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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20. 2021

교사의 상담 : 위기라고 말하는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 손을 가장 꽉 잡아줄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복잡하고 우울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 온 아이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지는 꽤 되었는데 견디다 못해 작년 2학기 즈음 내게 털어놓은 모양이었다. 학교에서는 마냥 성격 좋게 하하하 웃는 아이였던지라 그 너털웃음 뒤에 숨겨진 까만 부분을 듣고 많이 놀랐다. 꽉 닫아놨던 속을 터뜨리며 손을 부들부들 떨며 눈이 빨개진 아이를 보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가 했던 행동들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을 와락 쏟고 말았나 보다. 그 날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주겠노라, 생각하고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서도, 집에 있을 때에도 있는 힘껏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아이의 속을 헤아려보고자, 다독여주고자 애썼다.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내게 종종 "살고 싶지 않다",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등의 말들을 꺼내 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는 행동까지 고려하고 한 말은 아니었겠으나, 교사인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 생각 뒤에 이어질지도 모르는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책무에 요령 없이 지배되기 일쑤였다. 여행을 떠나 온 상황에서도 대뜸 아이가 털어놓은 말에 가슴이 쿵, 아이를 다독이고 나면 여행을 떠나 온 나는 온데간데없고 교사의 책무를 다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은 나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이와 학교에서 상담을 할 때면 아이가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 끌어당기느라 여분의 에너지를 다 써야 했다. 어둑어둑한 퇴근길 골목을 겨우 비추고 있는 위태로운 가로등마냥 내 열정도 더 이상 불타지 못한 채 깜빡이고 있었다.


  이런 날이 지속되면서 나는 내면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아이와 관련된 일은 물론, 관련되지 않은 작은 일에도 금세 지치고 짜증이 났다. 지친 마음을 이끌고 집에 온 어느 날, 눈물이 펑펑 났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야 그 당시 내가 어떤 마음에서 그랬는지 되짚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그리 지쳐있었는지 몰랐다. 그저 아이와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고 왔을 뿐인데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닫자마자 터져 버린 눈물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는 말 덕분이었다. 이유 없이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우울하다고 느낀다면 그 날 분명 내게 서러운 일이 있었음에도 바빠서 모른 척 지나쳤거나 충분히 다독여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러니 하루를 잘 되돌아보라는 그런 이야기.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나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껏 애써왔던 나를 되돌아보았다.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해소될 때까지 내 시간을 내어주고, 내가 들은 그 마음을 공감해주며 어떻게든 아이의 마음을 밝은 쪽으로 돌려보고자 고군분투했던 나를. 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내 기분이 울적한 날에도 나는 아이가 원하면 '나'보다는 아이에게 갔다. 나는 교사이니까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남은 에너지를 아이에게 다 쏟으면 나 자신에게 쏟을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자신에게조차 뒤로 밀리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이가 내게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냈듯이 나도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나와 붙어있는 내가 그 신호를 못 봤을 리가 없었을 텐데 난 왜 그 신호에 진작 반응해주지 않았을까. 내 마음속 여유 공간이 좁아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설령 내가 보내는 신호를 보지 못했다고 해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건 나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뜻이라 더 궁색해질 테니. 봤는데도 '곧 괜찮아지겠지'라며 미뤘다면 그건 더 너무했다. 아이의 작은 신호에는 발 동동 거리며 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동료 선생님들께 의논을 드리고 교감 선생님께 보고를 드리고 곧장 아이에게 달려갔으면서 내게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이 말은 어떤 뜻인지, 그 말은 왜 그렇게 말한 것인지 물은 적이 없었구나, 싶은 생각에 적지 않게 허탈해졌다.


  이런 생각이 나를 휩쓸고 나니 아이를 상담할 때마다 '지금 내가 아이에게 보이고 있는 반응을 내게 보인 적이 있는가' 질문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답은 다 '아니오'이다. 한 타인을 정성껏 들여다보고 나서야 나를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지 알게 되다니. 약 30년 동안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온 나에게 참 미안하기도 하고, 이제라도 잘해야겠다 싶다.


  이 외에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해내고자, 왠지 교사라는 직업은 더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병아리인지라, 내가 나를 져 버리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 걸맞는 말과 행동이 앞섰던 적이 수없이 많다. 주연과 조연이 뒤바뀌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이기 전에 그냥 사람 '나'가 먼저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나'가 훨씬 더 오래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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