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
100개 넘는 지원서를 넣은 끝에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다. 원하던 회사는 아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면접에서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당장 다음 주부터 나오겠다고 답변했었다. 면접관님은 웃으면서 '내일부터라고 하진 않으시네요'라고 말했다. 그날은 목요일 오후였다.
다행스럽게도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사무실에 잠깐 들르고 다다음주부터 출근을 하면 된다고 했다.
부모님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취업한 동기,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저녁에 회포도 풀고 나니 금방 첫 출근일이 되었다. 첫날은 인사만 하는 거니 마음 편하게 오면 된다고 했지만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을 챙겨 입고 회사에 도착했다.
빈 회의실에 앉아있으니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서류를 들고 왔다.
생각하시는 연봉이 어느 정도셨죠?
분명 이력서에 희망 연봉을 적었는데 이걸 나에게 물어보는 이유는 뭘까? 어떤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이력서에 적은 대로 3,200만 원을 이야기하자 인사 직원은 잠깐 말이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인사 직원은 내부적으로 신입 직원은 2,8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성과가 있으면 다른 회사보다 높은 연봉 인상을 해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연봉이 400만 원 줄었다.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약 33만 3333원이 줄어드는 셈이다. 물론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세금 등을 제외하기 전 기준이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귀가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줄어서 3,000만 원은 받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2,800만 원과 3,200만 원의 중간 금액 정도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후.. 알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잘 없는데.. 연봉 정보는 다른 직원들이나 외부에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아시죠?
그렇게 초봉은 3,000만 원으로 결정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6개월 뒤에 입사한 서울 중위권 대학 출신 신입사원은 연봉 3,200만 원에 계약서를 썼다. 또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로 우리 회사는 연봉을 일단 후려치듯 제시한 후 조정을 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직원은 더 낮은 연봉으로 계약하기도 했고, 반면에 희망 연봉을 그대로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금요일 오후에 준비할 것 없이 편하게 잠깐 회사에 들르라고 이야기한 것부터 방심을 유도하고 연봉을 깎으려는 고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2025년 기준 대기업에 입사하는 대졸자 평균연봉이 5,000만 원을 넘었다고 한다. 최근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는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는 더 많다. 보너스를 다 합치면 7,000만 원도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외 금융권이나 다른 대기업도 업종마다 다르지만 시작부터 엄청난 연봉을 받는다. 심지어 연봉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진다.
연봉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인사 담당 직원은 앞으로 일하게 될 팀으로 나를 데려갔다. 면접관 중 한 분이 팀장님이었고, 근처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가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굉장히 젠틀하고 배려를 많이 해주는 모습에 안심이 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첫날 느꼈던 안심은 딱 3개월 뒤에 지옥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아직도 학교인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