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May 01. 2024

출입구 문을 막고 버텨요

행동수정 19

출입구를 막고 버티는 아이 


지연(가명)이는 어디서나 출입문 앞에서 골탕을 먹이는 아이이다. 지연이가 보이는 행동을 골탕이라고 말하지만, 지연이는 어른을 골탕을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싶다. 예전으로 거슬러 기억해 보면 내가 내 아이를 가르치던 시절이었다면 등줄기를 찰싹 때려서 억지로 치료실 안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요즈음은 아이의 몸에 손을 대서도 안 되고 억지로 밀어 넣어서도 안 되는 현실이 어떤 면에서는 아이의 행동을 더 강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지연은 문 앞에서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고 입구를 막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출입도 제한하고 있다. 지연의 출입구 통제 행동은 치료실 입실을 거부하는 행동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쩔 거야? 들어가서 수업하던지 아니면 나와서 집에 가자. 집에 갈까?” 마침내 아이의 행동에 답답하고 조바심을 온 몸으로 나타내면서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서 입실시키려고 했지만 매번 강하게 버티는 아이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보호자다. 치료실 앞에서만 버티는 게 아니라 학교 교실 앞에서도 버티고, 집에 도착해서는 현관 앞에서도 버틴다고 했다. #출입구에서 버티는 지연.

장애아동은 자신의 행동이 부정적 행동인가, 긍정적 행동인가는 상관이 없다. 표현되는 행동에 이어지는 반응에 따라 행동이 고착되어 습관처럼 나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나는 지연이가 문 앞에서 버티고 있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치료실 안에서 “나는 준비가 되었으니 너만 들어와서 착석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꿋꿋하게 앉아서 지연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사실 나도 조바심이 난다. 왜 신경이 쓰이지 않겠는가. 나의 이런 행동에 보호자는 견디지 못하고 언어적 촉구는 물론 신체적 촉구까지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치료실의 40분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이며 수업료를 생각한다면 일 분 일 초라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문득 아무런 조치도 없이 무심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양육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마음이 들면 나도 모르게 “지연이 매 주 버틸 거야? 문을 막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얼른 들어와라. 선생님 기다리고 있지. 오늘 재미있는 스티커 놀이 할 거야 재미있겠지.” 등의 구구절절하게 필요하지 않는 소리를 하게 된다. 양육자와 치료사가 안달하고 조바심나는 행동은 지연이의 부정적인 행동을 더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수업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수업비용을 생각하는 양육자의 생각과 충돌이 일어난다. “돈이 얼만데 애가 들어오기 기다리며 시간을  다 보내는지.”라는 보호자의 아쉬운 마음은 바로 종결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고로 부모의 입장에서는 치료사의 소극적인 행동이 보이므로 나와 지연이는 다음 달부터 만날 수 없게 된다.

지연의 행동을 보호자나 활동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로 살펴보면, 센터의 현관까지는 부지런히 도착을 한다고 했다. 물론 그 다음이 문제이다. 보호자가 입구에서 “지연이 들어가서 신발 벗고, 치료실 들어가세요. 공부 잘하고 와” 라는 말(지시)을 한다. 지연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른의  노파심에서 또는 격려 차원에서 아이에게 먼저 건네는 말이다. 항상 듣는 격려의 말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말을 듣는 순간부터 지연이가 버티기 작전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지연이가 센터 문을 밀고 들어오고 신발을 벗고 치료실에 입실할 때까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어땠을까? 어느 날 나는 “지연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 아무 말 하지 말고 기다려 봅시다.” 나의 생각을 부모님과 활동선생님께 제안을 했다. 나의 의견은 부모와 보호자와 더불어 행동과 결을 맞추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인데, 행동이 생각을 따라 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치료사인 나도 어쩔 수 없는 일 일뿐이다. 아이가 서툴고 실수투성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느긋하게 기다리고 여유를 주어야 한다. 우리는 부족한 아이를 양육하면서 무조건 해 주어야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눌려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자녀가 실수를 하고 서툴더라도 일단은 한 번 해 보는 경험이 최고의 치료수업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결론을 말하자면 지연이와 보호자, 그리고 치료사인 나와의 협응이 잘 이루지지 않았다. 지연이 보이는 출입구를 막고 지키는 행동을 지켜보고 긍정적인 수정보다는 강제로라도 치료실에 집어넣고 40분을 수업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동이 변화를 싫어 한다는 이유로, 아이와 힘 겨루기를 피하고 싶어서, 40분의 수업과 수업료가 아까워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잠시라도 아이와 아이의 행동을 보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 시간만이라도 보호자가 쉬고 싶은 마음을 이해했다. 보호자의 마음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끔씩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아동의 생활루틴을 바꿔 보는 시도를 해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앞만 보고 달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