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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Oct 01. 2023

교사의 필연 : 나 또한 사람임을 들켰다, 그러나

사람임을 보여주었더니 사람이 다가오는 마법

 교사와 사람 사이를 오가며 학생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지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브런치에 뱉어 숨을 고르고 난 며칠 뒤, 근무하고 있던 학교의 졸업생이 내 브런치 글을 봤다는 연락을 해왔다. 당시 솔직한 마음으로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아니, 내려앉았다. 내가 뱉어낸 글은 교사여서 행복하고 보람차다는 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교사로서 최선을 다했던 모습이 확실히 거짓은 아니었음에도, 한껏 괜찮교사인 척하던 거짓된 모습을 들킨 것만 같았다. 알고 보니 내가 새 글을 올렸다는 소식이 카카오 프로필과 연동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요즘은 구글 또는 네이버, 카카오 계정 등으로 이곳저곳 쉽게 회원 가입을 할 수 있고 로그인을 할 수 있는 연결의 시대인데, 처음으로 연결의 시대가 갖는 부작용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교에 찾아온 그 학생을 종종 마주칠 때면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나의 민낯을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기분이었달까. 부끄러움이 지속되자 감정의 근원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편치 않은 감정을 나름대로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었. 가까운 곳에서 한 사람의 독자를 얻었을 뿐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부끄러운가. 그것은 바로 교사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내 모습을 학생에게 보였기 때문이었고, 그 학생이 내게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부끄러움의 근원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그 학생은 나를 흔히 말하는 '좋은' 선생님으로 바라봐주는 고마운, 하필 장래 희망이 교사인 학생이었다. 그 학생에게 나는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학생들에게는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런 '좋은' 선생님이었다.


 한편으로는 글을 썼을 당시 나와 상담했던 학생도 그 글을 봤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일었다. 학생을 상담하던 시기의 나는 분명 지쳐 있었고, 약간 우울했으며, 의욕마저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울함에 젖은 학생을 마주하는 동안은 항상 널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약속했었다. 그러니 나의 솔직한 감정을 들켜 버리는 상황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되었다.  브런치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의 일이니, '교사다움'이라는 틀에 나를 많이 가두고 있던 시기의 일이다. 속상해도 속상하지 않은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 한없이 약하지만 강한 척을 해대던 그런 시기. 좋은 선생님이 아닌 내 모습은 잘못된 것이며, 오랜 훈련을 통해 고쳐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던 시기.


 하지만 이미 들켜 버린 것을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뜸 내 글을 본 학생에게 연락해 글 속에 담긴 문장들은 나의 진심아니라, 잠시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구차하게 말할 것인가. 애석하게도 그 글 속에 담긴 마음은 나의 진심인데 어찌하겠는가. 만일 나의 예상대로 그 학생이 내게 실망했다 한들 이미 일어버린 감정을 되돌릴 방법 또한 딱히 없었다. 그 학생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니고 그 학생의 것이며 그 학생이 누려야 할 자유니까 말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지만, 묻지도 않고 나의 방문을 열어 버린 브런치가 미운 마음은 여전히, 한켠에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그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를 맞았다. 고맙게도 그 학생은 여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했고, 내가 그 학교에서의 4년을 마무리하던 즈음 변함없이 편지를 한 통 건넸다. 늘 예쁘고 바른말만 담겨있던 기존의 편지와 달리, 교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힘들었을 순간을 다독여주는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인간적인' 위로와 격려가 담뿍 담긴 편지였다. 마치 내가 경험했던 어려운 감정들과 그에 따른 고민들을 소상히 털어놓았던 것마냥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문장들을 보니,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보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교사라는 가면을 비로소 떼어낼 줄 알게 된 그 순간 느낀 해방감과 자유란.


 이전까지는 학생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했던 나였다. 가령, 학생의 말이나 행동에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더라도 인간으로서 일어나는 감정을 보이기보다 차분히 지도해야 한다거나,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거나, 잘 모르더라도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거나, 실수했더라도 실수했음을 들키지 않는 게 좋다거나. 이처럼 알량한 자존심과 책임감, 의무감, 약간의 권위적인 태도 등이 뒤섞인 그 출처 없는 기준은 나도 모르게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었다. 누군가가 알려준 적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세운 답답하고 좁은 .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는 말은 다양한 상황에 적용되는 듯하다. 나 또한 그저 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일 역시 처음이 어려웠을 뿐, 그 후로는 오히려 내가 그것을 추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편견과는 달리 아이들도 역시 교사로서 다가가는 나보다 사람으로서 다가가는 나를 더 정서적으로 가깝게 여기는 듯했다. 철이 덜 든 학생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쌤도 사람이라서 솔직하게 기분이 상했다고 말하는 일,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은 날은 무리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며 도와줄 수 있냐고 묻는 일, 잘 모르겠을 땐 머쓱해하며 내가 모든 것을 알긴 어려우니 정확히 알아보고 알려줘도 되냐고 묻는 일, 내가 실수했을 땐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하며 해결해 주고자 애쓰는 일,  외에도 교실에 벌레가 나타났을 때 무서워서 도망간다거나, 힘들 때에 쌤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아이들과 나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학생과 교사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하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의외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을 때에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욱 예의를 갖추게 되는 것 같다.


 우연히 나의 글을 본,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지금의 내 태도를 갖추게 해 준 그 학생과는 때때로 인간으로서의 고민을 나누며 감사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교사와 사람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학생이 만일 꿈을 이루어 교사가 된다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순간이 올까. 가능하다면, 꼭 그 학생이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함께 교사로서 느끼는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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