 애교인 것으로….)
8시부터 10시까지 운동을 합니다.
10시부터 12시까지 책을 읽습니다.
점심은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먹으며 생각과 고민을 나눕니다.
오후 시간은 회계일이나, 의류와 관련한 공부, 컨퍼런스 구경, 가끔 약속 등을 합니다.
틈틈이 생각을 기록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브런치를 씁니다.
저녁 시간은 간단한 약속을 잡거나, 충분히 쉬거나, 피아노를 연습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11시에 잠에 듭니다.
토요일은 항상 합주를 하고, 일요일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거나, 집을 정리하면서 쉽니다.
질투와 비교하기를 목적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부의 축적과 명예 보다는 삶의 각 요소가 주는 풍요로움을 온전히 즐기며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주도적으로 내 삶을 나에게 주고 싶습니다.
"말은 쉽지"라는 그 것들을 말로 끝내지 말고 실행할 수 있도록 매일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퇴사 3주째, 한껏 체력을 키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