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빵집에서 부풀어 오르는 희망

-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by 이지현

향기도 추억



빵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시간에 빵집 앞을 지나는 일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등굣길 버스 정류장 앞에 낡은 빵집이 있었다. 진열장 너머로 막 구운 빵의 윤기와 부풀어 올라 포실한 양감 속에서 김이 가늘게 피어올랐다. 이른 아침,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집을 나선 여중 여고생들이 그 빵집 앞에 오종종 모여 막 발효를 마친 빵의 향기를 맡곤 했다.

버스 정류소 앞 빵집은 그렇게 추억 속에 비현실적으로 인화되어 있다. 결국 그 빵집의 빵은 한 번도 사 먹지 못했다. 빵의 질감을 느끼는 순간 추상적인 향기는 이미 내 것이 아닌 채 갈기를 휘날리며 달아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인 소년을 생각하면 마치 그 오래전 빵집 앞에서 마법처럼 비현실적인 빵의 향기를 맡던 내가 떠오른다. 그러나 내가 그 빵집의 문을 밀고 들어가 보지 못한 것과는 달리, 소년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매일 끼니를 때우기 위해 빵을 사 먹는다. 그리고 어느 날, 친모가 비극적으로 자살한 후, 새로 들어온 계모와 그 딸인 무희로 인해 그 빵집으로 피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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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오븐 안으로의 피신은 현실의 피난처요, 잠시 들른 마법의 세계요, 비현실의 가벼운 세계였다. 그래서 빵의 향기는 부풀어 오르는 발효처럼 매우 몽상적이다. 그만큼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빵은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풍부한 향미를 가진다. 빵은 마법의 소재로 즐겨 다루어진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빵부스러기를 흘려서 집으로 오는 길을 찾거나, 숲 속의 빵으로 만들어진 마녀의 집은 마법의 소재로 차용된다. 빵의 부풀어 오름과 그 가슴 저미는 향기가 일상적으로 마법을 꿈꾸고 상상할 수 있던 소재였기 때문일까.


그러나 마법이 서구의 것이라는 편견은 오류다. 우리에게도 저 먼 고대, 가야의 수로왕을 맞아들이던 때부터 마법은 있었다. 집단적으로 모여서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면 왕이 스르르 내려온다는 <구지가>의 신화적 세계나, ‘박씨전’의 박 씨, 홍길동 등 무수히 많은 마법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의 떡은 없었다.


우리의 식성이 진행되는 1억 5천만 년 동안 완전 잡식 단계에 도달하면서 빵식 민족과 죽식 민족으로 구분되었다. 고대 오리엔트 사람들이 야생 마를 채취 하여 재배한 것이 빵과 과자의 역사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드는 오늘날의 빵의 원류로 알려진 이집트로 전해진다. 이집트의 태양의 신인 오시리스는 곡물의 신이며, 아내인 이시스는 빵을 만들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제빵사들이 길드를 조직했고, 제과점도 독립적으로 나타났다. 고대 로마 시대의 빵과 과자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다. 빵의 종교적 속성이야말로 바로 마법과 통할 수 있는 길이지 않았을까.


