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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시 쓰는 한국 이동통신 연대기1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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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May 27. 2023

(27) LGT vs 하나로…동기 IMT-2000 확정

8부. 3세대 이동통신(IMT-2000)

2001년 3월.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동기식 IMT-2000 사업자 선정 무기한 연기 등의 책임을 물어 경질됐다. 대신 전문역량을 인정받은 양승택 정보통신대학원 대학교 총장이 신임 장관에 올랐다. 1992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으로 CDMA 이동통신 기술을 개발한 '정보기술통'으로 불렸다.

즉, 동기식 사업자들에게 동기식인 CDMA 이동통신 기술을 개발한 양 장관은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전문가의 등장에 따른 통신구조 개편도 가속화될 수 있었다. 주식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기대감은 상당했다.

실제 양 장관의 취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동기식 IMT-2000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비동기식 사업자 선정은 잘못됐지만 이미 지나간 일로 돌이킬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도, 동기식 사업자 선정만큼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 발표했다.

양 장관의 발언에 따라 그간 공모 후보군들이 끊임없이 요청했던 ▲출연금 삭감 ▲동기식 사업자 보호에 힘이 실렸다. 하나로통신도 꾸준히 출연금 인하를 주장해왔으나, 무엇보다 참여 명분이 필요했던 LG그룹에게는 호재였다. LG텔레콤은 3월 24일 개최된 주주총회에서 참여조건만 완화된다면 동기식 사업을 독자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1)

분위기가 반전되자 LG텔레콤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4월이 되자 변규칠 LG텔레콤 회장과 남용 LG텔레콤 사장은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을 직접 찾았다. 조건이 맞을 경우 동기식 사업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조건은 출연금 인하와 제3이동통신사업자가 점유율 20%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정보통신부는 즉각 화답했다.2) SK텔레콤과 한국통신 2강 체제로 가게 된다면 이 둘을 막을 수 있는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1조 원에서 1조 5천억 원에 이르는 출연금의 5분의 1 수준인 2천200억 원까지 낮출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게다가 국회 상임위에도 이 같은 뜻을 전달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유상증자에도 참여하지 않고 최악의 경우 매각까지 고려했던 LG그룹은 고민에 빠졌다. 일단 우물에 빠진 LG텔레콤을 살려보자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3) 이에 따라 LG텔레콤은 자체적으로 20~30명의 직원을 모아 IMT-2000 사업추진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렸다. 남용 사장은 바빠졌다. 하나로통신과 파워콤 등을 만나 컨소시엄 구성에 힘을 쏟았다.

다만, 동기식 사업 재도전에 나선 하나로통신 입장에서는 정보통신부와 LG텔레콤의 밀월이 달갑지 않았다. 정보통신부가 LG텔레콤을 사전 지명하는 것은 절차에 맞지 않은 특혜라 반발했다.

정보통신부는 즉각 해명했다. 특정업체에 대한 편들기가 없다고 손사래 쳤다. LG텔레콤 역시 그랜드 컨소시엄 마련이 대안이라면 독자 추진을 포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몇 차례 특혜 시비에 휘둘린 바 있는 정부와 재벌이기에 하나로통신의 지적은 따가웠다.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양보란 없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ITU 텔레콤아시아 2004"전시회에서 유럽지역 바이어들이 LG 3세대 휴대폰을 시연하고 있는 장면. [사진=LG전자]

이 둘의 갈등은 수면 아래서 뿐만 아니라 밖으로도 돌출됐다.

