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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Oct 06. 2023

교사의 수업 :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나를 거쳐간 아이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수업 종이 치고 20분이 흐르자 오늘도 어김없이 J의 머리는 책상과 점점 가까워진다. 곧이어 J의 머리는 책상과 만나게 될 것이고 더 이상 J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J쪽으로 다가가 J를 부르며 살살 깨운다. "J야, 일어나자~ 잠들지 말고!"


 '수업 시간에는 자면 안 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수업 시간에 졸려하거나 잠이 들려는 아이를 깨워야 한다는 본능은 아마 교사라면 다 장착하고 있을 테다. 하지만 이성이 작동하는 순간 본능은 얼마든지 힘을 잃을 수 있다. 수업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 반응으로 잠이 쏟아지는 경우도 있겠으나,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잠이 오는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면 대개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다. 심지어 수업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반응마저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J를 깨우는 행동은 나의 속마음과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 1교시인데 졸릴 수도 있지, 나도 졸려 죽겠구만' 또는 '저 아이가 지금 내 수업에 흥미가 없으면 충분히 지루할 수도 있겠다', '수업 시간에 자는 게 뭐 대수인가'. 그럼에도 나는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길 바라는 마음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물론 마음은 쓰리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을 깨운다.


 나는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가르치는 교과 내용 중 굳이 몰라도 삶을 잘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고 여기는 내용들도 있다. 임용생 시절에 교육과정을 꼼꼼하게 살피고, 각 영역의 개론서를 탐독면서 국어 교과의 각 영역별 본질과 의미에 취해 감격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국어 교사로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어쩌면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고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각양각색의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순전히 아이들의 시각으로 교육 내용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이걸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가 내키지 않는다. 교육의 목표와 가치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기여하는가'를 기준으로 측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아이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거나 이것만큼은 배우고 중학교를 졸업했으면 하는 내용들도 많다. 예를 들어, 논리적으로 말하기, 공감적 듣기, 비판하며 듣기, 통일성 있게 글쓰기, 문학 감상하며 내면화하기 등은 아이들이 충분한 동기를 갖고 '잘' 배운 뒤 중학교를 떠났으면 하는 내용들이다. 논리적으로 말하기의 경우 살면서 논리적이지 않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고, 무논리를 바탕으로 우기는 것이 얼마나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며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왔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그런 사람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내가 꼭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근거들은 대부분 이러하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될 아이들에게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내용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이들을 지켜주고 무기가 될 만한 것들.


 이처럼 요즘 나의 교육 활동은 초점이 '삶'에 맞춰져 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부디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데에 기여하기. 그렇다 보니 국어 교과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혹은 동아리, 주제 선택 수업 등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된다. 그리고 그 고민은 더 나은 수업을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제동장치가 되기도 한다. 가르치고 싶고 가르칠 이유가 명확한 내용은 신이 나서 가르치지만 스스로에게 "이것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 또는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질문했을 때에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아직 이유를 찾는 중인 내용들은 진심을 다해 가르치기가 어렵다. 의미가 있고 없고를 교사가 감히 재단할 수도 없고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학생들도 학습 동기가 있듯 교사도 교육 동기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잠을 이기지 못하는 J와 가물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혹은 지금은 수업 시간이기 때문에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대신하여 물었다. "얘들아, 쌤이 왜 너희를 깨우는 것 같아?" 꾸벅거리며 졸던 아이들은 무슨 그런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이미 아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사실 내 수업에 자도 괜찮아. 사람이 살면서 좀 졸릴 수도 있지. 나도 대학원 수업 가서 졸 때 많았거든. 내가 지금 졸거나 자는 걸 선택한 대신 나중에 그만큼 책임만 질 수 있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음... 쌤이 살면서 느낀 건데, 하기 힘들고 싫은 일들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참 많이 오더라고.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말야, 슬프게도 하기 싫은 일을 견디며 해야 할 때가 더 많아. 근데 하기 싫은 걸 자꾸 피하잖아? 그럼 나중에 버티고 견뎌서 해내야 할 때 해낼 수 있는 힘이 없어. 그러니까 음.. 내가 졸거나 잠든 너희를 냅두지 않고 조금이라도 일어나려고 애써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지금 내 수업이 너무 듣기 싫더라도 어찌어찌 들어보려는 노력을 해봤으면 해서야. 지금 내가 설명하는 국어 수업 내용을 들었으면 해서가 아냐. 수업 안 들어도 되고, 힘들면 멍 때려도 되는데, 그래도 엎드리지 않으려고, 잠들지 않으려고 애써 봤으면 좋겠어. 그 힘들이 나중에 분명 너희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래. 그럼에도 잠자는 쪽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고."


 진심이었지만 강요는 하고 싶지 않아서 담담하게 늘어놓은 말은 놀랍게도 J와 아이들을 깨어있게 했다. 아이들이 어찌어찌 수업에 참여해 보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던 그날, 나는 더욱더 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어쩌면 학습 동기는 다른 게 아니라 살면서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와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정말, 꼭, 아이들이 스스로가 꿈꾸는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가르쳐하는가'에 답하기가 참 어렵다. 오늘도 내일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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