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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Jun 12. 2021

교사의 지도 방식 : 사람마다 어울리는 옷이 있다

누구도 어떤 방식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신규 교사라면 한 번쯤 선배 교사에게 듣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웃어주면 안 돼.", "초반에 아이들을 기선 제압해야 해.", "이쯤에서는 한 번 세게 나가줘야 돼~ 그래야 만만하게 안 봐."와 같은 말들인데, 대개 요령 없는 신규 교사가 말랑하게 아이들을 대하다가 학급 분위기든 교사 멘탈이든 뭔가가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되어하시는 말들이다.


  나 또한 우리 학교의 선배 선생님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를 몇 번 본 사람들은 내가 매정하지 못하고 서글서글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 판단하는데,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그런 사람이 맞다. 같은 학교의 선생님들 역시 그런 내 모습을 캐치하시고는 첫 담임을 맡은 내게 '세게 나가야 할 땐 세게 나가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해주시곤 했다.


  경험치가 없는 신규 교사는 그 말에 많이 흔들린다. 아이들을 어떻게 요령껏 다루는지 아직 잘 모르는데, 막연하게 '내가 혹시 지금 너무 말랑하게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작은 일에도 '혹시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봐서 이러는 건가', 우리 반 아이가 뭔가 사고를 쳐도 '내가 아이들을 제대로 못 잡아서 그런가'와 같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대개 아이들의 철없음이 나에게서 기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나 또한 첫 해의 우리 반 아이들이 친 사고는 전부 다 무능한 담임 탓인 것만 같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장면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요령은 없지만, 더 요령 없었던, 2년 전 첫 해일 때의 일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우리 반 아이들로 인해 많이 고민하고 있던 터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자잘한 사고를 친다는 말을, 그것도 연배가 있으신 선생님께 들을 때면 마음이 잔뜩 쪼그라들곤 했던 시기. '언제 한 번 아이들을 잡긴 잡아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기.


  그 시기에 우리 반에는 수련회에서 발을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장난기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목발이 아주 좋은 장난감이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가 목발을 안 쓸 때면 아이들이 목발을 총인 양 들고 총 쏘는 모양을 하며 놀기도 하고, 목발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온갖 장난을 다 치곤 했다. 옆 반에는 청각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어눌한 말투를 따라 하는 장난이 철없는 아이들 사이에서 잠시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위 두 가지 시기가 겹쳤고, 벼르고 있던 담임 선생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 된 것이었다.


  나는 그때 아이들의 시각에서 볼 줄도 몰랐을뿐더러, 이것을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아이들에게 의미 있을지 생각할 줄 몰랐던 선생님이었다. 그저 '어떻게 몸이 불편한 친구한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너무너무 기가 막히면서 화가 났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실망스럽기만 했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게 잘못된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종례 때를 벼르며 아이들에게 할 말을 교무 수첩에 '감정을 담아' 정리했다. 감정을 담았다는 사실이 가장 부끄럽다. 당시에는 내 나름의 절대적인 가치였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식'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지향점 없는 분노였다. 어쩌면 철없는 아이들보다 철없는 교사가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종례 시간이 되었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하고 화를 잔뜩 충전해 가서는 열심히 적은 종이를 교탁에 두고 분위기를 잡았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적당한 억양과 어조를 곁들여가며 말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말만 해서는 아이들이 정신을 못 차리지 않을까 하는 기우에 출석부를 책상에 거의 내던지듯 치며 잘못된 건 잘못된 거라며 화를 냈다. 그때 했던 대사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차마 부끄러워서 쓰지는 않겠다. 인사도 안 받고 아이들을 가라고 한 채 교실을 나와버렸다.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잘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깨달았겠지, 다시는 몸이 불편한 사람에 대해 실수하지 않겠지, 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품은 채.


  이 외에도 말랑한 선생님으로 보이기 싫어 소리를 치거나 정색을 하거나 뭔가로 책상을 치면서 아이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지도라는 말이 적절하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지도라고 한 행동들이었다. 어쩌다가 주변 선생님께 말씀드리게 될 때면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잘했다며 나를 칭찬해주셨다. 가끔 그런 모습도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나도 그때는 그게 맞는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년 차가 되던 해에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그땐 그랬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치고 말 줄 알았던 나는 왜인지 부끄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계기랄 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말들에 흔들려 아이들에게 소리 질렀던 내 모습이 문득, 너무 부끄러워졌다. '내가 왜 그랬던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아이들에게 가급적 좋게 말하고, 아니라고 말할 땐 진지하지만 약간은 단호하게, 이내 알아듣기 좋게 우호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사람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좋게 말해도 아이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때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쪽팔렸다'. 


  그때부터 내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가, 내게 가장 편안하고 멋진 옷은 무엇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 해의 나는 주변인들의 권유에 휩쓸려 안 맞는 옷을 입고 다닌 것이었다. 내가 그날 교실을 나오면서 느낀 불편함에도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이며 뭐가 내게 잘 어울리는지에 대한 의식이 없이 흔들렸으니 '그래도 잘한 것 같다'는 생각에만 집중한 채 계속 그 옷을 입고 다녔던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하기 마련이다. 보는 사람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애써 무시하고 남들이 권한 것이니 으레 맞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들이 내게 한 권유는, 물론 나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권유였고 자신의 기준에 기반하여 건넨 권유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엊그제, 담당 업무 연수 자리에서 드문드문 알고 지내던 선배 선생님을 만났다. 그 분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시고 그 분께서 가르치시던 아이들이 우리 학교로 올라왔던 터라 아이들에게 여전히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계셨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특정 아이를 지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고민이 새어 나왔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아이는 튀어 오르려고 하면 눌러줘야 한다며, 가끔 직설적인 말도 하면서 잡아 줄 필요가 있으며 본인은 이런 말까지도 했었다, 부드럽게 대해주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에는 선생님이 부드러우셔서 걱정이라는 뉘앙스도 함께 실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그 말에 흔들려 자책했을 것이다. 출근과 동시에 내게 안 맞는 옷을 입으려 들었을 것이고. 하지만 이젠 내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기에 자책하는 대신 내 스타일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한다. 그 분들의 스타일에 강점이 있듯, 나의 스타일에도 분명 강점이 있을 거라고. 어떤 지도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야말로 정답이 없는 것 아닌가. 10분의 선생님이 계시면 10분의 지도 스타일이 있듯이 말이다. 


  나를 믿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아이들 지도에 탁월하신 선생님을 보면 나도 그 옷을 따라 입고 싶어 진다. 대개 그 옷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옷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럽기도 하고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첫 해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옷을 따라 입어보기 전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임을 안다는 것. 따라 입어보고 싶으면 입어 보더라도, 이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면 얼른 벗어버리고 내 스타일을 더 보강할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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