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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Sep 14. 2021

남태령 4번출구, 국정원 요원

전 직장 사원증을 매달고 다니는 국정원 직원

한 사기업에 다니던 친구A가 직장을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후 그가 새로운 회사에 취직했다는 얘기를 친구B를 통해 들었다. 축하할 겸 셋이 모인 저녁 술자리, '국정원 합격 축하한다'는 말에 친구A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친구B에게만 그 소식을 '어쩌다보니' 전하게 됐고, 그 외의 다른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해왔던 것이다. 친구B가 무심결에 내게 전해준 '국정원 합격'이라는 문장이 A를 그토록 당황시킬 줄은 몰랐다. 너무 당황해해서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러고보니 그의 목에는 이전 직장 로고가 박혀있는 사원증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명치쯤에는 전 직장 사원증이 왠지 면구스러워하며 목줄에 매달려있었다. 친구의 직장은 국정원이 됐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을 전 직장 사기업 사원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술잔을 몇 번 기울인 후 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연고 없는 시골에, 차명으로 방을 하나 빌려, 거기 금고를 설치한 후 행여 조직이 너를 배반할 때 써먹을 자료들을 넣어두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한 수준의 조언이었지만, 그땐 진심이었다. 왜냐하면 친구를 만나기 전, 나는 또 다른 국정원 요원을 만났기 때문이다.


연고 없는 시골, 차명으로 빌린 방, 그리고 금고

약속장소는 서울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4호선 남태령역 4번 출구. 4호선은 자주 탔지만 남태령역에선 단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한 포탈 로드뷰로 남태령역을 살펴봤다. 사당역에서 한 정거장 차이였지만, 과천쪽으로 가는 완만한 언덕에 누운 남태령역 근처는 사당역 같은 분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갑자기 도시가 단절된 느낌의 한적한 동네가 로드뷰 화면을 클릭할 때마다 툭툭 전개됐다. 국정원 요원다운 접선 장소라고 생각했다. 제보가 거짓은 아니라는 안도감도 밀려왔다. 약속한 시간, 혼자오라는 그의 말 그대로 작은 카메라 한 대 들고 내린 남태령역 4번 출구 앞에서는 작은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터파기 중인 인부들을 제외하고는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날 것인가 하는 묘한 기대감을 품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 공사장에서 흙을 지던 한 남자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들었다. 멀리 간신히 얼굴이 보이는 저 인부의 입이 움직이자, 내 전화기에서 여보세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내가 만날 국정원 요원이었다. 국정원이 있는 내곡동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공사장이 이제 그의 생계였다.


그가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계기는 일종의 내부고발이었다. 주요 우방국의 대사관에 파견될 정도로 출세길을 달리던 그가 파견지에서 발견한 건 전임자의 자금 횡령이었다. 프로토콜 대로 그 내용을 본국에 보고했는데 그 보고가 그를 여기 이 공사판으로 내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정보는 수집하고, 문제는 보고하고, 비리는 감찰하라는 것이 조직의 프로토콜이었는데 그걸 따랐더니 그의 등에 흙더미가 올라타게 됐다. 남자는 울었다. 억울해했다기보다 황망해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중얼거렸다.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흙은 계속 날라야했다.


누구도 처음부터 제보자는 아니었던 것

전 직장의 사원증을 매달고 와 술은 거의 하지 않았던 국정원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나는 공사장에서 처음 만났던 전직 국정원 요원이 떠올랐다. 그래서 친구에게 연고 없는 시골집이며 금고 따위의 말을 늘어놨던 것이다. 앞날이 창창한 친구와 나눌 대화치곤 무척이나 상쾌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거짓말처럼 배신당하는 일은 벼락처럼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1961년-199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2008년-현재)이라는 원훈은, 무명의 요원들을 음지에서 조용히 정리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랑했고 헌신했던 조직에서 배신당하고 공격받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의 억울함이, 갈등이, 눈물이 '제보'라는 이름으로 도착하면 그들은 '제보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언젠가 '제보자'가 될 거라 예상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보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전달된다.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물증과 증언을 충분히 갖추고 시작되는 싸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연고 없는 시골, 차명으로 빌린 방, 그 구석에 마련된 금고 같은 건 없다. 그러므로 거센 태풍이 누군가를 할퀴고 지나간 아침, 아무일 없다는 듯 쨍한 하늘 아래 일렁이는 잔바람을 타고 둥실대는 비닐 봉지를 잡아 혹시 거기 남아 있을지도 모를 간밤 태풍의 흔적을 성실하게 더듬는 일이 우리가 '제보자'라는 이름의, 준비되지 않은 채 인생의 갑작스러운 재난을 맞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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