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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인주 Oct 24. 2021

빠져드는 것에는 논리가 없다.

가우디의 삶을 듣고 예술을 만나며

“여기에 앉으세요”  



가우디 가이드의 첫 시작은 구엘공원의 어느 벤치였다. 벤치 위에 자신의 조끼를 벗어 깔아주었고, 건너편에 앉아 모래를 칠판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도를 그리며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이다. 사실 그때부터였다. 나에게 떨림이 시작됬던 순간. 오랜만에 다른 분야에 존재하는 사람에게서 뿜어나오는 열정을 만난거다. 구엘공원을 지나 다음 스팟으로 가기 전, 잠깐 쉬어가는 커피타임이 있었다. 가이드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내가 궁금했다 그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먼저 이곳에 온 나의 이야기를 꺼냈고 자연스레 그는 그의 이야기를 시작해주었다. 





- 고등학생때 문학선생님이 수도 없이 말했던 인도여행이 머리속에 세뇌 되었나봐요. 저의 첫 여행은 인도가 됬고 남미여행까지 쭉 이어졌어요. 마지막이 바르셀로나였어요. 세계여행의 시작이였어요. 그리고는 돌아와 취업을 했죠. 사실 일 잘했어요. 영업을 했고,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대로 괜찮을까 싶더라구요. 그래서 퇴사를 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렇게 가이드 일을 시작해보자 싶었어요. 바르셀로나에서 건축을 전공했던 분께 이메일을 보냈어요. 가우디에 대해서 궁금한것들을 더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만나서 식사도 하고 정말 많이 물어보고 배웠어요. 여기와서도 가이드 투어 있는거 다 들어보면서 배웠어요. 몇백만원 투자했죠. 그렇게 시작했고 이제 시작이에요. 


- 음 그런데 한번 제대로된 ‘노력’을 해본 사람은 무엇을 해도 그 태도가 이어지잖아요. 사실 저도 막막한데 그걸 믿어요. 제가 미치듯이 달려왔던 시간을. 이미 너무 잘하고 계시잖아요. 온몸으로 표정으로 말하는 게 멋있어요. 목소리도 정말 좋으시고 이 일을 하셔야만해요!   



그의 긴 스토리와 대화를 듣고 난 확언을 내뱉어 버렸다. 누군가의 삶에 확언을 하는걸 싫어하지만 (상담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가 온몸으로 말하던 에너지, 송글히 맺힌 땀을 봤던 사람이라면 모두 그랬을꺼다. 행운이었다. 바르셀로나 2일차. 모든 걸 다 내려놓고싶었을때 다시 내가 좋아하는 눈빛을 만났다. 건축을 바라보고 있던 가우디의 눈빛도 틀림없이 반짝였겠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삶을 360도 조명하며 이해하고 싶어하는 편이다. 내가 그가 아니기에 물론 편협한 나의 해석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단순히 작품으로서의 감탄보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은 정말 흠뻑 빠져야겠다고 다짐하곤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주의! 팩트를 기반한 저의 해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주의!)


가우디의 어린시절 일상은 자신의 마을에 남아있는 로마의 건축물들과 함께였다. 친구에겐 따돌림을 당하고 아버지도 형제들도 어린나이에 모두 하늘나라로 보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의 첫 도약은 바르셀로나 건축과로 시작한 유학이었다. 마치 그는 세상의 이면과 예술의 본질을 벌써 깨달은 것 처럼 보였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공모전에 입상한 가로등 작품에는 로마가 담겨있었다. 이후 부를 뽐내기 위한 용도였던 건축물은 사업가와 가우디를 연결해주기에 충분했다. 구엘공원에는 건축 또한 자연의 일부일 수 있게 자연의 모습들을 모아두어 빛을 머금고 있는 최고의 공원이 되었다. 까딸루냐 민족의 탄생 그자체인 까사바뜨요. 모든 집이 신화(단군신화 처럼 모든 나라에는 탄생신화가 있다)속 이야기였고 다채로웠다. 대성당의 모습은 정점을 찍는다. 성경을 그대로 성당 외벽에 담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각인시키고는, 들어오면 그 누가되었든 포근히 안아준다. 슬프게도 그의 마지막은 사고였다. 노숙자같은 차림이라 차가운 병원에서 몇일을 방치된 채 누어있던 가우디. 그의 제자들로부터 발견되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둔 마지막까지 그는 성당의 완성을 다졌다. 눈물을 글썽일 수 밖에 없었다. 차림새보다 내가 만드는 작품에 온 힘을 쏟았다는 사실이 너무 애처로웠다. 그의 작품들이 곧 자신이었구나. 그는 자신에게 파고드는 예술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이야기를 쭉 듣다가 가이드님에게 말했다.

- 가우디는 정말 외로웠을 것 같아요. 어린시절부터 계속. 그래서 더 자신으로 파고들 수 있었겠죠. 타고난 예술가네요.

- 맞아요. 가우디의 엄마가 끊임없이 말도 해줬다고 해요. “너에게는 재능이 있단다. 너가 겪고 있는 일도 모두 이유가 있기에 주어진거야. 재능을 품으렴”


아.. 훌륭한 어머님. 행보를 통해 오만하고 자만하다고도 보여지던 그의 콧대높은 고집과 자존심. 하지만 신 앞에서의 순응하는 자세로 삶을 살아냈기에 모든 일이 가능했던거다. 때문에 일생의 작품들은 자기자신이 아닌 세상을 향해있었다.    


“자 이제 천천히 뒤를 돌아보세요.” 

