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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발자국

by 이지현

혼자 걷는다.

따뜻한 발이 걸어가는 거리에서

어제 들었던 말이 하나 툭 떨어져 굳어진다.

발자국 위에 포개지는 산비둘기 날개를 본다.

말 하나를 잽싸게 꿰차고 순식간에 날아가자

발자국만 고요하게 남았다.


어제 지난 발자국은 물렁한 슬픔이었고

내일 지날 발자국이 화석이 될 동안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서성이며

너무 오래 현대물적 상상에만 몸을 맡긴 채

발이 머물렀던 시절을 속절없이 보냈으리.


우리 발자국을 밟을 사람과

우리가 밟은 발자국의 사람은 누구일까.

이렇게 우리가 말없이 스치는 일이

전 생애 지나는 바람처럼 가벼워 깃털 같은데

살면서 너무 많은 그리움이 남았다고 중얼거릴 동안

휘청거릴 정도로 패인 깊은 발자국 위에

꽃잎이 날아와 스미자 갑자기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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