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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Oct 20. 2024

낯뜨거움과 포복절도를 지나 다다른 설운 눈물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아노라>

<아노라>(Anora, 2024)


지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를 개봉 전 미리 보았습니다. <스타렛>,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까지 꾸준히 미국 최하층의 고달픈 현실을 미화도 비난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다만 연민어린 시선과 함께 조명해 온 션 베이커 감독의 이 새 영화는 성노동자를 주인공 삼아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주인공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아픈 현실을 마치 동화처럼 그려나갔듯, 이번 <아노라>는 사랑이 간절한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 마치 <귀여운 여인>과 같은 신데렐라형 로맨틱 코미디처럼 이야기를 꾸며나가죠. 다만 션 베이커 감독의 이야기는 결코 현실을 벗어날 수 없고, 자연스럽게 영화는 <귀여운 여인>의 '하이퍼리얼리즘 버전'으로 뻗어나가며 관객에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쓴내 나는 여운을 남깁니다.  


브루클린에 사는 우즈벡계 미국인 스트리퍼 아노라, 아니 '애니'(미키 매디슨)는 가게를 찾는 남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몸을 이용한 다양한 레벨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런 애니에게 어느날 손님으로 러시아 재벌2세 청년이 찾아옵니다. 바냐(마크 아이델슈타인)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미친 듯이 애니에게 어필하며 자신의 으리으리한 집으로까지 초대하고, 애니는 그런 바냐의 천진하고 부유한 모습이 싫지 않습니다. 바냐는 거액을 줄테니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주일동안 여자친구가 되어달라고 제안하고, 이를 수락한 애니는 평소라면 언감생심이었을 호화찬란한 경험들을 만끽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 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덧없는 바람만 하던 차에 곧 있으면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가야 하는 바냐는 미국 영주권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애니에게 돌발적으로 청혼을 하고, 애니가 '예스'로 응답하면서 두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됩니다. 이제 스트리퍼 생활은 안녕이다, 하면서 애니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시작한 신혼생활도 잠시. 아들이 미국의 '매춘부'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냐의 부모가 그를 잡아들이려 하수인들을 보냅니다. 애니와 바냐의 집에 들이닥친 하수인들이 바냐에게 지금 부모들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자, 겁을 집어먹은 바냐는 애니를 남겨두고는 그길로 꽁무니를 뺍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애니는 어떻게든 바냐를 찾아 혼인 관계를 재확인해야 하고, 하수인들 또한 바냐를 찾아 두 사람의 결혼을 어떻게든 무효화시켜야만 하기에 이들은 바냐를 찾으려 원치 않은 동행을 시작합니다.


<아노라>(Anora, 2024)


