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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인주 Oct 24. 2021

베르베르인과의 동침

#한밤중의 파티

해는 저 멀리 모래언덕 뒤로 사라졌고, 어둠이 찾아왔다. 칠흑 같은 어두움은 이 순간을 말하는 게 아닐까? 촛불로 길을 깔아두어 우릴 환영하는 그들의 마음이 예뻤다. 숙소는 모두 천막으로 싸여있었다.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이랄까. 가운데 터에는 모닥불이 피어나고 있었고 의자가 둘러 있었다. 각 방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으며 정말 나 한 몸 누울 곳이었다.


14명의 한국인이 모여앉았다. 오늘 함께 베이스캠프에 머무르게 될 이들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렇게 많은 친구가 모이는 것도 드물고, 한국인만 모이는 것 또한 매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14명의 이들은 각자 세계여행 중인 남자 4명,  20대 커플, 친구끼리 여행 온 5명의 (나 포함)여자친구들, 아빠와 두 딸, 식탁에 모여 앉아 사막의 친구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기다렸다. 모래에서 뒹굴며 놀다가 도착하니 여간 배가 고픈 게 아니었다. 우리의 굶주림을 알았는지 간식을 꺼내어 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린 맥주를 사막 모래 깊숙이 넣어두었다. 신기하게도 모래를 파면 팔수록 모래가 차가워진다. 정말 물속과 성질이 비슷하다. 


우린 과자만 먹을 수 없지. 하며 딱 위스키 한 잔만 마실까? 하며 사서 온 위스키 뚜껑을 땄다. 민트 티가 따라졌던 잔들은 이내 위스키 잔이 되었다. 글렌피딕 위스키와 모로코산 과자들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 또한 자유였다. 현재에 취하기 시작하는 그 시작점. 한잔 정도 먹다 보니 작은 알리가 안내한다.  우린 잔잔히 켜져 있는 노란 불빛 아래 식탁에 모여 앉았다. 세계여행 중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또한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라면과 맛과 생김새가 비슷한 누들부터 가지 조림, 닭고기 타진까지 어떻게 이런 밥상이 차려지는 걸까? 누군가 집에 왔다면 가장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 먹이고 보내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아. 이 근사한 저녁과 풍족한 음식은 사람들의 표정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줬다. 




이미 사막의 저녁은 충분히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닥불 주의로 모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소리 내 타고 있는 불을 보고 있으니 꼬마 친구가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불멍 하는거야??” 우린 아이의 말에 짠 듯이 함께 웃었다. 캠핑을 자주 했는지 불멍이라는 단어를 안다. 불이 타오르는 순간을 보며, 얼마나 자연은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불씨가 된다면, 이렇게 내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고 잠시 뇌를 쉬게하는 멍때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큰불이 되어 태양처럼 온 우주를 밝게 만든다거나, 화산을 폭발시킬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져서 지형을 바꿀 그럴 위대함보다는 지금의 행복이라는 위대함을 안겨줄 작은 힘들이 좋다. 어느새 따뜻해진 공기에 익숙해진 우리의 자리에 세이드와 작은알리 그리고 그의 친구가 다가왔다. 그들은 각자의 북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들은 연주를 시작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의 연주일까? 이 순간만큼은 이들처럼 오늘을 노래하고 아니 지금 이순간을 노래하고 춤을 춰야한다는 생각으로 휩싸였다. 그들의 노래는 가사로 들리기보단 그저 소리였다. 그들의 소리를 따라하고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를 치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세이드는 엉덩이를 붙인채 노래를 듣고 있는 우리를 이끌었다. 손짓으로 일어나일어나, 제안하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고 골반을 양옆으로 흔들며 팔을 하늘과 땅을 향해 움직였다. 불 주위를 돌며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고요한 사막이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어줄 것만 같았다. 어색하던 캠프의 첫 밤공기는 풍요로웠던 음식과 음악으로 천천히 따뜻하게 변하고 있었다. 금새 위스키 한 병도 각자의 와인이나 보드카도 동이 났지만 세이드에게 절실히 부탁해 다같이 돈을 모아 맥주를 한 박스 가득담아 사오는 노력까지 더해 우린 새벽이 다하도록 흥겹게 밤을 지새웠다.  






