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종목 Dec 05. 2023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칭찬
부탁 드립니다. 우울하니까요.

깊은 우울에 빠져 무기력과 싸우다.

'우울하다.'


단순히 피곤하다고, 무기력하다고 느낀 지는 조금 됐다. 

'우울'이라는 단어가 나의 감정과 상태를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은 며칠 전부터였다.

이번 우울은 가볍고 약하게 지나가지 않고, 매우 무거우면서도 빠르게 나를 잠식해 나갔다.


강사로서의 강의, 남편과 가장으로서의 도리 등 기본적 책임 수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강의도 곧잘 하고 있고, 가장으로서도 홀로 우울감에 쳐질 때를 빼고는 잘 지내고 있다.

오직 '나로서의 나'만 따로 가라앉은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침전되어 둘로 나뉘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감 속에서 가슴속이 들끓는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다.

강의, 컨설팅, 가족 모임, 지인 결혼식 등 일상을 보내는 일, 할 일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빈번히 옥죄는 명치 바로 위쪽의 압박감, 가슴속 불덩이가 나를 괴롭혔다.


나도 모르는 한숨과 처진 어깨,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보는 아내의 안절부절못함을 보는 것도 힘겨웠다.

기운 내게 해 주려고 애쓰는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그녀의 배려를 웃으며 받아들이는 것, 다정하게 대하는 당연하고 간단한 일마저,

애써야 간신히 해 낼 정도로 우울감에서 나오는 깊은 무기력이란 놈은 내 온몸을 휘감았다.


몇 글자의 글을 적는 것조차 싫었다.

생각만 해도 괴로웠고,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애썼던 몇몇 일들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좌절감 때문일까

각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잘 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허무하고 짜증 났다. 불안하고 갑갑했다.


머리를 마비시키고 싶은 마음에 책을 보고 게임을 하고, 웹툰도 뒤적거려 봤지만 

내가 즐겁게 찾던 것들이 더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기운 내려고 운동도 해 봤지만 가라앉은 마음 때문인지 감기몸살까지 겹쳐버렸다.

새벽까지 못 이루다가 눈 떠보니 대낮이기도 했다.


며칠이 지속되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왔지만 

온몸에 쌓인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나를 가라앉힐 뿐이었다.

그러면서 가슴속 불덩이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괜찮지만 괴로웠고, 아프지만 아무렇지 않은,

멀쩡했지만 곪아 있던 상태였다.


우울증이란 병이 든 건지 스스로 판단이 어렵지만 

아직까지는 뭔가를 해 볼 힘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애써 보려 한다.


그 중 한 가지의 노력, 다시 글을 쓸 것이다.

정확히는 써 둔 글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올리는 일이다.


이번 우울은 어긋나고 미뤄진 출판에 큰 영향을 받았다.

원래 인정과 찬사를 받으면서 동력을 얻던 사람이라 

몇 가지 이유로 미뤄진 출판이 반대로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만든 것이다.


내 책은 지금 다소 엉켜있다.

저자로서의 가치관과 철학을 중심으로 썼지만, 

출판사의 잘못된 제안에 영향받은 부분이 꽤나 난잡하여 전체 의도를 해치고 있다. 

그래도 수정하고 보완해서 괜찮은 부분 중심으로 재편하면 되는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깊은 우울이 만든 자학적인 비난이 내 목을 움켜쥔 것이다.


'어차피 안 좋은, 별로인 글인데 출판해서 뭐 해, 좋아해 줄 사람도 없는데. 

제안했던 출판사와 결별했잖아. 그게 별로라는 뜻 아니겠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글을 왜 써.'


한번 부정적 마음이 싹트니 지워내기가 어렵다. 

부정적 추론은 일부 사실과 결합하여 더 커져갔고,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책 내용이 좋다고 공감하면서 꼭 출판하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던 박상미 교수님과 

응원하는 마음으로 출판까지 해 주겠다는 폴앤마크 동료들의 선의가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주는 동냥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만큼 나는, 꽤나 무너졌다.


이걸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없어 보일 것 같아서 싫었다. 

초라해지는 것이 무서웠다.

남들은 수 권의 책을 턱 하니 잘도 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데

나는 실패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만큼 오만하고 나약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출판할 수 있다. 

회사에서 출판하는 일도, 출판사에 원고를 가지고 가는 것도 가능했다.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정신이 조금 힘이 들어서 그렇다.


책을 조금씩 브런치에 올리려고 한다. 

한 챕터 씩 올리면서 수정을 하면 건드리기도 싫은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다.

먼저 올리고, 이후에 출판하면 된다. 


글이 좀 별로면 뭐 어떤가. 그게 내 전부는 아닌데.

아직 첫 책도 내지 않은 초보인데. 모두 과정일 뿐인데.

고작 작은 과정 상의 어긋남 때문에 나라는 사람 전부를, 

쓸모, 효용성을 완전히 부정받았다고 여기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강의를 잘하고, 말을 잘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더 잘 전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아이디어도 탁월하고 이해력도 높아서 

누구 훈수 두는 일, 컨설팅하는 일은 아주 잘하는 사람이다.


기업과 지자체의 큰 프로젝트를 컨설팅하고 코칭하는 전문가인 동시에

누구보다 훌륭한 전달자이기도 하다.


'대화', '감정조절과 마음건강', '인간관계', 에 대한 책을 쓸 깜냥인지는 모르지만

실제 내 삶에서 몸부림치며 이루고 얻은 지혜와 깨달음이 있다. 

그걸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상황이 되도록, 삶이 되도록 돕기도 했다.


적어도 평생을 선한 영향력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부정한 이익을 취한 적도 없고, 피해를 주고 살지 않았다.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할 수 있는 일에는 계산기 두드리지 않았다. 


수 억 원의 손해를 끼친 지인들을 용서하면서 기다려주고 

되려 용기를 낼 수 있게 손잡아 준 사람이다. 

지인들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해 본 사람이다.

큰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다.


인생의 가장 큰 기둥이라 여겼던 사람들을 잃고, 아이의 난치병을 마주하고도

견디고, 승화시킨 사람이다


지금 좀 가라앉아 있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안 풀린다고 해서

약점이 좀 많다고 해서, 했던 일들이 조금 무너졌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조금씩 회복하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다시 나를 조금씩 더 믿어줘야 한다.


다만 지금의 나는 라섹 수술을 방금 마친 눈을 가진 사람처럼

약해지고 민감해진 상태라서 꼭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그림이 내 마음을 대신 말해준다.


힘 많이 주세요. 힘 내 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감정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