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3세대 이동통신(IMT-2000)
2000년 12월 15일.
서울 을지로 SK본사 사옥 18층과 경기도 분당 한국통신 본사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정보통신부가 차세대 IMT-2000 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비동기식에 지원한 SK IMT와 KT IMT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반면, LG글로콤은 웃을 수 없었다. 분명 발표 직전까지도 주가는 LG의 성공을 예견했다. 오히려 SK와 한국통신의 주가가 하한선을 그렸다. 하지만 결과는 반전됐다. 주가도 역전됐다. 거기에 홀로 동기식 선정에 나섰던 한국IMT-2000(하나로통신) 마저도 탈락했다.
IMT-2000 사업자 선정 결과는 비동기식 2개 사업자 선정. SK텔레콤과 한국통신만 웃는 날이었다.1)
SK텔레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SK텔레콤은 3월께 IMT-2000 신설법인을 마련하고 2007년까지 망 고도화와 품질 개선을 위해 3조 2천9000억 원을 투자해 1위를 유지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한국통신도 공정한 평가에 감사하며, 2007년까지 총 2조 2천억 원을 투자해 기지국 4천100여 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4개 컨소시엄의 평가 결과는 SK텔레콤이 84.018점으로 1위, 한국통신이 81.860점으로 2위, LG글로콤은 80.880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2위와 3위의 점수차는 불과 1점도 채 되지 않았다. 한국IMT-2000은 56.412점으로 총점 마지노선인 70점을 넘지 못했다. 하한선인 60점을 넘은 항목도 없었다. 완벽한 탈락이었다.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발표하는 한편, 양방향(동기식과 비동기식)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빠른 시일 내 동기식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의미였다. 동기식 사업자가 결정되지 않았기에 정부는 해를 넘긴 2001년 1월 사업자 선정 공모를 통해 2월 동기식 사업자를 택하겠다고 밝혔다.2)
LG글로콤은 즉각 반발했다. 정부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필요하다면 행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수진을 친 것일까. 향후 있을 동기식 사업자 선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LG 입장에서는 나름의 억울한 사정도 있다.3)
우선 점수평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할 수 있었다. LG글로콤은 통신서비스 계획과 전기통신설비 규모 적정성, 재정능력과 주주구성, 출연금 등에서 타 컨소시엄과 비등하거나 오히려 앞선 항목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LG의 발목은 잡은 항목은 기술개발 실적과 계획, 기술 능력이었다. 이 항목에서 타 컨소시엄 대비 최하점을 기록했다.
기술 항목에서의 최하점은 LG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이미 LG정보통신(LG전자로 흡수합병됨)을 통해 국내 타 네트워크장비업체와는 달리 비동기식에 대한 기술개발에 매진했고 그에 따른 성과도 가장 빨랐다. 핵심 계열사인 LG텔레콤뿐만 아니라 IMT-2000에 전력투구한 데이콤도 있었기에 누구보다 기술력 측면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앞선 각종 인터뷰와 입장발표에서도 LG가 늘 IMT-2000의 적자라 자신할 수 있었던 이유도 비동기식에 대한 기술역량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술 관련 점수가 가장 낮아 2위와 1점차도 나지 않는 상태로 탈락하게 된 셈이다.
또한 IMT-2000 사업자로 선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향후 이동통신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이나 진 배 없었다. 다음 세대로 진화할 수 없으니 한마디로 사업 영위가 어렵다. 가뜩이나 SK텔레콤과 한국통신프리텔에 밀린 LG텔레콤인데, IMT-2000 마저도 탈락한다면 가입자 유지는 고사하고 눈 뜨고 코 베일 판이었다. LG텔레콤 역시 한솔PCS와 신세기통신의 뒤를 이을 공산이 컸다.
아울러, 차선책인 동기식 도전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동기식에 대한 경쟁역량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비동기식에 대한 자신감을 계속해서 강조해 온 LG 입장에서는 동기식 도전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LG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사업자 선정평가가 옳다 그르다는 차원을 넘어서 납득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끊임없이 의문 제기를 통해 투명성을 제고해야 했다. 또한 차기 동기식 선정에서 선택되는 컨소시엄이 없어야 했다. 하나로통신(한국IMT-2000)이 모든 항목에서 과락 점수와 총점에서 크게 뒤떨어진 점을 고려한다면 동기식 사업자 선정 자체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았다.
추측건대 LG의 전략은 동기식 사업자 공모에 실패한 정부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민간 자율로 표준을 선택하게 해 나머지 1자리를 채우는 방식이 되길 바란 것. 이렇게 된다면 LG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비동기식으로 이동통신 시장에 대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초기 이통3사가 원했던 그림이기도 하다.
실제로 LG글로콤은 정보통신부를 찾아 동기식을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LG가 컨소시엄에 참여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4)
다만, 정부도 완강했다. 정보통신부는 심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됐으며, 특정업체의 주장에 따라 정책을 변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LG글로콤과 달리 하나로통신은 결과에 승복하고 차기 동기식 사업자 선정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부족한 주주구성과 재정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에 매진했다.5)
초기 동기식 사업자 선정 과정은 암흑 그 자체였다. 우선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정부 역시 공모에 나서기 어려웠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을 할텐데, 수요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업자 공모 일정도 계속 밀렸다.
또한 유일한 동기식 사업자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하나로통신 마저 컨소시엄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였다. 누구든 적격판정을 받을 수 있는 동기식 컨소시엄이 나타난다면 옳다구나 하고 사업권을 넘겨줄 분위기였다.
