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가장 큰 배움의 행위.
Mystery of Love - Sufjan Stevens
에피소드와 영화 속 배경과 분위기가 어울려 정말 많이 들었어요. 함께, 들어요:)
동남아. 동남아시아권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꽤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이 넓고 넓은데 벌써 휴양을 즐겨야해? 가서 물놀이 밖에 할게 없다던데.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는 내가 즐길 수 나 있을까? 난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싶어. 궁금한게 너무 많은 유럽으로 갈래. 이게 나의 솔직한 의견이었다. 놀고 먹고 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못견뎌하는(했던) 나는 별로야를 외쳤다. 아무것도 안하는것 보다 밖에 나가 그냥 걷는게 더 좋다. 공원에 앉아 책을 읽고 SNS에 내 생각과 지금은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더 좋다. 생산을 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스포츠 게임 같은 하루를 보냈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트랙에 올라서 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즐기며 뛰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든게 싫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무엇인가 하고 있다. 완벽한 도시의 일상이다. 그러던 내가 트랙 위를 달리던 스포츠 게임이 지쳐 잠시 옆 잔디에 머무르며 지내기를 선택했다. 지난 경험들로 쌓여 매력적이라 여겼던 취향이 깨졌고, 일상의 모양은 조금씩 변했다.
- 난 지적인 섹시함에 목을 메던 나는 몸매를 들어내는 섹시함은 관심이 없었다.
발리에서는 올록볼록한 살들을 드러내서 비키니를 입었고 사진도 찍었고 인스타에도 올렸다. (물론 사진보정 후에) 어깨와 등 배 다리를 드러내는 옷을 가득 사서 입고 다닌다.
- 난 빈티지 옷과 책, 술을 좋아해 이 문화를 만나고 싶어 했다.
발리에서는 빈티지 같아보이는 새옷이 길거리에서 팔고, 음식값보다 술값이 배로 비싸 항상 적당히 맥주 한잔을 마신다. 책 대신 수영과 요가를 한다.
- 취향이 반영된 집에서 살아보는 여행이 좋았지, 호텔이나 호스텔은 재미 없었다.
발리에서는 우기의 벌레에 시달리다보니 호텔을 선호하고 있다.
- 혼자하는 모험에서 느끼는 낯선 쾌락이 좋았지, 함께하는 여행에서 느끼는 익숙함은 그저 그랬다.
발리에서는 난 베스트프렌드와 최고의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 하루를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꽉채우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발리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낸다. 완벽한 쉼. 여름나라 여행의 시작이다.
발리에서 가져야하는 취미가 바로 이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누워있는다거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거나. (그러니까 미이라처럼)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한 무엇인가를 하기마련이다. 보거나 듣거나 맛보거나 감각을 끌어당기는 것들 위주다. 살짝 동물적 인간으로 날것 그대로가 된다고 할까? 핵심은 시간.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것에 있다. 시간은 항상 나를 두렵게 만들곤 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나에게 허락해줄 수 있을까? 어려웠던 일이었다. 연습과 익숙함이 필요했다. 유투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 말고,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것. 발리에서는 그 연습이 가능했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이,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 , 폴 라파르그
아침에 일어나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주섬주섬 세수하고 선크림을 바르곤 옷을 챙겨입곤 나왔다. 내 손엔 에코백 하나가 들어있다. 에코백 속에는 지갑 아이패드 선글라스 선크림이 들어있다. 이렇게 쟁여야 그나마 마음이 편한가보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밖으로 향한다. 발리에서는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참 귀여운 행위다. 그늘 턱에 앉아 쉬면서 아침을 준비한다. 때론 가게 점원들도 문밖에 앉아 있다.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건넨다. 집 근처 카페에 가거나, 가고 싶어서 체크해 둔 카페로 향한다. 커피 한잔이나 가공되지 않은 생과일 그대로가 담긴 주스를 마신다. 가끔 샐러드나 크로와상,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는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쓴다. 멍때리기도 한다. 주스의 맛을 느낀다. 괜히 나까지 과일맛 카라멜이 될 것 만 같이 풍성하다. 열두시가 될 때 쯤엔 친구와 연락을 나눈다. 그리고 음료 한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집으로 간다. 우리 “오늘 뭐할까? 여기 갈래?” 여기가 가르키는 곳은 대부분 구글링을 통해 발견한 수영장이나 해변이다. 비치클럽은 시끄럽고 지겨워 흥미가 떨어진지 오래였으니까. 어쩜 이렇게 서양인만 가득하거나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은 이렇게도 잘 찾아내는지 모르겠다. 뭐랄까 아무것도 안하기에서 무언의 시선에 자유로워지는 상태는 꽤 중요하다. 수영장 배드나 모래 위에 수건 한 장을 깔면 드디어 내 몸 하나 뉘일곳이 만들어진다. 그리곤 시작된다. 아무것도 안하기.
