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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Nov 20. 2024

[삶의 증상] 충동

서점에서의 만남

 때가 되면 서점에 간다.


 메모앱의 매 해의 독서노트가 기록되는데 읽음, 읽는 중, 구매대기로 칸이 나누어져 있다.  구매대기란에는 영상을 보다가 SNS를 하다가, 또는 읽고 있던 책이 언급한 또 다른 책을 기록해 둔다. 목록이 20여 권 남짓이 될 쯤이면 서점을 찾는다.


 그날은 제법 쌀쌀한 날씨라 잠시 외출을 고민했지만 서점을 찾았다. 서점 입구에는 늘 그렇듯 도서 위치 검색 기기가 놓여있다. 목록의 책 제목을 하나씩 입력하며 서가 위치가 표기된 종이를 20여 장 남짓 출력했다. 구역의 알파벳 순서대로 나누어 접어두고 결연한 마음으로 한 바퀴 둘러볼 채비를 한다.


 각 서가를 돌며 목록의 책들이 원했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 뒤에 온라인 서점의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둔다. 기본적으로 나는 구매에 충동적인 사람은 아니다. 예산이 머리에 있고 그 수준에 머무는 소비를 한다. 구매까지의 시간도 길다. 비쌀수록 사용할까에 대한 스스로를 향한 질문도 많아진다. 결단력이 없다고 얘기해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유달리 서점에서는 충동구매를 하고 만다. 과정은 늘 같다. 구역을 이동하는 길목에서 고민하던 주제의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집어 들고 목차를 살펴본다. 책의 핵심이다 싶은 부분을 펼쳐 읽어보며 매력적인 구절들을 발견한다. 구절에 담긴 생각이 앞서 읽었던 여러 책을 관통하는 선으로 연결 짓는다. 혹은 몇 주동안 앓았던 고민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문장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충동이 일어 책을 바로 구매하고 만다. 어쩌면 그리 적확한 문장으로 내 정리되지 못한 심상을 작가는 짚어냈을까.눈물이 날 지경이다.


 보통 충동구매한 책은 실패로 끝난다. 서점에서 보았던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가볍고 얕은 책이었거나 하나의 문장에 의미부여를 하느라 평범한 구절들까지 잘못 읽었던 탓이다. 그날의 반가움과 흥분이 괜히 멋쩍은 기분이다.


 충동구매의 요인에는 감정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이 있다고 한다. 책이 나를 위로하고 고민에 공감해 줄 것이라는 기대, 답을 찾지 못해 내내 고민한 시간의 보상, 계획적으로 놓인 서가 간 길목의 책과 주제들.


심리적 위로, 앎의 위로, 삶의 기술에 대한 위로가 길목마다 놓여 공감을 이끌어낸다.


 서점을 찾을 때면 책은 바뀌더라도 공감의 기획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람이 접하는 삶은 다채롭지 않다. 꽤나 겹치는 고민들을 동시대에 안고 살아가고 있고,  과거시대와 동시에 존재하는 삶의 고민을 한다.  공통의 주제를 잘 다루어낸 책들이 고전이 되고, 주목받는 책이 된다. 그런 느낌의 책을 몇 권 계산하여 종이봉투에 담았다.


오늘 나의 충동은 온당했을까?


 여느 때처럼 아마도 내일은 후회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방금 마주친 구절이 따끈할 때 어서 집에 가서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주말 끝은 구절사이에서 스며 나올 생각들로 수다스럽게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만큼의 소박한 충동은 허락하자.

이만큼의 기쁜 저녁은 스스로에게 허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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