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부. 코로나19, 멈춰선 일상
2020년 4월 8일, 넷플릭스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는 전 세계 통신 업계가 경악할만한 논리가 담겨 있었다. 핵심은 '전송의 무상성'이었다. 넷플릭스는 인터넷 생태계의 기본 원칙을 근거로 자신들에게는 망 이용료를 낼 법적 의무가 없음을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소송 초기, 넷플릭스의 논리는 명확했다. 인터넷 구조를 '접속(Access)'과 '전송(Delivery)'으로 분리해 해석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미국 내 ISP(예: 코젠트 등)에 접속료를 지불하고 인터넷에 연결되었으므로, 그 이후에 트래픽이 SK브로드밴드(SKB)망을 타고 이용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전송'의 영역이며 이는 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빌 앤 키프(Bill-and-Keep, 무정산 원칙)'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ISP들이 서로 트래픽을 주고받을 때 별도의 정산을 하지 않는 관행이 있으며, 한국의 SKB 역시 자신들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되는 '이중 과금'이라고 비판했다.
SKB와 국내 기술진은 즉각 반박했다. 넷플릭스의 논리가 대등한 규모의 대형 ISP(Tier-1) 간의 관행을 콘텐츠 사업자(CP)와 망 사업자(ISP) 사이의 관계에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기술적 접점인 '피어링(Peering)'이 쟁점이 됐다. SKB는 넷플릭스가 일본이나 홍콩 등지의 IX(인터넷 교환 지점)에서 자사 망과 직접 연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반적인 인터넷 전송(Transit)이 아니라, 대량의 트래픽 처리를 위해 통신사의 전용 차선을 직접 빌려 쓰는 구조이므로 이에 따른 망 이용료 지불은 당연한 상거래의 기본이라는 논리였다.
넷플릭스는 소송 과정에서 자신들의 캐시 서버 기술인 '오픈커넥트(OCA, Open Connect Appliance)'를 강력한 방어 카드로 사용했다. ISP의 망 내부에 OCA를 설치하면 해외망 트래픽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으므로, 이것이 곧 망 이용료를 대신할 수 있는 기여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SKB는 OCA 역시 통신사 망 내부에 설치되는 장비이며, 그 장비가 차지하는 공간(Colocation)과 전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용자까지 도달하는 국내 구간의 트래픽 비용은 여전히 통신사가 부담하고 있다고 맞섰다. OCA는 트래픽의 '전달 경로'를 효율화할 뿐, 망 사용에 대한 '대가' 자체를 소멸시키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라는 분석이었다.
법정 공방이 격화되던 2020년 5월 20일, 국회는 마침내 움직였다.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른바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 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CP들에게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여했다.
이는 망 이용료를 직접적으로 강제하는 법안은 아니었으나, "콘텐츠만 던져주면 끝"이라는 글로벌 CP들의 태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 넷플릭스가 소송으로 시간을 벌려던 시점에, 입법부는 오히려 "망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CP도 책임이 있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우며 통신 주권을 옹호했다.
피어링(Peering): 네트워크 사업자 간에 서로 트래픽을 직접 교환하는 방식. 보통 트래픽 양이 대등할 때 무상으로 하지만, 불균형이 심할 경우 유료(Paid Peering)로 전환된다.
트랜짓(Transit): 하위 ISP가 상위 ISP의 네트워크를 거쳐 전체 인터넷에 연결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통로.
빌 앤 키프(Bill-and-Keep): 두 사업자가 서로 주고받는 트래픽의 대가가 비슷하다고 보고 정산을 생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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