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Mar 01. 2020

그 정도는 돼야 사랑이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배웠던 '사는 방식'

어렸을 때는 고민의 답을 주로 일방적인 감정과 생각이 담긴 에세이에서 찾았다. 살아 있지 않은 한 쪽의 이야기가 세상의 전부였고 이야기는 화자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읽혀졌다. 일방적이었다. 책 다음은 영화. 2시간에 모든 관계가 보여지기에 노력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달랐다.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 사이 관계를 담아내면서도 그 관계들이 배우들의 표정, 손짓, 말투에 담겨 입체적으로 보여졌다. 한번에 여러 감정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미루고 미루다 어설픈 관계가 주가 되는 드라마들을 보게됐다. 책이나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몇 배가 드는 만큼 몇 배의 여운을 남겼다.


이렇게 돌아돌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소재 때문에 유난히 보기 어려웠던 드라마가 내 인생드라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사는 이야기를 담은 '괜찮아사랑이야' . 우리가 지난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줄기에서 시작한다. 누구나 상처는 있지만 상처를 비치는 건 어린 행동이라는 생각에 선뜻 밖으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칠 때 쯤이라 '그냥 제목에 이끌리듯' 이 드라마를 보게 됐다. 그때의 나는 괜찮아야했으니까, 어떤 감정 앞에서.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나는 이상했다. 유난스럽게도 변덕이 심했고, 늘 겉과 속이 달랐다. 입으로 하는 이야기와 마음으로 하는 이야기가 달랐고 나 조차도 내가 답답해서 귀찮고 싫었다. 때로 좋은 모습이 보여도 모두 가식같았다. 적어도 사랑 앞에서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나처럼 어딘가가 곪아있었다. 인기작가 장재열은 어린시절 학대로 고통받았고, 형을 교도소로 보내야했다.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인 지해수는 엄마의 외도를 직접 보고 스킨십에 극심한 두려움을 가졌고, 그들과 함께 사는 룸메이트 조동민은 동료와 결혼했다가 3개월만에 이혼했다. 그 외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도 하나씩 아픈 구석이 있었다.


드라마는 상처를 드러내고 또 마주하면서 그것이 결국 치유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 어려운 과정에서 친구, 동료들이 있어 상처가 회복된다. 나 또한 주변에 의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부분이 서툴러요, 이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즐겁지 못했을 뿐.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던 중 드라마 속에서 스치듯 지나간 한 문장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지해수와 만나게 된 장재열에게 너 또한 지해수의 전 남자친구인 최호와 같은 취급을 받을 거라 이야기하는 박수광. 그에게 장재열이 날린 쿨한 한 마디.


"나는 최호가 아니야, 나는 장재열이야."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했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질투했으며 잘나고 멋진 사람들을 몰래 보며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싫은 소리를 듣거나 미움받다가 버려지는 사람이기 싫어 나는 나로부터 늘 도망쳤다. 혹시나 내가 보이는 날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 할지에 대한 상상으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나를 외면함에서 오는 외로움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이 나를 표현하지 못하게 막았다. 내가 장재열이었다면 최호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냥 장재열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솔직하자'. 미루지 않고, 생각만 하지 않고 바로 이야기하자. 지금 이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자. 그래서 불 같은 날들을 보냈다.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 목소리를 키워도 보고 낮춰도 봤다. 해보지 않은 일들도 해보고 새로운 스타일로 꾸며보기도 했다. 감정이 어디까지 치닫을 수 있을지를 테스트하는 사람처럼 마구 뿜어내는 큰 가마 같이 지냈다. 그런 내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질러놓은 말들에 겁먹어 조금 떨고 있는 정도?


물론 어느 날에는 불길을 품은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혹 현실이 드라마처럼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괜찮아, 사랑이야'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때문에라도 꽤 괜찮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의 나는 '나는 사랑했으므로 행복하다, 괜찮다. 이게 여유지.' 그리고 '사랑은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는 돼야 사랑이지' 라는 장재열의 말을 믿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