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부. 아이폰 쇼크
이동통신사의 3G 활성화와 제조사들의 치열한 단말 경쟁은 고객 데이터 트래픽 증가에 크게 일조했다. 가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 사용량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자는 네트워크 장비 증설을, 고객은 더 비싼 요금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이같은 부담이 상당 수준에 올랐을 때인 2010년 7월 14일. 기자간담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이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이 대안은 시대를 역행하는 문제해결방식이었기에 꽤나 파격적으로 여겨졌다.1)
"유무선 서비스 혁신을 통해 사업자간 본원적 서비스 경쟁을 촉발시키고, 고객에게는 더욱 더 다양한 혜택이 돌아가는 1위 사업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3G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최초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의 시작점이다.
앞서 지적했듯 그 당시는 데이터 트래픽을 분산시키기 위해 각 이통사가 3G뿐만 아니라 와이파이 커버리지 확대에 전면 나선 때였다. 그런데 오히려 트래픽 급증을 야기하는 요금제를 신설하게 된 셈. 트래픽 급증은 통신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의 급발진은 KT와 LG유플러스에겐 날벼락이나 다름 없었다. 데이터 무제한 제공 전략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전무했다. 방법은 오로지 하나뿐. 동일한 무제한 요금제를 신설하는 법만 있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SK텔레콤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음성통화 수익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데이터로 음성통화(m-VoIP)를 제한적으로 수용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에 데이터 음성통화를 풀었다는 것은 음성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수익을 창출했던 이통사에게는 영업이익을 일부 포기하는 고육지책이나 다름 없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테더링 활성화였다. 테더링은 휴대폰을 마치 무선통신모뎀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즉,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와 함께 쓴다면 와이파이를 쓰는 모든 무선 디바이스가 데이터 자유를 누리게 된다. 추가 요금 없이 단 한 대의 휴대폰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셈이다.
이같은 SK텔레콤의 전략에 고객들은 두 손 들고 크게 화답했다. 고객들은 SK텔레콤의 결단에 절대적 강자에게 통용되는 '무적'이라는 별칭을 달아줬다. 3G 시대 이통사와 가입자를 식별해주는 유심(USIM)과의 조합을 통해, SK텔레콤의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한 고객들은 이 둘의 합성어이자 신조어로 '무적칩'을 탄생시켰다. - 아이러니하게도 무적칩은 한 때 초기 4G LTE 확산을 막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
SK텔레콤이 전통적인 이통사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감내하겠다고 나선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SK텔레콤은 고객이 3G를 쓰기만 한다면 경쟁사 대비 확실한 고객 만족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즉, 써본 사람들은 SK텔레콤을 선택할 것이고, 입소문을 통해 1위의 위엄이 고스란히 퍼질 것이라 기대한 것.
앞서 나름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SK텔레콤은 트래픽 폭증을 대비하기 위해 2010년 5월 추가 할당받은 주파수에 3G를 도입했고, 속도 향상을 위해서 HSUPA와 HSPA+를 지역별로 순차 적용했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주파수 이용 효율성을 높이는 6섹터 솔루션도 도입해 기지국 용량을 2배로 늘렸다. 트래픽이 폭증하더라도 충분히 받아 들일 수 있는 기초 체력을 쌓아놨다.
만만의 준비를 마친 SK텔레콤은 무제한 요금제를 발표한 지 1개월 만인 8월 26일 정부 인가에 따라 해당 요금제를 정식 출시했다.2) 역시나 요금제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출시 10일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가입자 중 데이터 무제한을 선택한 고객은 무려 60%에 육박했다. 무제한 요금제는 55요금제 이상에 책정됐는데, 발표전까지만 하더라도 일평균 7천명이었던 가입자수는 출시 직후 무려 1만5천명까지 치솟았다.
물이 들어 올 때 노를 저어야 했던 SK텔레콤은 데이터 무제한을 비유한 의성어 ‘콸콸콸’을 슬로건으로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분수 터지듯 데이터가 콸콸콸 흐르던 때다. 출시 2개월도 안돼 가입자는 150만명을 넘었다. 9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1인당 약 2배 가량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데이터 무제한은 고객이 음성에서 데이터로의 사용 패턴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일정 요금제 이상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됐다. SK텔레콤은 데이터 무제한을 5만5천원 요금제인 '올인원55' 이상에 적용했는데, 이 5만원선은 이후 고객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작용했다.
무제한 데이터 공세에 나선 1위 SK텔레콤. 가뜩이나 경쟁적 열위에 놓였던 KT와 LG유플러스에게는 고난의 행군을 야기한 처사였다.
무엇보다도 2위 사업자인 KT가 SK텔레콤의 공세에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보였다. 유선 인프라 강자인 KT는 ▲넓은 커버리지를 갖춘 와이파이존 ▲SK텔레콤보다 커버리지가 넓은 와이브로 ▲ 무제한 데이터 제공으로 인한 SK텔레콤의 통신서비스품질(QoS) 제한 의문 등 쓸 수 있는 모든 대안을 내놨다. KT의 방어에 SK텔레콤도 이례적으로 대응했다.
다만, 실제 효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빼앗긴 가입자를 찾아오는데는 실패했다. 결국 KT도 백기를 들었다. 2010년 9월 10일 SK텔레콤과 비슷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내놨다. 5만5천원 수준이었던 i-밸류 요금제부터 데이터 무제한 제공을 도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앞서 서술한 강점들인 와이파이와 와이브로도 끌어 들였다.
다만, KT는 SK텔레콤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들이 결정적으로 KT에게 장애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마주했다. 넓은 와이파이존 운영되는 KT이기에 고객들이 데이터 무제한에 대한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이 초기 150만명의 데이터 무제한 가입자를 모은데 비해 KT는 약 60만명 가량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2G 서비스를 진화시키면서 3G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던 LG유플러스는 급할 필요가 없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아니더라도 하위 요금제에서 경쟁사 대비 무려 10배 가까운 데이터 기본량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10월 1일 5만5천원 이상의 오즈(OZ) 스마트55 요금제부터 데이터 무제한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성숙한 3G 네트워크를 통한 데이터 무제한 제공은 1인 1휴대폰에서 1인 1 스마트폰으로 나아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비약적인 단말의 진화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들이 탄생하는 자양분이 됐다.
사족이긴 하나 이후 이행된 4세대 통신(4G) LTE 때는 3G 데이터 무제한이 장애가 되기도 했다.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 사이에서 전국망 구축이 덜 된 LTE보다는 기존 3G를 고수하는 걸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LTE 상용화가 늦은 KT의 경우 LTE 스마트폰을 들여와 3G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해외에서 3G용으로 판매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등을 구매대행으로 구입해 3G 요금제로 가입하기도 했다.
1) 윤상호 기자, SKT, 데이터무제한·m-VoIP 전격 도입…통신시장 ‘파란’ 예고, 디지털데일리, 2010. 7.14.
2) 김우용 기자, SKT, 데이터무제한 요금제 26일 시행, ZDnet, 2010. 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