션 베이커 감독은 미국 최하층민의 삶을 소재로 다루어 오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출을 선보이며 몰입감 넘치는 영화들을 만들어 왔지만, 특히 <아노라>는 그런 점이 장르적으로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성노동자가 주인공이기에 미화 없이 리얼리즘을 중시하는 감독으로서는 당연히 포함될 수 밖에 없는 강도 높은 노출 장면과 성애 장면을 동반하긴 하지만 젊은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뜨겁게 빠져드는 과정이 로맨틱 코미디처럼 휘황찬란하게 그려지더니, 바냐 부모의 하수인들과 애니-바냐가 대면하는 장면에서부터는 난데없이 스턴트와 몸개그의 경계를 아찔하게 넘나드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이어지고, 이내 각기 다른 목적으로 불편한 동행을 시작한 애니와 하수인들의 버디무비+추격극이 전개된 끝에 영화가 내내 품고 있었지만 여태 드러내지 않았던 현실의 민낯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며 고요하고도 짙은 여운을 일으키는 엔딩으로 향합니다. 이 예측불허의 전개 속에서 관객 또한 주인공 애니를 두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선뜻 가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연민하지만 미화하지 않고, 여과없이 드러내지만 탐닉하지 않는 션 베이커의 시선이 이번 <아노라>에도 여지없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장 말초적이고 은밀한 욕망을 이용해 돈을 버는 성노동자가 주인공인 이 영화가 가장 코미디적인 부분은, 아마도 어쩌면 누구보다 절실할지도 모르는 인간의 감정을 경박한 물질주의가 가뿐히 매도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수 차례 등장하는 애니와 바냐의 정사 장면들이 하나같이 무미건조하게, 마치 그저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을 보여주듯 그려지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여기에 진실한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상대가 제대로 된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 부모가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번 돈을 의미없는 곳에만 펑펑 써제끼는 남자에게 진실성이나 책임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남자와의 관계를 한때마다 사랑이라 믿은 여자의 감정은 매순간 물질적 잣대에 의해 시험받죠. 저 모든 것이 돈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무슨 목적도 없이 그저 흥청망청 놀러온 재벌집 자식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숙련된 직장인은 한껏 눈치를 봐야 합니다. 그저 지금 자기 몸만 생각할 뿐인 화상(?)이 부랴부랴 집을 뛰쳐나갈 때, 그 집을 지키는 (실은 집주인도 아닌) 반려자는 그보다 덩치가 1.5배는 더 큰 낯선 남자들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시끌벅적한 몸싸움을 홀로 벌여야 합니다. 이렇듯 영화에는 웃음과 분노와 조소의 순간들이 단 한뼘 차이로 나란히 위치해 있는데, 이를 통해 가진 자들이 아둔하게 즐기는 유희에 아무렇지 않게 소모되는 못 가진 자들의 비애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성노동자를 옹호하기보다는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 일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들의 존재가 인식되어야 하고 그들이 인간인 이상 그 존엄이 훼손되어선 안된다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죠. 그러나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와 사랑이라는 정신적 가치가 그 소중함을 모르는 화상들에게는 더 와르르 쏟아지고, 그것이 절실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찔끔찔금 인색하게 떨어질 뿐인 물질주의 사회에서 그 존엄은 가뿐히 무시되곤 합니다. 결국 우리가 영화를 통해 다다르는 애니, 아니 아노라의 여정 그 끝에는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한없이 척박한 세상에서 위험하게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던 그가 마음의 밑바닥에 기껏 한 줌 남아있던 감정마저도 외면당하고 말 때에 느끼는 설움, 그리하여 기어코 내가 원했던 게 타인의 마음이었떤 건지 돈이었던 건지조차 잊어버리고 만 이의 눈물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내 낯뜨겁다가 뜻하지 않게 배를 잡고 웃다가 끝내 마주하는 그 눈물 한방울은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 세상의 부조리처럼 무겁게 돌덩이가 되어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아노라>(Anora, 2024)


션 베이커 감독은 매 작품마다 새로운 배우들을 발굴해 그 시대를, 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 것처럼 그려내며 주목받게 했는데 <아노라>에서 타이틀롤을 연기한 미키 매디슨의 연기는 그 중에서도 단연 마음을 강타합니다. 외형적으로도 쉽지 않은 연기이기도 하거니와 자기연민이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은 채 자신의 현재에 충실한, 다가올 불행이 눈앞에 빤히 보이면서도 그것을 가능한 끝까지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능력과 상관없이) 극복의 의지를 불태우는,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그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기세를 굽힐 줄 모르는 캐릭터를 그야말로 잡아먹을 듯한 연기로 보여줍니다. 강인한 것도 모자라 호쾌하다고까지 해야 할까요. 이 사람을 응원해야 할까 방관해야 할까 고민하며 지켜보기 시작한 인물에게 끝내 마음이 가게 만들고야 마는 광활한 스펙트럼의 연기로, 내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거뜬히 오를 만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더불어 철이 너무 없어서 절로 마음으로 욕하게 되는 러시아 재벌2세 바냐 역의 마크 아이델슈타인이 보여주는 저혈압 치료 연기도 강렬했고, 바냐 부모의 하수인으로 처음 애니를 만나 왠지 모를 동질감을 갖게 되는 이고르 역의 유리 보리소프가 보여주는 과묵하면서도 엉뚱한 캐릭터도 인상적입니다.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션 베이커 감독의 연출력으로 보는 2시간 20분을 내내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가는 <아노라>는, 감독이 보여줘 온 특유의 관찰력이 한껏 성숙하게 빛을 발하는 덕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쳐 아카데미까지 노릴 만한 영화입니다. 앞장서서 어떤 화두를 던지거나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걸러내지도 살을 붙이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인물과 세계를, 다만 눈앞의 그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리는 이야기에는 열 가지 답보다 훨씬 더 많은 함의를 생각해 보게 하는 질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누구는 물질을 내다버리다시피 하고 누구는 구걸하다시피 하며 어우러져 사는 세계. 인간으로 하여금 살기 위해 존엄을 포기하게도 만드는 그 세계에서 존엄을 포기한 인간들은 그 감정까지도 응당 버려져야 하는 것인지. 가진 것으로 자기 존엄을 위장한 이들은 그 모든 욕망의 존엄을 지킬 권리가 있는지. 한바탕 대환장을 버틴 끝에 다다르는 아노라의 눈물 한방울이 그 많은 질문들을 함께 머금고 있습니다.


<아노라>(Anora,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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