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내가 가본 섬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다.
섬, 하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여름 바캉스 기분 때문일 것이다. 섬만이 아니라 살고 있던 곳을 떠나면 더 이상 생존공간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정현종 <섬> 중에서
이 시의 ‘섬’ 이 단절과 소외의 공간이라면, 이 소설의 ‘섬’은 서로 엉켜서 뒹굴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의 단절의 ‘섬’을, 가서 뒹굴고 싶은 ‘섬’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 음식은 인물의 처지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섬에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도시와 떨어진 거리, 외로움을 나타낸다. 주인공 철이는 부모가 위로 큰 자식들만 데리고 떠나버리고, 할머니와 산다.
먹을 것이 없는 섬에서 아이들은 삐비 풀을 뜯어서 오래 씹어 말랑말랑하고 찰진 덩어리로 만들어 껌처럼 씹는다. 삐비 풀은 화살촉처럼 생긴 모양으로 그 껍질을 벗기면 하얗고 보드라운 꽃대가 안에 들어있어서 그것을 모아 한꺼번에 씹어 껌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삘기라고도 하는 이 풀은 경상도에서는 삐끼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철이가 삐비 풀로 껌을 만들었다면, 나는 어릴 적 밀을 한 움큼 훑어서 오래 씹어 껌을 만들었다. 까끌까끌한 거친 밀이 달고 차질 때쯤이면 껌이 되었고, 더 씹으면 밀은 가루가 되어서 입안에서 사라졌다. 껌처럼 만들기는 칡이 가장 인기였다. 리어카에 거대한 칡뿌리를 싣고 칡 장사가 올 때면 아이들은 모두 몰려나와서 그 달착지근한 칡을 먹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얇게 썬 칡을 조금씩 떼 주는 맛에 리어카 주위에 서 있기만 했지 아이들이 가진 돈으로는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요즘은 칡즙을 파는 리어카가 등산객을 위해 서있는 것을 보았지만, 아이들은 칡을 먹는 것을 모르는지 그냥 지나쳤다. 철이가 섬에서 삐비 풀을 먹을 동안 나는 경상도 어느 지방에서 칡을 입 주위가 들큼할 정도로 씹어 섬유질만 남도록 먹었다.
철이는 ‘무엇보다 단 것이 먹고 싶었다’ 고 한다. 철이는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 편이었다. 부모님이 올 때는 사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탕과 껌은 아직도 아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으로, 다만 그것이 귀했던 가와 흔한 시절 인가만 다를 뿐이다. 우리도 어릴 적에 씹던 껌을 책상 바로 아래 붙여놓고 다시 떼 내어 씹곤 했었는데, 철이에게 이 귀한 사탕과 껌은 섬이 얼마나 외로운 곳인가를 드러내며, 부모와 이어주는 연결고리며, 도시와 섬을 잇는 징검다리였다.
생일이나 제삿날에만 먹을 수 있는 흰쌀밥. 철이의 생일에 할머니는 보리쌀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흰쌀밥을 짓는다. 명절이나 생일이 아니면 먹기 힘든 쌀밥. 두 번 삶은 보리를 넣고 드문드문 쌀을 뿌려 지어낸 밥을 먹기도 벅차 주식은 고구마였다. 그 시절은 이 소설 속의 섬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 시절엔 너나없이 보리쌀을 박박 문질러 씻어 전날에 푹푹 삶아두고 밥을 지을 때 쌀은 보일 듯 말 듯 지어서 먹었다.
학교서 혼식장려운동이 벌어지기 전에는, 보리쌀 비율이 더 많아 부끄러워서 도시락을 열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당시 시내 한복판에 사는 제일 부잣집 딸이 친구였는데 그 아이의 도시락은 요새 말로 뽀샵을 한 것처럼 새하얬다. 내 도시락과 그 애의 도시락을 함께 섞어서 혼식 검사를 받은 웃을 수 없는 일도 허다했다. 선생님의 보리쌀이 든 새까만 도시락까지 우리들 앞에서 공개하면서 함께 교실에 앉아 먹고, 교실 뒤편의 게시판에는 혼식을 잘 지킨 아이들의 막대그래프가 들쭉날쭉 올라갔다.
그처럼 그때는 강제로 혼식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 못살아서 쌀밥만 먹을 수 없는 생활이었다. 가난했던 아이들도 덜 부끄러운 시절이기도 했다. 분식의 날도 있어서 그날은 도시락도 없이 빵을 먹었다. 지금은 쌀이 넘치고 남아돈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잡곡을 섞어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저절로 혼 분식을 하니, 상황 반전이다.
