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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인주 Oct 24. 2021

사하라사막의 별과 결을 따라 걸었다.

여행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는 하늘의 일은 하늘에게 맡기고,

나를 찾아온 마음의 소리를 따라 나의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

날 책임져야하는 사람은 나 뿐이니,

세상 속에서 주어진 최선을 다해야 했다.




22 Nov 2019 


#여정의 시작 

“이거 어때? 괜찮아?” “응 딱 이쁘다 그거 입어”


여기서 이것과 그것은 바로 사막 옷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에 의해 입혀졌던 옷. 전통의상인데 한 벌의 원피스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게 내가 빨간색 옷을 고르자 핫산은 노란색 스카프를 건네주었다. 이게 잘 어울리는 색이야. 사막에 가서도 중요한 옷차림이라니 나도 정말 못 말린다. 보라색 스카프와 견주어보며 고민하다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스카프는 모래바람에 휩싸이거나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나의 머리와 얼굴을 보호해주는 용도다. 그 말은 즉 오늘은 사막으로 향하는 날이다! 모로코 여행 계획은 사막 투어를 위한 시간이었다 해도 충분할 만큼, 제일 기대하던 시간이다.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지낸다니 핫산네에 모인 사람들의 공기는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캐리어를 모두 방 한쪽에 맡기고 배낭에는 사막의 차가운 밤을 견디기 위해 챙긴 스웨터와 혹시 모르니까 아이패드, 그리고 양치 도구 등이 담겨있었다. 사막의 옷을 입고, 터번과 비슷한 모양의 스카프를 하고, 스카프와 같은 색의 양말을 신고, 그 위에 챙겨온 쪼리를 신고, 배낭을 질끈 멨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충분했다.


“다들 준비됐어? 우리 출발해야 해” 그들이 출발을 알린다. 밖으로 나오니 우릴 기다리는 건 지프차였다. 바퀴를 밟고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러니까 짐을 싣는 곳에 5명의 친구가 모두 껴 앉기 시작했다. “준비됐어?” 그는 물었다. “응!” 우린 짠 듯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사막 여정의 시작을! 3분 정도를 달려 우린 사막 초입에 도착했다. 그곳엔 우리와 함께 걸을 낙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훔쳐보던 아이를 실제로 만난 기분은 표현하기 힘든 흥분이었다. 우리 팀은 총 일곱 마리 낙타로 구성되어 있었다. 끈으로 이어 그들은 일렬로 나란히 앉아있었다. 모래 위에 사뿐히 말이다. 게다가 표정은 어찌나 평화로운지. 그들의 모습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와 같았다. 길을 안내하는 친구는 말했다. 이제 올라탈 시간이라고! 나는 딱 중간 어귀의 낙타에게 배정되었다. 뒤에서 4번째, 앞에서도 4번째. 나의 배낭은 그에게 건네어져 낙타의 손잡이에 매달려졌다. “이 신발은 어떻게 해?” “벗어서 여기에 둬, 내가 챙겨줄께”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따라 올라탈 준비를 했다. 낙타의 등은 생각보다 높았다. 작은 언덕에 폴짝 올라타야 했다. 안내자는 나에게 물었다. “스탭이 필요해?” “응!” 그러자 그는 무릎을 꿇고 손을 내민다. “이걸 발판삼아 올라가. 괜찮아” 이미 거칠어지고 모래가 묻어 하얘진 손 위에 나의 발을 올렸다. 한 번에 가뿐히 올라타겠어. 라는 마음으로 홀짝 올랐다. “와 탔어!”라는 나의 탄식과 함께 안착했다. 안내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잡이를 꽉 잡아” 라고 말하고 내가 탄 낙타를 툭툭 친다. 귀찮다는 듯 낙타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계속 일어나 라는 말에 뒷다리부터 들어 훌쩍 일어섰다. 이때가 가장 크게 심장이 고동치는 순간이다. 떨어질 듯 말듯 꼭 잡은 쇠 손잡이가 날 지탱해줬다. 와, 이게 낙타의 등이구나. 어느새 난 사막의 모래에서부터 멀어져 훌쩍 뛰어올라 있었다. 7마리의 낙타 위에 한 명씩 올라탔다. 순서는 맨 뒤의 낙타부터 차례대로. 뜨거운 태양 아래 우린 여정을 시작했다.  




