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1999년 11월.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본격화.
인수 소식이 들리자마자 다른 한 곳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통5사 중 점유율 면에서 막내였던 한솔PCS 인수도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솔PCS 인수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데는 핵심 주주인 캐나다 통신기업 벨캐나다(BCI)가 1천억 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하면서 대주주로 올라선 게 발단이다. 이에 따라 BCI는 23.3%를, 한솔은 16.75%로 2대 주주에, 미국 투자펀드 아메리칸인터네셔널그룹(AIG)는 15.54%로 3대 주주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장을 들썩이게 한 건 BCI와 AIG가 한솔PCS 보유지분 매각을 위해 미국 증권시장 전문딜러에게 매수자 탐색을 문의한 사실이 국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매수자 중 유력한 기업은 다름 아닌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으로 확인됐다.
즉 PCS 사업자 간 인수합병 가능성이 현실화된 셈이다.1)
그 사이 한솔PCS는 1999년 12월 15일 이사회를 개최해 사명을 ‘한솔엠닷컴’으로 바꿨다. ‘원샷 018’ 브랜드도 ‘엠 라이프 018’로 전환시켰다. 모바일(Mobile)과 밀레니엄(millennium)을 조합한 사명으로 인터넷에서도 앞서갈 것이라는 의지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정보통신부가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합병을 심사하고 있는 동안에도 한솔엠닷컴의 매각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2000년 3월 25일 공시된 내용에 따르면 한국통신프리텔은 이동통신업계 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 등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솔제지 역시도 매각과 관련해 매각타당성과 매각처, 매각조건 등에 대해 검토하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시했다.
다만, 이 둘의 공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이 없다는 의미는 인수합병을 추진 중에 있으나 정확하게 인수하겠다는 판단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검토' 조차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사실상 인수합병을 계획 중이라고 밝힌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같은 해 3월 30일 피더 본필드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 회장이 LG그룹 경영진을 만나러 한국을 찾아 한솔엠닷컴 인수문제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통신프리텔뿐만 아니라 LG텔레콤 역시도 이번 인수합병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도 BT는 LG텔레콤의 주주로서 한솔엠닷컴 인수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를 기정사실화 했다.2)
두 진영의 한솔엠닷컴 인수합병 작업은 갑작스럽다기보다는 이전부터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는 작업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한국통신프리텔은 1999년부터 한솔엠닷컴 인수 추진팀을 꾸려 진행하다 모기업인 한국통신의 추진팀에 흡수돼 단일화되면서 세를 키웠다. LG텔레콤도 마찬가지로 LG그룹 내 구조조정본부 산하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다각도로 인수 작업을 병행해 왔다.
결과적으로 한솔엠닷컴의 인수는 PCS 사업자인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의 손을 떠나 각각 그룹 차원에서 전략을 세울 정도로 중요한 사업으로 부상했다.
인수합병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됐으나 당사자인 한솔엠닷컴은 조용했다. 하지만 이같은 세간의 관심을 견디지 못한 한솔엠닷컴은 마침내 입을 열였다. 2000년 3월 31일 정의진 한솔엠닷컴 사장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수합병 관련 담화문’을 전달했다. 주요 내용운 “당사(한솔그룹) 대주주와 외국인 대주주가 보유 지분에 대한 양도 필요성을 고려해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이라는 문구로 요약됐다.2)
초기 인수합병의 바람은 한국통신을 향해 불었다. 하지만 한국통신이 그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한국통신은 공기업으로 시작해 인수합병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했기 때문. 상대적으로 기업 인수합병에 노련함을 갖춘 LG텔레콤은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LG텔레콤은 한국통신 대비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등 공격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다만, LG텔레콤도 견고하게 성을 쌓지는 못했다. 지원을 약속했던 BT가 느닷없이 매각자금 문제로 난색을 표했다. 등을 맡길 기업이 사라지면서 인수합병은 원점으로 회귀했다.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의 헛발질이 계속되는 동안 한솔엠닷컴은 서서히 말라갔다. 인수합병이라는 거대 파고를 넘어야 하는 한솔엠닷컴 입장에서는 시간이 바로 금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입자는 줄어들고 주가는 흔들렸다. 누가 인수합병 당할 기업에 가입할 수 있을까.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절치부심한 한솔엠닷컴은 독자노선을 걷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에 좌고우면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3)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독자노선 선언은 1개월도 채 가지 못했다. 6월 9일 IMT-2000 사업자 선정방식 토론을 위해 참석한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계철 한국통신 사장을 언급하며, 8일 정통부에 한국통신의 한솔엠닷컴 인수합병을 보고받았다고 알렸다. 이에 정통부는 인수 후 외자유치 활성화와 민영화 계획을 보완해 재보고 할 것을 지시했다.4)
또한 이날 한솔엠닷컴은 한국통신에게 한솔제지와 BCI, AIG 지분 전량을 한국통신이 보유한 SK텔레콤 주식 일부와 현금으로 교환한다는 조건의 인수계약서에 사인했다.