남용 LG텔레콤 사장은 5월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나로통신이 그랜드 컨소시엄의 부사장 자리를 요구하고 있다며 작심발언을 이어갔다. 하나로통신 역시 지지 않고 재벌에 대한 특혜를 멈추라고 비난했다. LG를 중심으로 SK텔레콤과 한국통신 이외에 통신 관련 기업들을 모아 3강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정부만 중간에서 식은땀을 흘렸다.4)

무게추가 LG로 기우는 듯하자 신윤식 하나로통신 사장은 5월 30일 양승택 장관을 만나 중재를 요청했다.5) 하나로통신의 요구사항은 IMT-2000 컨소시엄이 LG계열사로 편입하지 않는 신규 법인이 돼야 하며, 하나로통신이 부사장급 상임이사 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결과적으로 하나로통신이 IMT-2000에 대한 경영권을 동등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LG텔레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IMT-2000 컨소시엄을 독립법인화시켜 경영권을 나눈다면, 사전에 계획했던 LG텔레콤 흡수합병보다 더 복잡해진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도 소모된다. 사전합병을 반대하는 것조차도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양측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됐다. 그렇다고 정부가 개입할 수는 없었다. 또 다시 특혜시비에 휘말릴 수 없었다.

정보통신부는 앞서 대통령에 보고한 ‘종합통신사 3강 구도’ 카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양 정통부 장관은 6월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상임위원회에 출석해 LG텔레콤과 하나로통신, 파워콤, 데이콤을 아우르는 사업계획서가 제출되지 않을 경우 사업권을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6)

동기식 사업자 선정은 3강 구도를 만들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제3종합통신사를 세울 수 있다면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 공동 사업 추진 등 그 방법에 대해서만큼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LG텔레콤의 사전합병도, 하나로통신의 경영권 분할도 3강 구도재편 앞에서는 작아지는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설왕설래가 국민들을 위함이 아닌 각자의 이해관계를 풀기 위한 공방이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LG텔레콤, 하나로통신 등 따끔한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들만의 리그가 진행될수록 실제 통신 서비스 고객이 될 국민들은 병풍 뒤로 밀려났다.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정부 ▲특혜시비와 로비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LG ▲합리적인 계획과 재무 건전성을 내놓지 않고 양측에서 실익만 챙기려고 하는 하나로통신 등 모두에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7)

결국 LG텔레콤과 하나로통신은 한 발씩 물러났다. 하나로통신은 그간 주장했던 경영권과 부사장직 등을 내려놓고, LG텔레콤은 양측의 오해를 해소하고 실무차원의 협력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선언했다.

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LG텔레콤 메시지 매니저 4종을 선보이는 모습 [사진=LG텔레콤]

마침내 7월 10일 LG텔레콤과 하나로통신이 독자 추진한 컨소시엄이 통합의 첫 단추를 끼웠다.8) ‘동기식 IMT-2000 그랜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위원장을 두지 않고 함께 공동간사를 내세웠다. 사전합병도 논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LG텔레콤의 무선과 하나로통신의 유선시설의 공동 활용과 공동 마케팅과 서비스를 전개하기로 했다.

정보통신부는 내심 흐뭇했다. 비용절감 효과와 매출액 증대 등을 포장해 두 진영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간의 숙제였던 제3종합통신사가 한걸음 더 나가게 됐으니 아니 기뻐할 수 없었다.

남은 건 행정적 절차뿐이었다. 2001년 7월 25일 마침내 정보통신부는 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계획을 발표했다.9) 8월 중 사업자 공모와 선정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 출연금은 초기 2천200억 원을 납부하고 나머지 9천300억 원은 이용기간인 15년 동안 분할 납부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사업자 공모가 시작된 8월 4일 동기식 IMT-2000 그랜드 컨소시엄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10) LG텔레콤을 중심으로 하나로통신과 LG전자, 현대차, 기아차, 한국IT중소벤처기업연합회(PICCA), 데이콤, 파워콤, 두루넷 등 1천49개 업체가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심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8월 25일 정보통신부는 동기식 그랜드 컨소시엄이 81.133점을 획득해 허가대상법인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11)

남용 LG텔레콤 사장은 사업자 선정 결과와 관련해 합의 도출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오해를 풀고 순항해 좋은 결과를 냈다고 밝혔다. 또한 비동기식 대비 동기식에 대한 경쟁역량이 높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