하나로통신은 2001년 2월 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동기식 관련 단체 및 대표들과 함께 ‘CDMA 2000 그랜드 컨소시엄 추진위원회’를 발족을 알렸다.6) 정부가 그랜드 컨소시엄 구성을 원함에 따라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PICCA)와 한국여성벤처협회, 벤처기업협회,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퀄컴,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이 함께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정부에 동기식 사업자 생존보장과 출연금 삭감을 정부에 건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랜드 컨소시엄의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랜드 컨소시엄을 대표할 기업이 나서지 않았다. 대표로 뛸 수 있는 기업은 LG그룹과 포철이 꼽혔다. 정부 역시 내심 이 두 진영의 참여를 바랐다.
하지만 LG텔레콤과 데이콤을 보유한 LG그룹은 이미 동기식 불참 의사를 전달했다. 포철 역시 IMT-2000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정부 개입을 참을 수 없다는 불만도 터졌다. 이는 동기식 사업을 위해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근거이기도 했다. 동기식을 밀어붙인 정부 입장에서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동통신 시장은 늘 반전이 있게 마련이다.7) 2월 14일 퀄컴과 삼성이 동기식 IMT-2000 그랜드 컨소시엄에 지분 참여를 발표했다. 든든한 우군을 얻은 하나로통신뿐만 아니라 정부도 내심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퀄컴과 삼성의 참여는 LG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나로통신이 동기식 IMT-2000 사업권에 다가갈수록 LG는 IMT-2000과 작별을 고해야 했다. 동기식 실패를 통해 민간자율 사업자 선정이라는 차선책을 얻어야 하는 LG로서는 속이 까맣게 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삼성은 피할 수 없는 경쟁사였다. 그랜드 컨소시엄이 커지면 커질수록 LG의 초조함은 배가됐다.
다만, 우려와 달리 뚜껑을 열어보니 퀄컴과 삼성의 그랜드 컨소시엄 지분 비중이 너무 낮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LG 측에서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이 나섰다.8) 비동기 사업자를 선정하면 될 일인데 동기식에 매달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BT는 LG텔레콤의 2대 주주. LG 지원사격에 나선 셈이다.
분위기는 또 한 번 바뀌었다. 정보통신부가 새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내 통신시장의 과당경쟁을 지적하며 3대 종합통신사로 구조개편을 보고했다.9) 유선과 무선, 초고속인터넷 사업 등 각 분야를 모두 통폐합해 3개 사업자가 경쟁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겠다는 게 골자였다.
이 같은 통신시장 구조개편에 나름대로 안착한 곳이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이었다. 나머지 한자리는 공석. 이 한자리는 IMT-2000 사업권의 남은 한자리인 '동기식 사업자'가 될 공산이 컸다.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컨소시엄 구성에 어려움을 겪는 하나로통신과 이미 사업 가능성을 확인받았으나 불참을 선언한 LG그룹만이 이 자리에 어울리는 후보군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 구조개편은 하나로통신보다는 LG 그룹을 향한 압박이 더 컸다.
팽팽한 갈등양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때는 2월 말부터다. ‘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경제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LG텔레콤이 출연금을 낮춘다면 생존을 위해 참여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정부는 출연금 인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시켰다.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복귀했다. 정보통신부는 또다시 계획을 수정해 사업자 선정 공모를 무기한 연기했다.
3월 말이 되자 더 이상 기업들도 버티지 못했다. LG IMT-2000 사업추진단은 해체를 결정했다.10) 이미 단장인 박운서 부회장은 데이콤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60여 명의 인원도 10명으로 줄었다. 극단적으로 LG텔레콤 매각도 거론됐다. LG그룹은 끝까지 매각을 부인하기는 했으나 막판 ‘검토 중’이라 공시하면서 가능성을 열어뒀다. 자세하게는 하나로통신이나 포철이 동기식 사업권을 가져가면 LG텔레콤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매각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IMT-2000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또다시 공모를 연기하면서 추진동력을 잃었다. 공모를 위해 미리 인쇄한 접수장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장됐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무기한 연기, 무리한 압박과 LG텔레콤과 하나로통신의 위기가 어우러져 민관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연출됐다.
1) 최용성 기자, <IMT-2000 사업자에 SK텔레콤 한통 선정>, 매일경제, 2000.12.15.
2) 김진형 기자, <IMT사업자 심사결과[전문]>, 머니투데이, 2000.12.15.
3) 김광현 기자, <[IMT-2000 사업자 선정] LG 왜 떨어졌나...기술력서 예상밖 저조>, 한국경제, 2000.12.15.
4) 유봉석 기자, <"동기식 사업 수익성 없다"...LG, 심사공정성 의문 제기>, 매일경제, 2000.12.17.
5) 홍진석 기자, <한국IMT-2000 "아쉽지만.."[발표문]>, 머니투데이, 2000. 12.15.
6) 한정진 기자(한경닷컴), <하나로통신, "CDMA2000컨소시엄 추진위 구성>, 한국경제, 2001. 2. 9.
7) 유봉석 기자, <삼성, 퀄컴 동기식 IMT 참여>, 매일경제, 2001. 2.14.
8) 최용성 기자, <"동기식IMT정책 바꿔라"...영 BT, 한국에 건의키로>, 매일경제, 2001. 2.16.
9) <정통부 업무보고...통신업 'M&A 태풍'>, 국민일보, 2001. 2.19.
10) 정위용 기자, <[기업]LG-하나로통신 IMT사업 손뗀다>, 동아일보, 2001.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