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마다 달랐겠지만 얼마 전 본 영화 <미나리>는 보는 내내 불안했다. 나른한 색감과 너른 앵글로 포장됐지만, 영화 속에는 하나같이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금방 바스라져버리고 말 것처럼 위태로운 장치들이 대놓고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장치들은 이런 거다.
이민 왔으나 한 번 실패했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혼밖에 답이 없는 듯한 선한 얼굴의 부부, 그들에게는 언제 위독해질 지 모를 선천적 심장병을 가진 아이가 있고, 부부의 일을 도와주는 백인 남성은 언제고 광신도 학살극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기이하고, 그 위기의 가정을 어떻게든 버티게 할 역할로 소환된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지팡이에 의지해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하고.
<미나리>는 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 저주의 칼질을 하며 달려들지 모를 사탄의 인형들을 곳곳에 잔뜩 숨겨놓은 채 사건을 진행시키는 영화였고,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이 사회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죽지 않고 살아남기를 간절히 응원하도록 몰아붙이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