빵은 한국에서는 조선 말엽에 전해졌고, 국내 최초의 빵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제 손택이 선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광복과 전쟁을 겪으면서 원조물자인 빵이 대중화되었고, 1969년에 비로소 제빵용 강력분이 시판되었으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교에서 아침 점심으로 옥수수 빵을 배급했다. 밥을 못 먹고 오는 아이들이 먹고 오는 아이들보다 더 많을 때였다. 밀가루의 자율화 조치가 된 것은 1983년도의 일이므로 우리의 빵의 역사는 깊지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 마법의 힘이 일찍부터 빵을 통해서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빵은 우리와 일본이 공통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는 일찍이 일본에 소개한 ‘pan’이 일본식 발음으로 빵으로 불린 것에서 우리나라도 빵이라고 전해졌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우리에게도 발효 떡이 있다. ‘증편’은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탄 물을 섞어 찐 것으로 효모를 발효시켜 만드는 쌀가루 발효 빵으로 볼 수 있다. 발효를 이용한 빵의 종류는 300가지도 넘는다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다양한 떡은 마법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법의 빵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파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여서 뇌신경세포를 교란시켜 실수하게 만들고, 언어 교란, 배설 교란, 구역질을 일으킨다. 여기에 비밀 엑기스를 넣는다. 고대 로마에서 계피는 거대한 흡혈 박쥐가 지키는 늪지에서 자란다고 믿었다. 이집트인들은 방부제로 사용했는데, 미라를 만들 때 내장을 빼낸 공간에 계피 등의 향신료를 넣었다. 중국에서 계피는 가장 오래된 향신료 중의 하나로 기원전 2700년의 약초학에 처음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빵집에서 계피는 진정효과보다는 고대의 주술적 효능과 오히려 더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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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의 실연을 잊게 하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은 쇼크를 진정시킬 것 같다. 파인애플은 소화 불량, 신경성 피로 해소에 좋고, 섬유소, 단백질은 심장 쇼크나 발작증을 약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이 빵집의 ‘메모리얼 아몬드 스틱’을 먹으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기억난다고 되어 있다. 아몬드는 비타민 E가 풍부해서 치매 예방과 두뇌 발달,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그냥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다.


‘에버 앤 에버 모카 만주’는 전학, 유학, 이민 가는 사람들에게 잊지 말라고 준다. 모카는 무하라고도 불리는데, 에스프레소에 초콜릿의 맛을 첨가한 커피로 특히 저녁 식사 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 이 맛을 첨가한 만주는 마법에 걸릴 힘이 있어 보인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사과하고 싶을 때는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을, 싫은 사람을 떨어져 나가게 할 때는 노땡큐 사브레 쇼콜라를, 회사나 학교에 나 대신 가게 할 때나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할 때는 타드 푸딩을, 비즈니스 에그 머핀은 사업이나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마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루었으면 하는 소망이 담긴 빵이나 쿠키를 판매한다.


우리의 삶에서 아주 빈번히 마법의 힘을 빌리고 싶을 때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살짝 인터넷 쇼핑을 할 수만 있다면 비극이나 고통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땅콩버터 맛 대보름 빵은 나도 어릴 적 빵맛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빵으로 기억한다. 조잡하지만 빠작거리는 비닐에 든 눅진한 땅콩버터는 허기와 텅 빈 우울을 메울 수 있을 만큼 달달했다. 크기도 대보름달만큼 커 보여 안심이 될 정도였다. 주인공이 엄마에게 버려지면서 함께 남겨진 대보름 빵이 정월 대보름날의 풍성함과 대비되어 슬픔의 낙인처럼 느껴지는 건, 내 추억 속에서도 부풀어 오르는 유년의 허기를 메우던 공감의 빵이었기 때문일까. 현재 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식이 되었다. 그 빵을 먹을 때마다 그날 하루의 마법을 꿈꿀 수만 있어도 하루는 제법 근사할 것이다.




희망을 반죽하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소녀는 파랑새였다. 메테르링크의 동화극에 나오는 치르치르 미치르가 찾던 파랑새는 자신의 마음 안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도 주인공이 마법의 빵집으로 도피하지만 곧 현실로 복귀할 것임을 암시한다.

마법은 현실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현실이 비록 텅 빈 웅덩이들이 너무 많아도, 우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꿈꿀 자리를 제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설령 마법이 통하지 않는 현실이더라도 꿈의 세계는 그 우물처럼 깊고 아득하니 마법의 세계를 꿈꾸는 일이야 누가 무어라고 할까. 내 멋대로 한번 꾸어보는 꿈을.


헬렌 켈러는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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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문득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우리도 빵이 발효할 무렵의 그 향기를 잠시 느껴보는 게 어떨까. 실연을 했거나, 입사 시험에 불합격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떠오를 때, 마법의 빵이라고 생각하면서 먹어도 될 듯하다. 그러니 너무 우울해하지 말자. 이 세상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슬픔이나 불운을 해결해줄 마법이 존재할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마법의 손이라도 잡고, 과감히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탈출해본다. 바로 그 용기와 새로운 현실을 꿈꾸는 희망이 곧 마법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마법이 풀리면 다시 멋진 현실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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