수영장에 들어가서 수영을 한다. 발을 쭉 뻗어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고, 그다음엔 발목을 플렉스해 개구리 다리처럼 움직인다. 때론 깊에 잠수를 해서 잠시동안 온몸을 물에 담구기도 한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며 배영을 한다. 목이 마르면 주문한 얼음이 동동 떠있는 스파클링 워터를 마신다. (고맙게도 마실것들을 제안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발리에 있다. 가령 빈땅을 들고오는 길거리의 상인, 풀바의 직원들이 있다. 아, 마지막으로 수영장을 이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써야하는 미니멈차지를 사용해야하는 의무때문에 직원을 부르는 나를 포함한다. ) 작은 라임이 들어간 덕분에 혀의 자극이 더 산뜻하다. 가만히 하늘을 본다. 지금이 좋아 소유하고자 사진으로 담는다. 슬프게도 내 눈에 보이는것 만큼 아름답게 담겨지지 않는다. 아쉬워하다 주변이들의 모습도 본다. 키스를 하는 커플, 연신 사진을 찍는 친구들, 책을 읽는 사람, 선텐을 하는 사람,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까지. 아마 난 그들 속에 나를 투영시켜 움직였을 거다. 키스할 사람은 없으니 패스하고, 책을 읽는다. 문득 든 인사이트들은 메모장에 적는다. 그늘에 내 몸을 구겨넣고 잠을 자기도 한다.(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낮잠이 포인트다.) 어느새 경험과 시간이 쌓이고 쌓여 아무것도 안하는 지금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시간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나도 자연스럽게 같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훌륭한 연습이었다.
아무것도 안할 때 도움이 되는 건 자연, 클린푸드, 아날로그였다.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것을 바라보고, (가공식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것을 먹으며, 내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살아가려 하는 것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생기가 돋는다. 어쩌면 쓸쓸해질 수 도 있다. 해가 지는 모습.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 다시 0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모습을 만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지긋이 바라보면 아름답다. 살아가는 모습 중에 하나다. 음악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려 해본다. 인위적인 소리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소리들을 만난다. 그들의 언어로 말하기에 알아 들을 수 없지만, 더 좋다.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내 머리와 마음을 헤짚고 밑줄을 치거나 질문과 생각을 적고 싶은 것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좋아진다. 흰 도화지같은 메모장도 좋고 챙겨온 책도 펼친다. 아무것도 안하는건 무엇을 하는 것 같지만 내 존재의 인식으로 시작하고 끝이난다. 무엇을 생산할 필요도 없으며, 잘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나에게 있어 시간이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보다. 현재의 행복감이 더 우선순위다. 그때 비로소 아무것도 안하게 된다.
(4번째 정도일까 책을 꺼내어 읽으며 찍었던 사진이 카톡에 있더라구요 슬며시 캡쳐!)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의 20대의 책 중에 단연 베스트로 꼽히는 책이다. 갑자기 생각나 검색을 했다. 아쉽게도 이북은 없었고, 구글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책의 목차를 훑다가 소름이 돋았다. 「발리의 사제는 그저 가끔씩만 오리를 가리킨다」 라는 소제목의 챕터가 존재했다. ‘발리’라니! 챕터의 시작은 이렇다.
발리에 사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사제는 뭔가 필요하면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킨다네. 그럼 가질 수 있지.”
그러면 사제는 부자가 될 수 있겠다고 하자, 친구는 깜짝 놀라 날 바라보았다.
“아니야, 사제들은 현명해.”
그는 사제들이 현명하고, 오리가 필요하면 오리를 가리킨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제도 사람이며, 사람은 권력을 악용하는 성향이 있다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아도 간혹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은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창피하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시인했다.
그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해명거리를 찾으려고 했다. 한참 뒤에 그가 말을 꺼냈다.
“사제들은 피곤해. 엄격한 학교를 다녔고, 산스크리트어와 또 다른 언어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평생 배우고 또 배우지.
마침내 사제가 됐을 때는 이미 무척 늙었다네. 권력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피곤한 상태지.”
그들은 권력을 소유했다. 모든 것을 가리키고, 모든 것을 소유한다.
그러나 발리의 사제는 그저 가끔씩만 오리를 가리킨다.
발리에 사는 친구의 이야기라는 텍스트. 운명적인 만남에 놀랐다. 게다가 10년전엔 어려웠던 이 문단이 내것이 되었다. 종교를 통해 쌓여진, 문화 속의 가치관을 한번 배웠기에 더욱. 우린 존재보다 소유에 관심이 많다. 내가 가진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어떻게 쪼개서 효율적으로 만들까?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벌써 어렵다. 그렇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현생에서 이 가치관을 무너뜨린채 사는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매일을 살아갈 수는 없다. 곡을 완성시키기 위한 쉼표로 사용 될 뿐이다. 하지만 소유에만 쏟아내다보면 지치기 마련임을 기억해야한다. 슬럼프는 존재에 대한 이유를 설명 하지 못할때 찾아온다. 시간을 소유하려는 것이 아닌, 지금의 존재를 바라봐주는 행위가 필요했다.
소유하려해서 불안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물결의 움직임과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 소리들 사람들의 움직임.
신선한 음식과 미네랄워터 한모금.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나.
나를 인식한다.
웃음이 지어진다.
추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빈도는 일상에서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경험한걸로 풍성해진 시간들이에요. 2018년도에 기획하고 4차례 진행한 쉼 프로젝트 였던 <제주 프로젝트>가 기억나요. 3박4일 일정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이 있었어요. 참여했던 분들이 정말 큰 만족도를 안겨준 것이 이해되요. 전 참여자가 아닌 기획-진행자였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상태여서 아마 그 순간들은 51% 공감할 수 있었겠죠? 그 시간을 떠올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요소 하나가 더 정리되요. 바로 “친구” 지금 내 무방비상태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 라는 존재요. 제 옆에 있는 친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여행을 할 줄 아는 아이거든요. 그녀의 자연스러운 행위에 저도 많이 따라갈 수 있었어요. 참 감사한 일이에요.
Your life is your art!
-발리에서 용인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