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1989년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 계획을 수립한다.
당시 1세대 통신인 아날로그 통신의 적체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441억 원을 투입해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1991년 5월 17일 체신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전파육성협의회에서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 계획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연구개발을 맡은 전자통신연구소(현 ETRI)가 미국 퀄컴에 1천698만 달러(당시 약 120억 원) 로열티를 지불하고 1993년 10월까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복안이다.
체신부의 갈팡질팡에 업계도 술렁였다. 업계뿐만 아니라 1년간 TDMA를 연구한 성과가 사장될 수도 있고, 잦은 연구자 교체로 인한 어려움도 지적됐다.1)
하지만 체신부는 완강했다.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아날로그 이동통신 시스템이 1993년이 되면 주파수 자원 고갈로 인해 적체가 예상됐기 때문. 1996년까지 시간이 다소 소모되는 자체 개발보다는 해외 기술을 도입해서라도 당장 적체 위기를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CDMA는 TDMA와 달리 실험실 수준으로 상용화를 예단할 수 없었기 때문. 최첨단 기술임에는 분명 하나 상용화 가능성이 확실치 않은 이동통신 시스템을 가져와 자칫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체신부는 이 같은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14억 원을 투자해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퀄컴 본사를 찾아 현장실험에 참관한 뒤 결과를 분석해 공식 기술 도입 계약을 맺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이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이전에 TDMA 연구 개발한 성과가 있으니, 다시 TDMA로 선회할 수 있다는 차선책을 세웠다.
1세대 아날로그 통신은 주파수분할방식(FDMA)이다. 말 그대로 주파수를 분할해서 사용한다.
기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나 가정을 한다면 800~900MHz 주파수에서 805~810MHz를 A 사용자가 쓰고 815~820MHz은 B 사용자가 쓰는 것과 유사하다. 이동통신으로 배분된 주파수를 각 사용자가 쪼개서 통신한다.
만약 사용자가 100명이라면 각 사용자가 1MHz 만큼을 통신에 사용하게 되고 1천 명이라고 하면 0.1MHz 만큼을, 1만 명이라면 0.01MHz 만큼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주파수 대역이 좁아질수록 통화품질이 떨어지고 간섭도 많아져 효율적은 통화가 어렵게 된다. 즉, 수용량 초과로 인한 적체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다중접속이 가능한 통신방식 개발에 나섰다. 대표적인 다중접속 방식으로 시분할다중접속방식(TDMA)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꼽을 수 있다.
FDMA가 주파수라는 공간을 활용한 기술이라면 TDMA는 시간을 활용한다. 주파수 대역 모두를 쓰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다. 대신 전송되는 데이터를 시간순으로 보낸다.
예를 들어 기지국에서 해당 주파수 대역을 모두 사용해 특정 데이터(원본)를 보낸다고 가정한다면 이 데이터를 시간순으로 분할해 보낸다. 12시에 보낸 분할 데이터에 ‘A’라는 라벨을 붙이고 12시 1분에 보내는 분할 데이터에는 ‘B’라는 라벨을, 12시 2분에 ‘C’ 라벨을 붙이고 다시 12시 3분에 B 라벨을 붙인 분할 데이터를 보내면 라벨별로 해당되는 A, B, C 사용자를 찾아간 후 분할된 데이터가 원래 모습으로 조합돼 통화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주파수 대역 전부를 이용하기 때문에 속도는 더 빨라지고 시간순으로 분할돼 잡음에도 강하다. 다중접속 수용량 역시 높아진다. 대체적으로 속도는 3~10배가량, 수용량도 3~6배가량 향상된다고 알려졌다.
FDMA가 공간, TDMA가 시간을 활용한다면, CDMA는 시공간 모두에 대한 제약에서 벗어난 기술방식이다. 즉, 모든 시간에 모든 주파수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속도와 수용량이 늘어난다. 수용량은 FDMA 방식 대비 20배가량 향상된다. 이 때문에 TDMA 방식보다 진일보한 기술로 평가받았다.
CDMA는 사용자에게 임의의 코드를 주고 그 코드를 이용해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방식이다. 암호화한 데이터를 사용자가 전송받아 푸는 형태다. 즉, 암호화된 데이터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주파수 대역을 활용해 퍼트리면 사용자가 자신의 코드에 맞는 데이터만을 받아서 풀어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영화배우 소피 마르소의 데뷔작인 영화 ‘라붐’을 들 수 있다. 친구들의 초대로 파티에 가게 된 빅(소피 마르소)은 시끄러운 디스코 음악에 빠져 있는 사람들 틈에 서 있는다. 이때 잘 생긴 남학생인 마티유(알렉산드르 스텔링)가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Reality)’가 흐르는 헤드폰을 빅에게 씌워준다. 더 이상 시끄러운 디스코 음악을 사라지고 빅은 ‘리얼리티’ 음악만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즉, 마티유(기지국)가 씌워 준 헤드폰(코드)은 빅(사용자)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데이터)이 되는 것. 나머지 시끄러운 디스코(다른 코드들이 부여된 수많은 데이터들)는 잡음이 돼 사라진다.
다만, TDMA의 경우 당시 상용화 수순을 밟는 기술방식이었던 데 비해 CDMA는 실험실 수준으로 상용화 가능성이 불확실했다. 즉, 시간 상 TDMA는 이르게 도입이 가능했으나 CDMA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 개발과정과 글로벌 채택 여부, 시간에 따른 효율성 등에 대한 이견이 오고 가게 됐다.
체신부의 바람대로 1991년 8월 20일 ETRI는 CDMA 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 퀄컴과 기술협약을 체결했다. CDMA 방식에 대한 대도시 지역 통신망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하는데 참여하기로 했다.2)
ETRI가 자체 개발한 TDX 10 전전자교환기와 연결해 이동전화교환국의 기능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1~3단계로 통신망을 확정하고 설계하는데 18개월을, 통신망을 실제 구축하는 4단계로 나아가 1993년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사이 미국 통신산업연합회(TIA)가 북미잠정표준방식으로 TDMA를 선정해 1992년 상반기 상용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3) 국내서는 여전히 CDMA를 밀어붙였다. 또한 CDMA를 조건에서 제외한 제2이동통신사 선정이 불발됨에 따라 절치부심한 체신부는 이동통신 단일 표준화 기술을 발표하게 된다.
이로써 1992년 12월 3일 CDMA가 국내 이동통신 단일 표준화 기술로 확정되기에 이른다.
1) <디지틀이동통신 개발 체신부 '갈팡질팡'>, 한겨레, 1991. 5.21.
2) <미 쿠알콤사와 기술협약 전자통신연>, 매일경제, 1991. 8.20.
3) 서정희 기자, <인터뷰 미 CTIA 기술분과위원장 존 스텁커씨 "이동통신 RDMA식 바람직">, 매일경제, 199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