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문PD Apr 06. 2021

<미나리>는 공포영화다

 

관객마다 달랐겠지만 얼마 전 본 영화 <미나리>는 보는 내내 불안했다. 나른한 색감과 너른 앵글로 포장됐지만, 영화 속에는 하나같이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금방 바스라져버리고 말 것처럼 위태로운 장치들이 대놓고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장치들은 이런 거다.

이민 왔으나 한 번 실패했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혼밖에 답이 없는 듯한 선한 얼굴의 부부, 그들에게는 언제 위독해질 지 모를 선천적 심장병을 가진 아이가 있고, 부부의 일을 도와주는 백인 남성은 언제고 광신도 학살극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기이하고, 그 위기의 가정을 어떻게든 버티게 할 역할로 소환된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지팡이에 의지해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하고.


<미나리>는 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 저주의 칼질을 하며 달려들지 모를 사탄의 인형들을 곳곳에 잔뜩 숨겨놓은 채 사건을 진행시키는 영화였고,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이 사회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죽지 않고 살아남기를 간절히 응원하도록 몰아붙이는 이야기였다.


다시 말해 마음 편히 보고, 있는 힘껏 감동받을만한 가족영화는 결코 아니었고

차라리 공포영화였다고 해야 할까.


#윤여정 #오스카


#미나리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겨울을 맛보려면 이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