철이가 사는 섬의 땅은 척박해서 밭농사가 주였는데, 이 섬에서 흰쌀밥은 섬의 가난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음식인 동시에 할머니가 철이의 생일에 차려줌으로써 외로움을 반영한다. 그래도 따뜻한 외로움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21세기인 지금이라고 나아졌을까. 매 맞는 여성 넙도댁은 남편 강주병 씨의 바람기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여자지만, 남편에게 그 문제를 말하면 늘씬 두들겨 맞기나 하지 별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 넙도댁이 변한다. 어느 겨울에 넙도댁은 실종되었다가 며칠 후에 엉망진창인 몰골로 나타난다. 꽁꽁 언 땅임에도 맨발이다. 넙도댁은 실종 이유를 며칠 동안 도깨비들과 어울려 한라산에 다녀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에 우환이 없으려면 보리개떡을 만들어 산에다 여기저기 뿌려놓으면 된다는 비방까지 도깨비들이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넙도댁은 도깨비의 힘을 빌려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 한다. 도깨비는 우리의 문화 속에서 구원자의 역할이나 해를 끼치는 이중성을 지니는데, 넙도댁에게 도깨비는 구원의 신적 기능을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두려운 존재였다. 넙도댁이 폭력을 당해도 구해줄 수 없던 동네 사람들은 도깨비에게 바치는 떡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했을까.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은 메밀묵과 떡, 팥죽을 좋아한다. 인간의 마음을 가져 선악의 양면성이 들어있다. 그러나 얼마나 가난한 섬이었으면 인절미나 백설기가 아닌 개떡이었을까. 도깨비도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어렸을 때 도깨비는 아무 데나 사는 줄 알았다. 할머니는 수수 빗자루, 광속 도리깨, 장독대 위에도 도깨비가 달랑 앉아 있다고 했고, 부엌의 선반에도 걸터앉아 있고, 부뚜막에도 심심하면 앉아서 구경한다고 해서 늘 도깨비가 두려웠다. 지금이야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려고 할머니가 그러셨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무서운 도깨비들에 대한 외경심도 아무 효험이 없었던지, 넙도댁이 실성한 것으로 여겨 남편 강주병 씨는 넙도댁을 끌고 대처로 나가고, 얼마 안 있어 동네 사람들은 넙도댁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넙도댁의 죽음은 남성의 바람기와 폭력 등의 불가항력적인 힘이 한 여성을 파멸로 이끈 결과다. 이럴 때 넙도댁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외면했던 마을 사람들에게 보리개떡은, 산도깨비나 달래고 동네에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액을 막기에 급급한 위선을 드러내는 음식이다.
넙도댁 만큼 이 섬에서 맞고 사는 여자, 업순네의 이야기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스스로 막아내는 이야기다. 업순네는 넙도댁이 실성한 상태로 남편인 강주병 씨에게 끌려 배에 태워질 때, 동네 사람들과 함께 보면서 자기 설움 때문에 가장 많이 운 여자다.
그러나 넙도댁이 남편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죽음에 이른 것과는 반대로 업순네는 신 내림을 받았다고 하면서 폭력 남편 남서방을 오히려 꼼짝 못 하게 만든다. 마누라에게는 폭력적이나 부모에게는 효성스러운 사람이었던 남서방에게 업순네는 부모 목소리로 또 남서방의 물에 빠져 죽은 여동생 병순의 목소리를 공수받아, 신 내림을 이용해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난다.
업순네는 섬에서 유일하게 읍내 중학교를 나온 배운 여성으로, 교육의 혜택이 자신의 처지를 벗어날 힘이 되었던 것일지, 아니면 도깨비보다 신의 힘이 더 컸던지, 보리개떡 보다 돼지머리가 더 힘이 있었던지 알 수 없다.
철이의 고숙 황설봉은 당연히 천하장사가 될 힘이 있었지만 소기름 국 때문에 단번에 천하장사에서 탈락하는 것도 이 시대의 희극이다. 철이 할머니가 소고기를 자주 먹어본 적이 없는 황설봉에게 모처럼 힘쓰라고 해 먹인 게 소기름 국이고 게다가 소기름이 허옇게 더께로 앉은 것을 그대로 떠먹이는 바람에 황설봉은 뒷간에 가서 힘을 다 써버려 막상 씨름대회서는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시절에는 소고기도 귀했지만 소기름도 귀해, 엄마 심부름으로 저녁거리로 소고기를 사러 갈 때면 소고기보다 더 많은 기름덩이를 얻어왔다. 이 소기름은 국의 양을 늘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핸드크림이 없던 그 시대에 손등이 터지 않도록 바르던 것이기도 했다. 왜 그리도 그때는 너도 나도 손등이 터져서 다녔을까. 버터처럼 굳은 소기름을 아주 조금만 떼 내어 손등에 싹싹 발라두던 일도 이제는 슬픈 추억이다.
철이 할머니의 강요에 의해 황설봉이 먹은 소기름 국은 차마 뿌리치지 못했던 소고깃국에 대한 강력한 유혹이었고, 천하장사 탈락은 음식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했던 시대의 희극이었다.
이 소설 속의 음식들은 고량진미도 아니고 산해진미도 아니다. 그 음식들은 어디나 있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겹고도 쓸쓸하다.
헬렌 켈러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고 했다.
자신이 처한 어떤 상황, 즉 외로움이나 폭력, 좌절 등의 순간이 와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너무 외로움이 절실하거나 혼자 있는 것이 어려운 시간에는 고요히 눈을 감는다.
누구에게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있다. 그 추억의 음식을 오늘 한 접시 먹으면서 지나간 것들과 고요히 화해하고 악수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일에 그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때에는 며칠 동안 오직 한 가지, 어떻게 벗어날지 생각해보자. 메모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아는 대로 써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를 것이다.
나는 그런 날은 시 감상을 해보았다. 좋은 시를 골라서 그 아래에다 감상을 쓰는 순간은 잠시 외로움이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혹은 아예 외롭거나. 그래서 외로움의 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를 만나러 갔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해보자. 어느 순간 극복해 있는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