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냥뿐냥뿐 Nov 19. 2024

무지개다리를 건넌 그날 밤

펫로스 : 기억하기

만화 원피스를 보면 초파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명대사가 있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잊을 순 없다, 나의 첫 강아지였으니. 그런데 요즘 부쩍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하고, 혹 잊은 기억들은 없을까 싶어 글을 남기고 싶었다. 매번 아롱이를 생각하면 "행복했을까?" 의문이지만, 그래도 행복했으리라 생각하며 함께했던 날을 기억하고 싶었다. 3년이 지났어도 펫로스는 진행 중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최근 기억부터 거슬러 올라가기로 한다.


아롱이가 특별한 아이(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믹스는 특별한 아이라고 해준다)가 되어 무지개다리는 건넌 날, 날이 참 좋았더랬다. 찾아간 애견 장례식장은 참 고요했다. 그렇게 아롱이를 마주하길 기다렸다가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갖은 후 불러달라고 하시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님은 방을 나갔다. 작은 상자에 누워 있는 아롱이를 보며, 이 텅 빈 방을 좀더 채워주고 싶었다. 아롱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방을 꽉 채운다면 내 옆에 더 머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과 다르게 경황이 없어 참 준비한 것이 없었다, 아롱이 사진 5장이 전부였다. 그 방엔 아롱이 사진과 아롱이, 그리고 나와 엄마뿐이었다. 한참을 보고 쓰다듬어도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끌어안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우는 거뿐이었다. 


사실은 조용히 혼자 보내주고 싶었는데, 옆에서 엄마는 재촉했다, 빨리 보내주라고. 그 모든 것이 나의 시간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안락사도 장례식도. 엄마와 나의 애도의 방식이 다르고, 서로에게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라 이해했지만, 애도를 재촉당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아픈 일이 되었다. 아롱이를 보내고 아주 작은 도자기에 담아 데리고 오는 길에,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그 장면이 나에겐 티끌이었나 보다. 혹은 어린애처럼 모두에게 있는 게 나에게만 없는 거 같은 서러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상실감이기도 하고. 


빈자리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아롱일 보내고 온 첫날, 잠에 들었다. 함께 잔다는 것에 큰 의미 두지 않고, 아롱이가 있을 때 옆에 잔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아롱이 때문에 난 늘 몸을 대문자 S를 만들어 아롱이가 불편하지 않게 빈구석에 내 팔과 다리를 두는 최선을 했다. 생각하면 불편한 일이었지만, 그 불편은 너무 당연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매일이 소중하지만, 그중 몇 개를 꼽으라고 하면 함께 잠자는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몸을 뒤척이기도 어렵고, 이불도 마음대로 끌어올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자기가 좋아서 엉덩이를 내 배에 대고 자 놓고는 불편했는지 나를 뒷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그렇게 우린 늘 잠자리 쟁탈을 위해 치열한 밤을 보냈다. 

그날은 잠을 자다 몸을 뒤척였는데, 이불이 너무 가볍게 팔랑거리며 내 몸을 덮었다. 그 편안함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이불이 가벼운 게, 나의 잠자리가 편안한 게, 아롱이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게, 모든 게 낯설었다. 이 집에서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했을 뿐인데, 빈자리가 너무 크다. 진짜구나. 네가 없구나. 뒤척일 때마다 가벼운 느낌이 무척 낯설어 잠에 들지 못한 날이었다. 


분명 성장해서 옷이 작은 걸 거야, 살찐 게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