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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an 13. 2023

오늘 하루 잘 지내시나요

-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신동화


‘이제 막’ 먹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자 ‘이제부터라도’ 먹는 것에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은 2010 휴스턴 국제 필름 페스티벌 특집 다큐멘터리 부문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SBS 스페셜 『생명의 선택』프로그램을 책으로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세계 100여 명의 전문가를 12개월간 취재해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그 노고가 눈부십니다.


밀림 속 같은 아파트 사이를 걸을 때면 어릴 적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냄새를 풍기던 논길을 생각합니다.

심심한 손을 펴서 무거운 벼이삭을 후르르 훑으면 푸드덕 메뚜기가 날았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논에서 기어 다니는 가재나 게를 잡아서 병 속에 넣거나, 메뚜기를 잡아서 긴 풀을 꺾어 꿰었고, 그날 저녁 반찬은 메뚜기 반찬이었습니다.

맑게 흘러가는 도랑에는 미꾸라지가 우글거려 양푼이로 뜰 수 있을 정도여서, 살이 오른 통통한 미꾸라지는 가끔은 된장국에 넣어서 구수한 맛을 더했습니다.

앞 뒤 집에서는 돼지를 키우고 우리 집에서는 닭을 키웠으며, 거위가 마당에서 마구 돌아다니는 집은 너무 무서워서 가지도 못했습니다. 거위처럼 집을 잘 지키는 무서운 짐승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동네 집에서 채소를 뜯는 저녁이면 그 동네의 몇 집은 똑같은 야채가 올랐고, 닭이 알을 낳으면 뜨끈뜨끈한 알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앵지밭 골짜기 아래서 양을 키우던 내 친구 집에서 새벽이면 뜨거운 양젖이 우리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돼지 먹이는, 온 동네서 수거한 음식 찌꺼기여서 음식쓰레기를 따로 버릴 필요도 없었고, 닭들은 땅속 지렁이로 포식했고, 동네 뒷산의 논밭에서 두엄 썩는 냄새가 여름이면 코를 찔렀지만 아무도 나무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 논에서 나는 벼나 밀, 보리를 나누어 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네잔치나 고사라도 있는 때면 어느 집의 돼지나 닭이 제물이었고, 손님 접대용 음식들은 뒷산과 논밭에서 나는 나물과 채소였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때 내가 먹던 것들, 동네사람들끼리 나누어 먹던 것들이 바로 유기농이었다니. 그때는 유기농이란 말이나 단어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굳이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휘도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이 책 중에서 특히 3부를 따뜻하게 읽었습니다.

1부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2부는 ‘다음 천년을 위한 약속’, 3부는 ‘페어 푸드, 도시에 실현되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현재의 삶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3부를 먼저 읽었습니다.


몸을 치유하는 농업은 결국 정신을 치유합니다. 나는 너무 오래 서울에 올라와서 사느라고 이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어릴 적 그 골목의 짚이 썩어가던 퇴비 냄새와 사람과 가축이 함께 마당을 걷던 그 시간을 잊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이 모든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요즘은 동네 유기농점인 한살림에 가입을 하고 산보 겸 가서 유기농채소와 과일들을 사 먹습니다. 이제 슈퍼에서 유전자조작 콩인지 아닌지를 알려고 눈을 크게 뜨고 일일이 상표를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유기농 식품은 먹고 나면 몸이 바로 반응을 하는데, 상쾌합니다. 값도 일반 슈퍼나 마트보다 조금 저렴합니다. 조합에 가입해서 생산자나 소비자나 안정적인 구입과 판매를 할 수 있어서 가격이 요동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욕심이 결국 인간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라는 것을 심정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천이 여의치 않은 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3부에 기록된 다양한 도시 농부로서 살아가는 방법들은 의미심장합니다.



모든 자연 치유 능력에 대한 회의는, 인간이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동물이란 점에서 생긴 오류입니다. 가끔은 쉽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일 자세도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 깊었던 부분은 90일 만에 암을 완치한 잭 맥클루어 씨 이야기로, 그는 미국에서 암 발병률 1위, 암 사망률 2위인 전립선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암 수술 대신 식생활 개선으로 암을 극복하겠다는 결심을 한 후, 불과 90일 만에 암을 완치했습니다.


맥클루어 씨는 오시니 박사가 설계한 식단에 따라 식습관부터 확 바꾸었습니다. 원래 햄버거와 육류를 좋아했지만 실험에 참가한 이후 신선한 과일, 채소, 곡물 특히 현미를 먹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인의 식습관과 비슷합니다. 단백질도 풍부한 식단이었지만 두부, 버섯 등에서 단백질을 섭취했습니다. 


