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오늘 Jan 19. 2020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나 대신 화를 내주는 유일한 사람


나는 내가 둘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친구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


여느 날처럼 큰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데, 단체 채팅방으로 연락이 왔다. 친구 하나가 간밤에 꿈을 꿨는데 아무래도 태몽 같다는 것이었다. 세 명이 있던 방에서 기혼자는 말을 꺼낸 친구와 나 둘이었고, 남은 하나는 저게 뽀뽀는 하고 죽으려나 걱정이 될 정도로 일만 하던 친구였는데(당시의 염려가 무색하게 멋지게 연애하며 살고 있다) 가능성이야 내가 가장 높았으나 나는 ‘그럴 일 없다’고 단언하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있으려면 있을 수는 있으나 ‘고작 그 정도로..?’ 싶었던 것이다(ㅋㅋㅋㅋㅋ). 그런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들은 태몽이 너무 근사하게 느껴졌다. 나무 울창한 숲 속을 트럭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사냥꾼에 쫓기는 꽃사슴이 있어 자기가 얼른 태워 구출해왔다는 것이었다. 눈이 얼마나 초롱초롱하고 예쁘던지 차마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인상의 9할은 눈이라는데, 눈이 그렇게 빛나고 아름다운 사슴이라니, 나일리는 없으나 아니라면 조금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다들 밥을 먹으러 가는데, 나는 따로 먹겠다 이야기를 하고 약국으로 향했다. 임신테스트기를 사들고 화장실엘 갔더니, 희미하게, 두 줄이 보였다. 그 길로 산부인과에 가 검진을 받았다. 그랬다. 그 꽃사슴이 올라탔던 트럭은 내 자궁 속을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쁨인지 놀람인지 하여튼 심장이 터질 듯한 흥분 상태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뻐하는 남편과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질 않았다. 태몽 꾼 친구가 있는 단톡방에도 ‘웬일이니’ 문자를 보내고 시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다들 너무너무 기뻐했다. 몇 번을 연락을 하다가 드디어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임신했어!” 신나서 얘길 했더니 엄마가 대뜸 화를 냈다. “아, 진짜 너 어쩌려고 그래!” 흡사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그 화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대충 커튼 쳐서 가려두었던 온갖 근심거리들이 짠 하고 정체를 드러내는 기분이었다.  애 맡길 데라고는 하나 없이 아이 어린이집에 던져두고 회사 다니며 일하고 있는 주제에, 남편은 매일 자정 다 되어야 들어오고, 일은 많아서 애 재우고 난 뒤에 새벽까지 남은 일 하면서, 딱히 물려받은 재산이랄 것도 없이 살던 자취방에 남편 기숙사 짐 딸랑 차에 실어가지고 들어와 이제 막 전세 얻어 살기 시작한 주제에, 어떻게 둘째를 키울 것인가.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버럭 소리 지르고 났더니 엄마는 “너 고생할까 봐 그러지” 대꾸를 했다. “아이 몰라!” 짜증을 확 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전화를 끊고 나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래서 시댁은 시댁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 시어머니의 기뻐하는 목소리와 너무 대조가 되었던 것이다(세상 다정하신 분이다. 어머니, 죄송해요 ㅋㅋ)


아이는 꼭 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라고 마지않던 둘째가 태어난다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양가 모두 지방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영락없이 남편과 둘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엄마는 그 순간, 어떻게 바로 그렇게 내 걱정이 되었을까. 나조차도 내 염려를 못하고 있던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불같은 화가 가슴에서 뿜어져 나왔을까. 나는 그날 아무에게도 엄마가 나에게 화를 냈다는 말을 하지 않고, 퇴근해서 애를 재우고 난 뒤 혼자 울었다. 고마운 마음도 들고,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엄마 말처럼, 정말 어떻게 하면 좋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던 그 둘째를 세상에서 가장 예뻐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다. 또래보다 말도 늦고 짜증도 많은 우리 둘째를 엄마는 저러다 애 버릇 나빠지지 싶게 ‘예쁘다’, ‘괜찮다’, ‘더 해라’ 물고 빤다. 애들이 번갈아 방학을 맞으면 행여라 사위 연차 내서 회사에서 눈치 볼까 봐 만사 제쳐두고 밤 차고 새벽 차고를 가리지 않고 달려오신다. 텔레비전도 없는 집에서 하루 종일 애 머리를 이렇게 땋고 저렇게 땋고 옷을 이걸 입혔다가 저걸 입혔다가 딸 퇴근하기 전에 화장실이며 거실이며를 깨끗하게 치워두시고는 사위 퇴근하기 전에 밤차 타고 내려가버리신다. 엄마란 왜 이런 존재인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자식만을 걱정하는가.


이런 걸 맨날 엄마가 나 옛날에 도시락 대충 싸줬다고 흉을 보고 다녔으니 나도 참 인간이 덜 됐다. 생각해 보면, 죽는 날까지 저 사람이 날 싫어할 걱정 안 하고 투덜대며 앓는 소리 할 수 있는 곳은 엄마 하나뿐인 것 같다. 엄마. 나의 진지(陣地). 나 대신 내 모든 적들과 싸워주는 곳. 내일 새벽이면 엄마는 또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나와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비록 내가 싫어하는 정당을 지지하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하시기는 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간절한 기도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저 정당 지지 기도만 빼고 ㅋ). 내 걱정 같은 것은 좀 안 해도 되게, 나 대신 화낼 일도 더 없기를 바라면서.


이런 얘기도 엄마한테는 절대로 네버 에버 할 수 없다. 엄마, 그때 내 대신 화내 줘서 고마워. 건강해야 해. 우리 오래오래 같이 있자. 사랑해... 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