가이드님이 던진 한마디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이전 파리에서의 일이 떠올라서. 스탕달 신드롬(위대한 작품을 보고 알지못할 감정들과 힘빠짐을 겪으며 몇일을 멍하게 보내는 상태)을 경험한 일이 었다. 나의 친구는 에펠탑을 보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역에서 나올 때 당부했다. - 절대 옆을 보지말아요. 제가 숫자를 셀께요. 셋을 외칠때 그때 돌아보세요. 자 같이 걸어요! 하나 둘 셋!   그렇게 눈앞에 펼쳐졌던 에펠탑의 모습. 이상했다 몇번을 본 에펠탑이 달라보였고, 위대하게 보여졌다. 이루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던 기억. 하지만 온몸을 저릿하게 만든 기억이었다. 그래서는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워 한참을 계단을 올라  - 으악 못보겠어요!  하면서 돌아봤다. 그리고 펼쳐진 사그리아 파밀리아의 모습. 그 웅장한 예술, 아름다움속에 온 힘이 빠져버렸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종교가 있던 없던 신성함에 녹아들었고,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성경의 이야기 속 장면 중 중요한 부분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건물외곽에 붙였던 기획. 멀리서 보면 웹툰이 건물을 감싸고 있는 것 처럼 보였고, 가까이서보면 살아 움질일것 같은 모습에 조각과정을 묻게 된다.(아니나 다를까 디테일을 위해 실제 사람의 반을 석고로 본따 만들어 완성했다고 한다.) 건물은 더이상 죽어있는 차가운 돌덩이가 아니였다. 시간의 기록이자, 자연의 돌. 진짜 자연의 일부였고 이야기로 뒤덮혀 묻혀지는 곳 없이 구석구석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그가 푹 빠져있던, 아니 미쳐있던 건축을 만나고온 사람들의 찬사가 이해가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나라야! 란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그의 이름은 건축가들을 넘어 아티스트의 철학을 본받기 위해 그 자체로 명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숨은 이야기들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내는 예술, 표현, 영감덩어리 그 자체였으니까. 가이드, 길의 안내자의 이야기에 푹빠지기로 마음먹었던 나에게 고마웠다. 정말 잘한일이었다. 내 상상력의 최대치를 끌어당겨둘 수 있었으니까. 오색빛으로 뿌려진 환상에 흠뻑 취해 여섯시간동안, 아니 바르셀로나에서 머무는 내내 난 가우디와 함께였다.    


이튿날 홀로 사그리아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향했다. 입장은 25유로 정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우디가 일생을 바쳐 설계해 짓고 있는 성당에 입장료는 건축기금이 된다. 이젠 대를 이어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미완성의 성당. 그 과정부터가 예술로 칭해진다. 누군가는 미완성의 모습을 이 도시를 재방문하며 사진으로 담기도 하는 것처럼. 성당 안은 겉모습과 동일하게 이야기와 신성함으로 가득차있었다. 지탱하는 기둥은 곡선으로 웅장한 나무가 되어 숲을 만들어줬다. 창문으로는 자연의 색깔을 담은 유리아트가 빛을 받아 성당안을 비췄다. 내가 어디에 있는거지? 아.. 소리내어 탄성이 입가에 흘렀다. 고요히 머물고 싶어 이동했다. 메인 공간을 넘으면 기도실이 나온다. <이곳은 기도만 하는 곳이야 그러니 너 절대로 조용해야해. 핸드폰은 안돼.> 가드의 안내를 받고 흰 천막을 뚫고 들어가 한참을 그 빛 속에서 머물렀다. 아.. 따뜻함에 온몸에 힘이 풀렸다. 결국 펑펑 울었다. 어쩌면 지난달부터 묵혀왔던 나의 눈물. 처음이었다 나를 내 감정에 온전히 맡긴건. 흑흑거리는 소리도 이곳에선 용인되었다. 퇴사는 나에게 독립이었다. 사랑하는 두번째 가족으로부터의 안녕이었다. 그 공허함의 크기는 얼마나 내 삶속의 큰 채움이었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도전들이 채워질 수 있는 단단한 외벽이 되어준 기억과 존재. 마지막은 슬픔이 승화된 감사기도였다. 

나의 오랜 집을 떠나 홀로 있는 여행에서 이곳은 또 다른 집이었다. 고마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 이 작은 자리. 그리고 가우디. 그는 예술로 꽃피어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로운 곳에 바친 자신의 모든 재능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충분이 감동이었으니까.



이곳이 세상의 외로운이들을 위해, 어쩌면 당신 자신을 위해 만들어둔 까사군요. 

다행이에요. 마지막 당신이 편하게 잠들 수 있는 집이 생겨서요. 이로움이 무엇인지를 느껴요.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도 느껴요. 온세상사람들이 당신의 예술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경이로움을 느껴요. 당신의 예술이 완성되는 과정에 제가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감사한 만큼을 드리자면 사실 너무나 부족해요. 제가 이곳에서 받았던 위안은 이루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저 글로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와 감동을 전하는게 저의 최대의 응원입니다. 그게아니었다면 예전 가난한 이들이 한 행동처럼 인부들을 위한 음식들을 가지고 오거나 돌멩이를 함께 옮겼을꺼에요. 다시 한번 성당의 완공과 당신을 기도할께요. 신의 은총아래서 사랑으로 가득찬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자연물이 무탈히 보존되기를.





나자신에 대한 표현과 영감에 대해 깨어나고 싶을 때  자주 듣는 스윗한 목소리의 노래  

Expressing Myself_j.lamotta


세상에 예술을 남기고 떠난 가우디를 기억하며 다시 한번, 

remember me - coco ost


-바로셀로나에서 용인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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