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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는다

하루 한스푼 우울을 덜어내며

by 마음결


의료사고 이후, 내게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흉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확인하고, 밥을 먹고 나서 한 번 더, 외출 전 욕실 조명 아래서 자세히 살펴봤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얼굴을 훑고, 공중화장실 세면대 앞에서도 놓친 부분이 없는지 체크했다. 자기 전에는 손거울까지 꺼내 구석구석 확인했다. 흉터 자국은 얼마나 가라앉았는지, 이물감과 통증은 사라졌는지. 작은 회복이라도 발견하면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고,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더 나빠진 날엔 새벽까지 거울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아픈 부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보고, 만지고, 비교할 수 있는 것만이 회복처럼 느껴졌고, 나머지 삶은 배경처럼 흐릿해졌다. 1mm의 변화도 놓치기 싫어 들여다보던 어느 날, 목을 돌릴 때마다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목디스크라는 진단이 나왔다.


헬스 트레이너에게 목 상태를 말하자 그녀는 아주 단순한 동작을 하나 알려주었다. 일직선으로 누운 채 골반만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는 운동이었다. 별다른 장비도, 큰 힘도 필요 없는 동작이었다. 매트 위에서 그 운동을 반복하던 어느 날, 트레이너가 말했다.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골반이 움직이면 목도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한별씨는 움직임이 뚝뚝 끊어져 있어요."


다른 부위가 함께 도와주지 않다 보니 목에만 무리가 갔던 것 같다고 했다. 내 생활을 전혀 모르는 그녀의 말은 오히려 더 정확하게 들렸다.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한 영역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살아왔는지를 인정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흉 하나에 감각이 몰려 있었고, 그 외의 몸과 마음은 점점 무감각해져 있었다.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 집중이 삶 전체의 흐름을 끊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거울에서 한 걸음 떨어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볼수록 감추고 싶은 것들만 선명해졌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법을 익히려 했다. 처음엔 손거울을 다시 들고 싶은 충동도 많았지만, 익숙해지며 한 점만 파고들던 시선이 조금씩 풀려갔다. 요즘은 자기 전 눈을 감고, 머리에서 목, 어깨, 등, 골반까지 이어지는 몸의 흐름을 따라가며 긴장을 풀고 움직임을 느끼는 연습을 한다. 그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신기하게도 목디스크의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회복은 멈췄던 흐름을 다시 잇는 데서 일어난다는 것을 이제서야 조금씩 이해해가는 중이다.


나는 이제 아픔을 분석하고 해석하기보다, 삶 전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나를 부드럽게 이끄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나아간다는 건, 한 지점에만 몰두한 채 나머지 감각을 멈춰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여러 조각이 다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삶 전체를 흐르게 하는 힘을 되찾는 일이다. 나는 지금 그 힘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다시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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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스푼씩, 우울을 덜어냈던 날들의 기록입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나에게도 이 시간이 지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안도감이 되기를,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조용한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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