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남편 친구들과 아들들이 함께 하는 여행을 갔다.
어젯밤 남편은 내게 '여보 늘 새벽마다 아침 차리고, 멀리 출장도 다니고 고생 많아. 내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푹 쉬어.' 하며 웃어 보였고 오늘도 아들 잘 챙길 테니 걱정 말라며 여행을 떠났다.
그리하여 난 오늘도 휴가!
역시나 최고의 휴가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이것저것 사부작대는 것이다. 오늘은 태블릿은 두고 나왔고 '안네의 일기' 책과 다이어리를 들고 나왔다. 무겁지도 않고 좋다. 이따 많이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야겠다.
남편은 내가 혼자 여행이라도 갈 줄 알았나 보다. 나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지만 연휴라 그런지 기차표며 호텔이며 다 예약이 꽉 차버렸다. 나 대신 아쉬워하는 남편에게 '나 카페 가는 것 좋아하잖아, 난 너무 좋은데.' 하자 남편은 '카페는 평소에도 갈 수 있으니까 평소에 못하는 걸 하면 좋았을 텐데' 했다.
그러고 보니 난 평소에도 카페에 자주 간다. 출장을 가면 점심을 과하게 먹고 싶지 않아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해결하는 편이니 말이다. 그런데 모처럼의 자유 시간에도 또 카페를? 나도 한편으로는 이해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 그 카페 가는 거랑 이 카페 가는 건 다르다.
아마 둘은 단순히 카페를 가는 행위 이상의 서로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 아닐까? 출장 중 카페를 가는 건 한 시간 동안 어떻게든 끼니를 해결하는 의미, 오늘 같은 날 카페에 온 건 편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를 상상해 보고, 책을 읽으며 한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의미. 이 게 맞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차피 ~할 텐데'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남편이 좋은 데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하면 '내가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는데 그건'이라고 한다든지, 예쁜 옷을 두고 살지 말지 고민하다가 '어차피 여름 다 갔는데'라고 한다든지.
그런데 오늘 카페에 와서 이렇게 즐거운 걸 보니 어떤 행위의 의미를 일차원적으로 이해해서 결정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매일 가다시피 하는 카페를 휴가라고 굳이 찾아온 것처럼, 좋은 데서 식사를 하며 아이의 엄마 아빠로 지내는 일상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 새로운 옷을 입고 거울 보며 스스로를 어여삐 여겨줄 수 있는 것. 그 차원으로 이해하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모든 행동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가끔은 이게 최선인지 너무 따져 생각해 보지 말고 편한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자.
- 이 글을 쓰고 한 시간 뒤, 서점에 와서 한병철 작가님의 '관조하는 삶'이라는 책을 들었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 행복을 파괴하는 것은 효율성의 논리다.'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답을 발견한 느낌!
의견을 주고 받는 느낌이 들어서 놀랍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