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부. IoT 시대 도래
올아이피(All-IP) 시대의 도래는 단순한 속도의 경쟁을 넘어, 통신의 대상을 인간에서 사물로 확장시켰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이 각광받기 시작하자, 이동통신사들은 기존의 가입자 점유율 싸움에서 벗어나 '연결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로드맵을 전개했다. 그 중심에 선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로라(LoRa)’였다.
‘Long Range’의 약자인 로라는 광범위한 커버리지, 극도로 낮은 대역폭, 그리고 최소 10년 이상을 버티는 배터리 수명을 특징으로 하는 저전력 장거리 통신기술(LPWA)이다. 당시 업계가 요구한 표준의 조건은 가혹했다. 지하 깊숙한 곳까지 전파가 닿아야 했고, 모듈 제작 비용은 5달러 이하여야 했으며, 수십억 개의 단말을 수용할 수 있는 확장성이 필수였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유력한 후보군으로는 유럽의 ‘시그폭스(Sigfox)’도 있었으나, 한국 시장의 선택은 로라로 기울었다. 10Kbps 수준의 낮은 속도지만, 비면허 대역을 활용해 경제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잡겠다는 계산이었다.
로라가 한국 이동통신 연대기의 주연으로 등장한 시점은 2015년 12월이다. 대한민국 1위 사업자 SK텔레콤이 아시아 이통사 중 최초로 ‘로라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며 선공을 날렸다. 당시 로라 얼라이언스의 스탈 피터슨 의장이 직접 환영사를 보낼 만큼 SK텔레콤의 가입은 로라 진영의 글로벌 확산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그로부터 반년 뒤인 2016년 5월, SK텔레콤은 ‘조기 상용화’라는 승부수를 던졌다.1) 대구시를 IoT 테스트베드로 삼아 도시 전역에 로라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원격검침·위치추적·모니터링이라는 3대 핵심 분야를 설정했다. 계획보다 한 달가량 늦어진 2016년 7월, 마침내 로라 전국망 상용화가 공식 선포됐다.
흥미로운 지점은 경쟁사들의 반응이었다. SK텔레콤이 비면허 대역인 로라를 통해 독주를 시작하자, 전통의 라이벌 KT와 LG유플러스는 이례적으로 손을 맞잡았다. 이들은 로라의 '비면허 대역' 특성을 공격했다. 주파수 간섭 발생 확률이 높고 보안성이 취약하며, 무엇보다 새로운 망을 처음부터 다시 깔아야 한다는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대신 기존 LTE 망의 면허 대역을 활용하는 ‘NB-IoT’를 대안으로 내세우며, '로라 진영 vs NB-IoT 진영'이라는 거대한 기술 표준 전쟁의 구도를 형성했다.
로라의 상용화는 통신 요금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했다. SK텔레콤이 발표한 IoT 전용 요금제는 월 350원에서 2,000원 수준이었다. 한 시간에 단 한 번 소량의 데이터를 보내는 가스 검침기라면 연간 약 3,000원대의 비용으로 운영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기업간거래(B2B) 시장에 폭발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
SK E&S의 양방향 가스 원격검침(AMI)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의 모니터링 시스템, 쏘카의 커넥티드카 구현 등 산업 현장에서 로라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했다. 일상에서도 변화는 감지되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수로 모니터링에 로라를 도입했고, AJ네트웍스는 렌털 자산 관리에 이를 접목했다.
또한, T오픈랩을 통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테스트룸과 디바이스를 대여하며 대구시를 중심으로 한 IoT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2016년 10월에는 로라 국제 연합체 세계 총회를 서울에 유치하며, 한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IoT 시장의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했다.
로라 전국망 상용화는 한국이 ‘속도’ 중심의 이동통신에서 ‘연결의 밀도’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역사적 사건이다. 비록 이후 면허 대역 기반의 NB-IoT와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며 시장이 파편화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 축적된 저전력 통신 노하우와 저가형 요금제 모델은 훗날 5G 기반의 Massive IoT 시대를 여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로라가 쏘아 올린 ‘사물과의 대화’는 이제 단순한 모니터링을 넘어 인공지능이 결합된 AIoT로 진화하고 있다. 소리 없이 세상을 연결하던 로라의 주파수는, 이제 더 거대한 초연결의 바다로 흘러가 다음 세대인 5G의 지평을 암시하고 있었다.
2015년 초: IBM, 셈테크, 마이크로칩 등 주도로 로라 얼라이언스(LoRa Alliance) 구성
2015년 6월 16일: 첫 번째 표준 규격 'LoRaWAN R1.0' 발표
2015년 12월: SK텔레콤, 로라 얼라이언스 가입 (아시아 이통사 중 최초)
2016년 3월: SK텔레콤-대구시, IoT 테스트베드 구축 및 로라 네트워크 구축 협약
2016년 5월: SK텔레콤, 로라 조기 상용화 계획 및 3대 전략 분야(검침, 추적, 모니터링) 발표
2016년 7월: SK텔레콤, 세계 최초 로라 전국망 상용화 선포 및 전용 요금제 출시
2016년 7월 14일: 프랑스 니스 '한-EU IoT 협력 회의' 참석, 글로벌 로밍 시스템 개발 협력
2016년 9월: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에 로라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 적용
2016년 10월 11일: 제6회 로라 국제 연합체 세계 총회 서울 개최
2016년 11월: KT-LG유플러스, NB-IoT 상용화 공동 협력 선언 (로라 대항마 동맹)
1) 김문기 기자, [통신돋보기] "5G시대 IoT 혁신"…로라(LoRa) 도입기, 아이뉴스24, 2018.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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