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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쏠라미 Jul 19. 2022

층간소음2

신경정신과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의 칼부림이 있었고, 

아저씨는 층간소음 피해자에서 특수협박 가해자가 되었고, 피의자가 되어 구속되었다.

그의 식구들은 우리에게 합의를 요청했고, 우리는 합의 조건으로 조속히 이사를 가달라고 했다.

물론 우리도 이사를 준비 했다.

이 집에서 사는 내내 칼이 생각날 것이고, 그날의 악몽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혹시나 획가닥! 해서 칼을 들고 왔던 이 아저씨가 

또 획가닥 해서 보복하러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지속적인 과호흡과 불안증으로 신경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서 심리상담센터를 다니며 심리상담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사를 안갈 이 유가 없다.


근데 우리의 합의조건에 무조건 동의한다며 합의서를 보내온 아랫집 식구들은 

우리 아파트도 아닌 옆단지 아파트에 전세 매물을 내놓았다.

언제 계약될지 모를 가격으로.

합의서는 그들을 위한 조건들이 적혀있었다.

만약 합의조건대로 실행이 되지않을 경우 

우리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합의서 수정 제안이라던가

또는 그 가격으로 전세가 빨리 빠질까요? 라며 그들에게 묻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과호흡이 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차갑게 식어서 덜덜 떨렸다.


계속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아랫집 연락처를 자기에게 넘기라고 했다.

근데 나는 전화번호를 넘기지 못했다.

아랫집 사람들에게 내 남편의 전화번호까지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하루에 전화를 수 백 통받고, 수천건이 넘는 메세지 주고받는 남편은

업무에 치여 바쁘고,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 하다.


합의. 이런일 쯤은 내 선에서 정리해서 남편에게 아내로써 환상의 파트너가 되고 싶었다.

이런 귀찮은 일로 남편의 일이 방해받게 하고싶지 않은 나의 배려.

그러나 정작 나는

딩동. 마켓멀리에서 1만원 쿠폰을 발행했다는데 

문자 소리만 들려도 주저앉았다. 

아랫집 인가. 합의해달라는 문자인가.

핸드폰을 들여다 보지도 못한 채 공포감에 휩싸였다.


 

신경정신과 예약 당일이 되었으나 

당시에 수많은 정신과병원에 진료 가능여부를 문의했었기에... 

마침내 예약된 병원이 어딘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검색했던 같은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온

병원목록에 차례대로 전화를했다.


"0시 00분에 예약한 000입니다. 진료예약 되어있나요?"

"음~ 같은 성함이 없네요. 저희병원 맞나요?"

"죄송합니다."


세 번의 전화를 끊고 네 번 째 전화했을 때

난 그 병원을 찾았다.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재빠르게 이동해서 예약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예약하던 당시에 워낙 얼이 빠져있을 때라서....)



간단한 설문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의사 선생님과 대면을 했다.

부드러운 말투로 내가 말하는 증상들을 수용적인 태도로 들어주셨다.

내 증상들은 불안에서 오는 과호흡이랬다.

심각하면 실신을 하기도 한다며 네이버에 과호흡 이라고 검색해보면 나랑 똑같네? 라는 글들을 찾을 수 있을거라며 환기를 하기 위한 농담도 건내셨다.

(이런 게 농담이었나?)


약을 처방해주셨고, 그 날 저녁 약을 먹자 곧바로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심장에 철근을 메달아 놓은 듯 무겁고 답답했던 느낌이 사악 사라졌다.

마음이 가볍고 상쾌하기까지했다.

내가 느끼던 불안은 다 어디로 갔지?


하지만 이따금씩 현기증과 두근두근함이 느껴졌다.

설거지가 몇 개 없길래 식기세척기에 넣지 않고 고무장갑을 끼었다.

그릇 몇개에 수세미 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안함이 몰려왔다.

숨이 깊게 쉬어지질 않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고무장갑을 내던지고 주방 싱크대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본 방법으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2초 참았다가 천천히 내뱉기를 반복했다.

괜찮아. 괜찮아. 손으로 다독다독 가슴을 쓸어내렸다.


결국 작년 쯔음에 심리상담 센터에서 내가 상담을 받았던 원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오랫만에 연락드렸어요. 당장 상담을 받고 싶은데 예약 좀 부탁드려요. '

원장님은 흔쾌히 다음 날로 예약을 해주셨고, 

우린 빠르게 만날 수 있었다.


상담내내 내 말에 귀기울여 주시고 고개 끄덕거려주는 원장님은 

그 모습으로도 이미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충분한 조언도 해주셨다.

그 간의 일들을 입밖으로 꺼낼 땐 

그 날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불안증이 또 올라왔었는데, 

아침약을 먹고 가서 그런지 

비교적 편안하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충분히 불안하고 무서운 일이에요."

"예전의 상담들로 내면에 힘이 좀 생겼었는데, 이런 엄청난 일을 겪으니 다시 두려움이 올라왔을 수 있어요"

"다시 연민에 빠졌네요"

"그 아랫집 때문에 앞으로 어떤게 제일 두려우신가요?"

"@@씨는 옛날의 힘없고 어렸던 아이가 아니에요. 함께 이겨낼 남편도 있고, 서로를 지켜줄 가족도 있죠. 

이걸 다 이겨낼 수 있는 힘도 분명히 있어요."

"생명을 위협 받은 엄청난 일이에요.  무슨 사정이었든 그 분이 잘못한거에요. 나 때문에 라는 죄책감 내지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마세요."


 




상담을 받고 나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약물 때문인지 상담때문인지.

아님 그 두 가지의 시너지 효과인지.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전 날 밤, 내 여동생은 말했다.

"제발 그렇게 심각한 척 좀 하지 마. 자꾸 힘들어하고 괴로워 하니까 더 그러잖아"


내 남편도 말했다.

"도대체 왜그래? 신경을 쓰지말라니까? 참 이해가안되네"


나는 그 들에게 각각 똑같이 말했다.

"내가 스스로 컨트롤이 되면 이렇게 아파하겠어? 자제가 안되는걸 어떡해. 불안해서 미치겠는데 어떡해."


그들은 끝내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또 다시 쿵쾅되는 심장을 부여잡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게 내가 상담실 원장님을 찾은 이유였다. 

그토록 거부감을 갖고있던 신경정신과 약물 처방까지 받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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