   

#낙타와의 교감 

“정말 고마워”

내 앞에서 낙타를 타고 걷는 윤영의 인사였다. 동물에게 한없이 관대한 그녀. 나에게 없는 사랑스러움을 가진 친구의 시선이다. 고마워 라는 인사를 낙타에게 건네고 있었다. 나의 표정도 이내 사르르 녹았다. 그랬다. 그러네.. 나도 이내 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맙다. 이렇게 무거운 우릴 태워주고 말이야?” “맞아” 친구와 함께 웃었다.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11월의 사막은 뜨거웠지만 견딜 만 했다. 어쩌면 더 좋았다. 이 따뜻함이. 이곳의 여름날의 사막은 정말 뜨거워서 견딜 수 없는 날이라고 한다. 그 말의 농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니, 오늘의 날씨와는 다른 체감일 테지. 반쪽의 몸은 그늘에 있어 차갑고, 다른 반쪽은 햇빛 속에 있어 뜨거워지고 있었다. 햇빛의 온도를 체감하며 걷고 있었다. 낙타의 움직임에 따라 나의 몸도 함께 움직인다. 우린 마치 한 몸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낙타가 내리막길을 걸을 땐 내 몸도 앞으로 쏠린다. 그럴 때면 같이 엉덩이 근육에 힘을 빡 배에 힘을 빡 주며 앞으로 쏠리는 몸에 균형을 준다. 마치 승마를 하는  것같다. 엉덩이와 허벅지 안쪽까지 안 쓰던 근육들의 움직임을 계속해 느낄 수 있었다. 운동하고 난 후 근육의 자극이 왠지 나를 키워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듯, 짜릿하다. 그러다 갑자기 “여기 기다려요! 도와줘요.”를 외치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놀래서 돌이켜보다. 우린 연이어 소리를 질러버렸다. 귀여움의 소리다. 마지막 한 마리의 낙타가 우두커니 저 멀리서 서 있는 거다. 이유는 즉 슨 낙타들을 이어주고 있는 끈이 풀린 거다. 앞의 끌어당김이 없으니 이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낙타가 너무나 귀여웠다. 자연스레 안내자의 힘으로 다시 우리의 행렬에 참여했다. 꼬마일 때부터 낙타는 이 행렬에 참여해 키워졌다. 그 때문에 방향을 끌어주는 힘을 잃었을 때 멈추어 서버린다. 저 아이를 보며, 나는 무엇에 이끌려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사막을 지났을까? 점심을 먹을 중간지점에 도달했다. “여기서 내릴 거예요” 맨 뒤에 서 있는 낙타부터 차례로 내리기 시작했다. 낙타가 서는 것만큼 앉는 것도 꽤 긴장되는 행위다. 낙타들도 쉼이 필요한가 보다. 안내자의 길을 따라 그들의 얇디얇은 다리가 앞다리부터 딱 반으로  접히더니 뒤쪽다리도 함께 접혀 모래 안으로 쑥 들어간다. 보기만 해도 두 다리가 쥐오는 듯 저리는데 그들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쉼을 보낼 시간이다. 



사막 안에는 작은 식당이 있었다. 어느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촌스러운 양탄자 위로 나무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고, 짚으로 지은 그늘막 그리고 우리 등 뒤로는 사막이 존재한다! 작은 알리(우리와 여정을 함께하는 또 다른 안내자)는 보노보노처럼 변신해서 음식과 1.5리터 물과 콜라도 탁자 위에 탁! 올려주기 시작한다. 타진에 담긴 계란으로 뒤덮인 매콤한 야채들과 닭고기 구이 후식으로 푸짐하게 나온 과일까지. 사막에서 먹는 코스요리의 맛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대체 여긴 어디지? 싶게 말이다. 식사 후 우리에겐 두어 시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우리 여정엔 귀여운 친구들이 함께했다. 출발 전 숙소에서 꼬꼬마 두 자매가 투닥투닥하며 놀고 있길래 인사하며 안면을 텄는데, 이내 우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부모님과 여행 중인 아이들은 엄마와 파리 여행을 하고 헤어진 후, 아빠 손을 잡고 사막으로 왔다고 했다. 학교에는 체험학습으로 쿨하게 결석을 던지고, 말이다. 이 아이가 자라나는 세상과 내가 커온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천진난만하게 누가 빨리 모래언덕을 올라가는지 시합을 하고 무거운 스노보드를 함께 짊어이고 몇 번은 왔다 갔다 하며 모래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그늘 밑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밥을 먹고 과일 디저트를 먹을 새도 없이 우린 사막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모래 속에 파묻혀도 보고, 스카프를 깔고 가만히 누어 햇빛을 가득 머금기도 했다. 다섯 명의 친구들과 스카프와 모래를 휘날리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이폰11의 성능을 예찬하며 최고의 사진 하나가 나올 때까지 열정을 토해내는 나의 친구들과 까르르 거리는 시간이 귀엽다. 다시 여정을 시작할 시간이라고 알려와 정리를 시작했다. “화장실은 어딨어?” “저기 있지만 그렇게 좋진 않아. 이 모든 곳이 화장실이야! 이곳을 추천해!” 라고 말하는 안내자의 이야기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게 자연이다! 라는 생각에 줄지어 우린 자연 속에서 화장실을 해결했다. 다시 생각하니 조금 엽기적이다. 화장실을 사용하다 내가 사하라 사막에 있다는걸 새삼 느낀다. 

