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방배경찰서 2층 복도가 갑자기 술렁였다. 누군가가 “계장님!”하고 소리쳤다. 복도 양쪽 벽에 기대서서 한담을 나누던 스무 명 남짓한 기자들이 화재경보라도 울린 듯 일제히 뛰었다. 발을 밟힌 누군가가 지른 비명이 대기를 날카롭게 갈랐다. 나도 달렸다. 목적지는 강력계장실. 이제 막 출근한 강력계장은 문을 닫으려 했고, 기자들은 손잡이를 잡아당겨 기어이 문을 열어젖혔다.
2006년 7월 23일 아침, 서래마을의 한 빌라에 살던 프랑스인이 자신의 집 냉동고 서랍에서 검은 봉지에 담긴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다. 봉투의 입구를 열어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거기엔 시체가 있었다. 그것도 태어난 직후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영아 시체 두 구.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남자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담당서인 방배경찰서로 기자들이 몰려왔다. 서래마을, 고급 빌라, 프랑스인, 영아, 시체 두 구, 냉동고, 검은 비닐 봉지...따로 놓여있을 때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단어들. 하지만 이 단어들이 한 데 뭉치자 기자들은 참을 수 없는 욕망을 감추지 못한 채 달려들었다.
방배서는 오랜만에 사건기자들로 붐볐다. 어깨에 핸드폰을 걸고 손에 들린 수첩을 뒤적이며 자신이 건져낸 파편들을 사수에게 전화로 보고하는 막내 기자들이 시든 잡초처럼 구부정하게 낡은 회색 건물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한 여름이었다. 아침마다 장관이었다. 건기를 맞아 싱싱한 풀 찾아 이동하는 세렝게티의 누우 떼처럼 기자들은 경찰이 새로 찾아낸 이야기는 없나 하고 단체로 몰려와 강력계장에게 취재수첩을 들이밀었다. 강력계장실에서 그들은 경쟁적으로 땀 냄새를 풍기며, 밤새 마신 술 냄새를 과시하며 강력계장을 괴롭혔다. 강력계장은 아무 말 없이 홀로 눈먼 자들의 도시민이 된 듯 기자들을 못 본체 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밥 좀 먹고 옵시다.”하면서 큰 덩치를 작게 구겨 기자들이 짜 놓은 스크럼을 비집고 나갔다.
그런 날이 있잖은가. 문득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일찍 눈이 떠지는 아침. 취재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 그랬다. 밤새 괴롭힌 꿈도 없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이유 없이 평소보다 이른 아침. 여유 있게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30분이나 먼저 강력계장실 앞에 도착했다. 다른 기자들은 아직 오지 않았고 강력계장실 문은 빼꼼히 열려있었다. 이제 막 도착했는지 강력계장이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젓고 있는 게 문틈으로 보였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데 나를 발견한 그가 불렀다.
“들어와서 커피 한 잔 해요.”
그에게 이런 친절이 있었나. 다른 취재진이 아무도 없어 특종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밀려왔다. "예, 고맙습니다."하면서 왠지 어깨를 펴지 못한 채 계장실로 들어갔다. 다른 기자들과 한 패거리를 이룰 때에는 거침없이 넘어설 수 있었던 문지방을 그날은 혼자서 넘으려니 어쩐지 겸연쩍었다. 계장이 손수 타다 준 커피를 엉겁결에 받아 들고서 한 모금 마시는데 그가 말을 꺼냈다.
“오늘 아침에 국과수 갔다 왔어요.”
“아... 아?! 뭔가 새로 발견된 게 있나요? 부검 결과 특이한 점이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무슨 일로...?”
“애들 발 만져주고 왔어요.”
“무슨 애들이요?”
“서래마을에서 죽은 아기들이요."
죽은 아이들의 발을 만지고 왔다니, 금방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어려운 말도 아니었고 복잡하게 꼰 말도 아니었는데 강력계장의 그 이야기가 머리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양천구 신월동 큰 길가를 달리다 뒷골목으로 꺾어야 나오는 희끄무레한 건물, 목욕탕처럼 사방에 타일이 발라진 부검실, 스테인리스 침상 위에 놓여있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영아 둘, 그들의 발을 만지는 어떤 형사...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 형사들은 부검된 아이들 발을 꼭 만져줍니다. 온갖 험한 꼴을 당했으니 천국 가서는 행복하라고요. 그 아이들 발 만지고 왔습니다.”
아이들의 발을 만지는 것과 그래서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일은,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고 살해 동기를 규명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과는 너무나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 그 강력계장은 굳이 먼 길을 돌아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각론의 차원에서 공권력은 감동적일 정도로 따뜻했다.
범인은 곧 밝혀졌다. 영아들의 어머니였는데 그는 범행을 부인했다. 프랑스 경찰 역시 한국 경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어깃장을 놓았지만 후에 국과수 감정 결과를 받아들여 사건을 종결했다.
나는 아직도 그날 강력계장실에서 받아든 믹스커피의 온기를 기억한다. 차갑게 식은 아이들의 발을 감쌌을 그 손의 온기를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