아울러 6월 15일 한국통신은 힐튼호텔에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인수계약과 더불어 한국통신프리텔과 한솔엠닷컴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되, IMT-2000 사업에 따라 양사 합병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승인했다. 정통부 민영화 조건도 있었기에 정부의 한국통신 지분을 59%에서 올해 내 33.4%까지 낮추기로 했다. 외자 유치는 한솔엠닷컴 지분 15%를 매각해 1조 5천억 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솔엠닷컴 역시 이사회를 개최해 해산을 결정했다.5)
7월 28일 한국통신 소속 한솔엠닷컴은 사명을 변경했다. ‘한국통신엠닷컴’, 줄여서 한통엠닷컴으로 불렸다.6)
무선통신 전문 자회사로 출발한 한통엠닷컴은 기존 브랜드도 ‘M018’로 변경했다. 한국통신과 한국통신프리텔을 등에 업은 한통엠닷컴은 사상 최초로 분기 흑자를 일궈 내기도 했다. 가입자도 연말까지 3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통신프리텔과 한통엠닷컴의 합병은 기정사실이었기는 하나 실제 합병 시기는 구체적 언급 없이 내년으로 미뤘다. 하지만 IMT-2000 사업자 선정이 변수로 작용했다. 사업자 선정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한국통신은 한국통신프리텔과 각자 구성한 컨소시엄을 흡수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한통엠닷컴 역시 포함됐다. 자연스럽게 프리텔과 엠닷컴의 합병도 가속화됐다. 최종적으로 통합 컨소시엄은 9월 8일 확정됐다.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통신은 마무리 짓지 못한 한통엠닷컴의 지분 인수를 정리하는 한편, 네트워크 부문부터 서비스까지 조직 통합을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수차례 조직과 인사개편에 나섰다. 많은 인원들이 프리텔과 엠닷컴을 오고 갔다.
마침내 11월 7일 한국통신프리텔과 한국통신엠닷컴은 공식 합병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두 회사의 가입자수는 818만 명, 시장점유율은 31%에 달했다. 합병회사는 이용경 한국통신프리텔 사장이 맡기로 했으며 정의진 한통엠닷컴 사장은 합병회사 부사장으로 보직됐다.7)
이로써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한국통신프리텔과 한통엠닷컴, LG텔레콤의 3자 구도가 형성됐다. 점유율은 5:3:2. 춘추전국시대를 넘어 삼국이 정립된 초입이기도 하다.
다만, 막판까지 합병이 쉽지는 않았다. 주식시장 침체로 인해 당초 예정했던 합병시기를 연기했다. 해를 넘긴 2001년 1월 12일이 돼서야 한국통신프리텔은 한국통신엠닷컴 흡수합병을 발표하고 합병기일을 5월 1일로 공식화했다. 양사는 3월 7일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합병 최종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합병 절차에 돌입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2001년 5월 1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솔PCS(한솔엠닷컴, 한통엠닷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합병법인인 KTF는 이튿날인 2일 공식 합병선포식을 갖고 출범했다.8) 국내 2위 이동통신 사업자인 한국통신프리텔의 지위를 보다 공고히 한 날이다.
1) 이훈 기자, <LG텔레콤-한통프리텔 한솔 노린다>, 동아일보, 1999.12.30.
2) 정종태 기자, <한솔엠닷컴, 매각 의사 공식적으로 밝혀>, 한국경제, 2000. 3.31.
3) 최용성 기자, <한솔엠닷컴, 독자 생존모색 결정>, 매일경제, 2000. 5. 4.
4) 임규준 서양원 기자, <한통, 한솔엠닷컴 인수합의...정부 민영화 조건부로 승인>, 매일경제, 2000. 6.10.
5) 류현성 기자, <한국통신, 한솔엠닷컴 인수(종합)>, 연합뉴스, 2000. 6.15.
6) 서양원 기자, <한솔엠닷컴 '한통엠닷컴'으로 새출발>, 매일경제, 2000. 7.28.
7) <한통프리텔, 한통엠닷컴 합병>, 한국경제, 2000.11. 7.
8) 최용성 기자, <한통프리텔 엠닷컴 통합법인 KTF, 공식 출범>, 매일경제, 2001.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