이와 함께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먹었고 어떤 운동을 했는지 매일 기록했고, 긍정적이고 좋은 일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나 줄었고, 90일 뒤 잭은 다시 검사를 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고, 암세포가 사라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그 과정을 들어가 보면 얼마나 굳은 의지가 보태졌을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보기엔 잭 맥클루어 씨는 다른 사람을 믿고 따르는 성격입니다. 음식으로 암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의사의 판단을, 그 역시 믿고 따른 결과기 때문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는 성격이니 스트레스도 다른 사람들보다 덜 받을 것입니다. 그만의 장점으로 좋은 방법에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가짐으로써 암이 나았다고 보입니다. 사람은 때로 낙천적일인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만사가 다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1부는 유전자를 바꾸는 음식들에 대한 기록들로, 채식과 비만을 멀리하는 좋은 음식이 유전자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법정스님의 <먹어서 죽는다>라는 수필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것으로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으로 돌아가자 라는 내용인 선견지명의 수필입니다. 이 글을 공부하는 아이들은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합니다. 한창 고기나 햄버거, 피자를 좋아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어리기 때문에 건강이 직접적으로 그들의 삶을 좌우하는 시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날 건강이야말로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며, 그럴 때가 너무 늦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교과서에 이런 내용을 넣는 것은 그래서 바람직합니다. 언젠가 그들이 주입식 교육의 효과를 볼지도 모르며, 추상적인 내용보다는 이 책처럼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사례들이 담긴 기록들을 교과서에 싣는다면 훨씬 아이들의 경각심을 높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서는 지진보다 두려운 건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가 녹아 치명적인 위험을 유발한다는 일입니다. 지구는 알게 모르게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오염되고 인간은 자멸의 길로 치닫습니다.

이 책의 2부는 화학 물질과 환경 호르몬 등으로 인한 유전자 문제의 심각성과 여기엔 약도 없다는 무서운 경고를 적고 있습니다. 세계의 기업들은 점점 공룡화되어 농산물들도 이 공룡 속에서 태어나며, 농약으로 키우는 농작물들과 스트레스로 키우는 가축들은 결국 인간의 생존에도 독이 됩니다. 인간이 자신의 입에 스스로 독약을 털어놓고 있는 꼴이라는 것을 이 책이 너무 잘 보여주어서 섬뜩합니다.


변형된 옥수수 유전자들은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퍼집니다. 이 책은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적고 있는데, 문제는 유전자 조작된 농작물이 거대기업의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대단위의 경작을 하기 어려운 유기농 생산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이 거대자본의 포로가 될 때면 우리 역시 그들이 특허받아 대량 생산해 내는 유전자 변형작물을 먹는 대가로 로열티를 지불함으로써 재정적 파산의 지경에 이르는 비극을 연출할지 모릅니다.


거대기업을 등에 업은 유전자변형 작물이 우리의 건강만이 아니라 우리의 재산도 파탄시킬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야금야금 우리를 잠식하는 이 엄청난 계략에 우리는 한 발짝씩 매혹당해 끌려 들어갑니다. 자신이 유혹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유혹이란 이미 결론이 난 상황이 되어야 느끼는 매우 추상적인 행위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으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전자 조작 식품을 우리 식탁 위에 갖다 놓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식탁 위에 올리지 않을 자세만 되어 있다면 기업은 다른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 방법을 제시한 것이 이 책의 3부로, 풀을 베지 않고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는 방법, 자연 치유 능력이 있는 사과를 기르는 과수원,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소가 풀을 뜯고 난 자리에 방목되어서 새로운 순환 시스템을 기꺼이 담당하는 닭들, 썩지 않고 마르는 자연재배 작물을 기르는 농부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축이나 곡물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합니다. 행복하게 자란 농작물들과 채소를 먹고, 행복하게 자란 닭들과 소고기를 먹으면서 우리도 더불어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자라던 초원과 자유롭게 다니던 들판을 상상만 해도 마음속에 풀밭을 기르는 것처럼 행복해집니다.


도시의 주택 앞마당에서 유기농으로 야채를 키우는 사람들, 옥상에서 가꾸는 야채들, 마천루에서 따는 벌꿀, 교육과 치유가 공존하는 도심 속의 농사는 사람들의 정신까지 온화하고 여유롭게 하니, 이 책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일은 음식 정의라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음식이 인권이라는 데도 공감합니다. 장수도 의미 있지만 건강한 삶은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밥상이 내 몸을 지나서 자식에게로 그리고 그 아래로 대물림할 수 있는 유산이 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이제 우리가 할 때입니다. 이 책이 힘든 발품을 팔아 내놓은 제안을 우리가 지금이라도 당장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신동화,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민음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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