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론>과 <생성학>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고정된 존재의 시대가 아닌 변화와 생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강조합니다.
사회 변화가 느릴 때, 사람들은 사물이나 사건을 고정된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변화를 중심으로 사회 규칙을 형성하게 됩니다. 철학에서는 전자를 고정론(완료형), 후자를 생성학(진행형)으로 정의합니다. 인류 문명은 이러한 고정론과 생성학이 끊임없이 경쟁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이 경쟁구조는 심지어 과학적 결과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고전물리론과 양자물리학은 고정론과 생성학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정론에서는 이론적 축적과 사회적 합의를 중시합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좋고 나쁨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지향합니다. 예를 들어, 논어에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각각 훌륭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E=mc²라는 고정된 이론도 양자물리학의 도전을 받습니다.
반면, 생성학적 관점에서는 군자와 소인의 개념이 변화의 중심에서 재해석됩니다. 생성학은 항상 현재진행형입니다. 생성학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아직도 미완성 상태에 있는 소인입니다. 군자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미래의 이상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지식과 관점만을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부족하더라도 군자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성학적 관점에서 현존하는 모든 사람은 아직 미완성의 소인이고, 군자는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군자와 소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가 고정론 지향 사회인지, 생성학 지향 사회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정론 지향 사회는 사회 안정을 추구하고 법과 원칙을 중시합니다. 집단지도체제나 암기식 공교육이 이뤄지며, 효율성과 능률성을 강조하는 보수적 문화가 나타납니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하며, 학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는 변화와 혁신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생성학 지향 사회는 열정과 혁신, 도전 정신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창의적 사고와 메타인지 능력을 중시하며, 다양성과 형평성을 사회적 가치로 삼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며, 삶의 가치 기준이 크게 변화합니다. 결혼, 출산, 학맥, 인맥, 직장, 부자 등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유연성이 높아지며, 사회적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제,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왜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지 조금은 더 명확하게 보일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회를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