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맨땅에 헤딩 -35
산티아고에서 ‘할머니 민박’을 운영 중이신 김순임 할머니는 오랜 시간 이곳에서 지낸 교민이다.
“한국 떠난 지 30년이 넘었어. 일이 년에 한 번 한국에 다녀오는데 비행기 값이 좀 비싸야 말이지. 자식들도 손녀들도 모두 여기서 살아. 아니 이 집은 나 혼자고 근처에서 말여.”
요 며칠 한국인 여행자가 드물어 반가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손녀가 둘인데 요새 연애를 하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죽어도 칠레 남자는 안 된다면서 말이다. 얘기를 오래 듣고 있어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녁에 뭐 먹고 싶어? 잡채밥 해줄까, 닭볶음탕 해줄까. 냉장고에 수박도 있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꺼내 들 먹어. 점심은 원래 안 주는 데 요새 손님이 없으니까 배고프면 해줄게. 가만있자, 내가 지금 장을 보고 와야겠구먼.”
이라며 외출 준비를 한다.
올해로 여든다섯이라는 할머니는 매우 정정해 보였다. 여행자들의 아침과 저녁을 손수 준비하고 청소와 객실 정리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다. 매일 아침이면
“얘들아 밥 먹자! 얼른 내려와.”
라며 소리치는 할머니가 정겹다.
김순임 할머니는 이곳 산티아고에서는 천사로 통한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아르마스 광장에 나와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빵과 우유를 나눠 주기 때문. 그게 어느덧 20년이 넘어 이제는 산티아고에서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지구 반대편 한국까지 소문이 돌았는지 공로를 인정받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여든다섯(2012년 기준)이면 힘에 부칠 텐데 그만두실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실로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