#베르베르인과의 대화 

“난 사하라에서 태어났어”

모닥불 뒤로 윤영과 나는 쉬고 있는 세이드에게 가서는 노닥노닥 대화를 시작했다. 베이스캠프를 찾아온 우리를 돌보는 있는 친구는 핫산네(사막 투어에 참여한 곳 이름, 김가네 같은 느낌의 이름이다) 의 주인의 핫산의  동생이다. 그의 젠틀함에 거의 팬클럽 수준이 된 우리는 궁금한 것들 투성이였다. 돌이켜보면 하루종일 피곤했던 친구를 괴롭힌것 같아 미안해진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쏟아지는 별처럼 잔뜩 웃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너는 결혼했어?” “아니 아직.”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신의 뜻이지”

윤영과 난 마주보며 '아 멋있어!' 라고 눈으로 말했다.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그는 진짜 베르베르인이었다.

그는 말했다. 


“여기보다 더 깊은 사하라 사막에 집이 있어. 그곳에서 태어났어.” 

“와 정말? 난 정말 상상이 안 돼. 멋있다.” “(웃음)” “그러면 거기에서 계속 태어나서 큰 거야? 그곳도 이런 집이야?” “응 천막으로 된 집이 있어. 그곳이 내 집이야.” “거기선 뭐하면서 지내? 안 심심해?” “응, 양을 돌보고 낙타를 돌보며 지내. 정말 좋은 곳이야.” 마라케시의 도시를 지루한 곳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사하라사막에서 태어난 베르베르인이었다. 


“보통 다른 팀들은 1시면 잠에 드는데 너희는 정말 잘 논다.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정말? 나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늦게까지 노는 줄 알았는데” 

“하하 아니야.” 


수다를 떨다 몸이 근질해진 우린 부탁을 건냈다. “세이드, 혹시 저 ATV 태워줄 수 있어?” “그래, 태워줄게” “정말? 그럼 가자가자” “응? 지금 말하는 거야?” “응! 지금!”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난 대답했고 그는 터번을 둘렀다. 허락의 신호다! 우린 사막 베이스캠프를 뒤로하고 ATV를 타고 모래 산을 넘나들며 사막 어딘가로 달렸다. 사막의 모습은 혼자 남겨졌다면, 큰 공포가 되어 그 감정에 휩싸여 목숨을 빼앗겼을 만큼 강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베르베르인 그에게는 익숙하고도 자신이 사랑하는 곳에서의 산책이었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우린 꽤 높은 모래 위에서 내렸다. 새벽 1시 깜깜한 밤하늘의 별이 가장 많이 보일 시간이었다. 윤영과 나는 살짝 취기가 돌아있는 상태였기에 황홀함은 배가 되었다. 


“세이드, 난 정말 궁금했어. 어떻게 길을 찾는지. 모든 게 모래로 뒤덮여 있잖아.” 

“나는 여기서 태어났어. 다 같아 보이지만 나에겐 아니야. 다 다른 모래의 모습이야.” 

“멋지다” 그는 우리에게 ATV 위에 올려져 있던 천을 모래 위에 깔아주었다. 자신은 모래 위에 앉고, 우린 그 위에 앉게 했다. 우린 그대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자연스레 윤영과 나는 누워서 하늘을 보았고 총총히 하늘을 밝히는 별들에게 포근히 안겨있었다. 시끄러웠던 캠프와는 다른 고요한 사막의 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 소리로 온 세상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이 귓가가 따뜻했다. 그저 소리라고는 우리의 입으로 나오는 감탄뿐이었던 시간. 핸드폰으로 담고 싶어 사진 한장을 찍었지만, 담기는건 까만 화면이 다였다.  


“아 정말 슬프다. 하나도 담기지 않아.”라고 말하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괜찮아. 화면은 까맣지만, 너는 알고 있어. 볼 수 있어. 수많은 별이 이 안에 있었다는걸.”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동시에 환희가 찾아왔다. 술기운 탓이였을까? 웃음으로 나의 눈물은 승화되었다. 새까만 이 사진 한 장은 그 말이 담기는 순간 빛이 났다. 모든 것을 멈췄지만, 다시 무언가를 찾아 그저 걷고 있던 나에게 빛이 생겨났다. 차가운 공기에 오랜 시간 머물지는 못하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갑자기 사라진 우리를 걱정하던 친구들이 소리를 듣곤 달려 나와 반겼다. 여전히 친구들은 맥주와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고, 나는 한 병의 맥주를 더 마신 후에 먼저 잘께!를 외치고 침대로 향해 잠을 청했다. 



고요한 별을 담은 그 순간으로 사막의 밤은 충분히 완성되었다.

아마 내 존재가 초라하게만 느껴질 때, 못난 모습의 나만 보일 때, 이 사진을 꺼낼 거야. 그럼 내 마음은 알려주겠지. 빛을 내던 나의 모습은 존재하고 있어. 그저 지금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거야. 불안해하지 마.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괜찮아.    




-사하라 사막에서, 용인주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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