우린 뒤이어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더 걸어 다음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나의 낙타 친구에게 달려가 쓰담쓰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인사를 했다. 여전히 그 아이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씩 낙타와 호흡이 맞춰간다. 이 아이가 일어서고 다시 앉을때 생기는 충격을 미리 준비하는 여유도 생겼으니까.   





#현재만 있을뿐이야.

사막에서 기도를 하는 작은 알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낙타를 세워두고, 묶어두고 그들을 체크하고 뒤를 돌아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나중에 같이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보며 물었다. “너의 기도하는 모습을 봤어.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엇에 대해 기도하는지 물어봐도 돼?” “신에게 기도하는 거야.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신을 위해 기도해” “신을 위해 기도한다고? 그를 위해서?” “응” “대단하다. 우린 자기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해 신에게 기도하지만, 너희는 신을 위해 기도 하는구나.” 그는 대답 대신 웃음을 건넸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인사는 어색한 법이니까. 신에 대한 기도는 곧 하늘과 자연에 대한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들은 자연의 법칙대로 흘러갔다. 사막을 걸을 때면 모래를 관찰하게 된다. 바람을 따라 만들어진 산등성이, 멀리서 모두 모여 놓고 보면 파도의 물결처럼 보이는 모양새. 때론 잔 바람에 모래가 쓸려 무늬를 완성해두고 있었다. 사막의 언덕은 결에 따라 완성되었다. 곱디고운 모래들의 모양은 바람과 함께 일 때 완성되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닿으면 바로 모양을 그대로 찍어내는 모래. 나의 발자국도 낙타의 발자국도 바람의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까지 모두 자신의 얼굴에 담아내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취를 감춰버리는 모래.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고 다시 또 빠르게 뒤돌아서 안녕을 건네는 모래의 모습이 마치 나의 여행의 모습 같았다. 새로운 도시의 관습들에 적응하며 많은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다. 때론 옷 스타일이나 메이크업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현지인처럼 탈바꿈해 한껏 흡수한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캐리어와 배낭에 기존에 있던 것과 채워진 것들을 모두 담아 뒤돌아서 안녕을 고한다. 이곳에 내가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였다.  





명사
1. 나무·돌·살가죽 따위의 조직이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
2. 의식이 미치지 않는 시간의 흐름이나 동안임을 나타내는 말."어느 ∼에 해가 기울다" 

접미사
1. 파동과 같은 흐름을 뜻하는 말. "물∼"
2. `겨를', `사이'의 뜻을 나타내는 말."잠∼”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 뒤 낙타에 탄 주연의 대화였다. 고마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나도 그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일몰 앞에서 난 천 퍼센트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무언갈 느끼고 싶고 알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느껴지는건 감탄 뿐이었다. 자연의 광활함 앞에 섰을 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을 만났을 때, 숭고함에 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의 수만 가지 고민, 나를 괴롭히거나 행복하게 만들던 생각 감정 그 사소한 모든 것들이 다 어디 갔는지 사라졌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한 줌의 흙과 끊임없이 변화하며 물들어가는 모습에 규정지을 수 없는 색을 지닌 하늘을 말이다. 뒤이어 답했다. "계속 사막과 하늘을 바라만 보고있어. 그래서 더 좋다. 우린 순간에 있는거잖아." 그녀는 동의했다. 우린 블루투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더 순간을 느끼기 시작했다. 낙타의 발걸음에 균형을 잡기 위해 팔 다리와 엉덩이에 모든 감각을 실었다. 생명은 우리가 사는 오직 이 순간에만 영원히 존재했다. 나를 힘겹게 만들던 헤아릴 수 없는 존재와 사건들은 모두 지나갔거나 일어나지 않은 과거와 미래의 일이었으니까. 고마웠다. 나의 머릿속을 깨끗하게 만들어줘서. 그저 내가 걷는 길에만 집중하게 만들어줘서. 나의 결은 어디로 가게 될까 더 궁금해진다.



+

친구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새로 알게된 노래에요.

여행을 떠날때 상쾌함을 더해줄꺼에요.

can i love (feat. Yura)

run





-모로코의 사하라사막에서 용인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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