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 양육자 과정을 함께 마친 한 집사님 내외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책 선물을 자주 받는 터라 제목만 보고 한쪽에 놓고 지냈습니다. 어느 날 눈에 띄어서 내용을 보니 매일 감사할 것을 적는 <감사노트>였습니다.
하루는 저는 과연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나 생각하면서 감사거리를 찾아서 적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적다 보니 모든 게 감사였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이런 자문을 해보고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공식이 떠올랐습니다. 그 공식은 무엇일까요? 이름 하여 ‘불행 공식’입니다. 그 공식은 이렇습니다. 1> 99입니다.
도대체 이 공식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99>는 감사를 의미하고, <1> 은 원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1이 99보다 클까요? 수리적으론 맞지 않습니다. 인간은 99개나 되는 감사함을 잊고 고작 원망거리 1가지에 목숨을 걸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다 보니 행복할 리가 없고 삶이 녹록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이 공식을 좀 더 확대해서 이야기하면 <1>은 현상이고 <99>는 본질입니다. 우리는 현상에 매몰되어 있는데 그 건 고작해야 <1>밖에 되질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행복 밖에서 사는 셈입니다. 또 <1>은 세상 것이고 <99>는 천국의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것을 잔뜩 가졌는데 세상 것 하나로 씨름을 하고 싸우고 야단을 치는 꼴입니다.
그러면 이 불행공식을 행복공식으로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주 간단하다. <1>을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내려놓다’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그 본질을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한 목사님이 칼럼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작은 컵에 물을 반쯤 담아서 오른손에 들고 있다고 치겠습니다. 얼마 동안 들고 있을 수 있을까? 아마 1시간도 채 못 들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컵이지만 내려놓지 않고 붙잡고 있는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과연 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정말 사소한 것들을 작은 컵에 담아서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꼭 주고 있더군요. 도대체 그 작은 컵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흔히들 명예, 승부욕, 겉치레, 허영, 시기, 질투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행복과는 전혀 무관 것들을 담아서 한평생 들고 다니는 형국이지요. 하나님 보시기에 제가 얼마나 미련해할까요? 아무리 작은 컵이라도 빈 컵 보다는 뭔가 담겨있는 컵이 무겁습니다. 이 건 자연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하는 덴 또 다른 이유가 있습ㄴ;다. 우스개 소리인데요 우리가 하늘나라 천국으로 올라가려면 갖고 있는 게 너무 많으면 무거워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역시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붙잡고 있느라 힘이 들고 그것을 담느라 돈이 들고 이것을 못 갖고 가게 되어 손해를 보고 한 손을 못 쓰게 되어 손해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로 타산이 맞지 않는 셈법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이 셈법으로 삶을 계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이 공식을 한번 바꾸어 보시면 어떨까요? 바꾸는 작업은 간단합니다. 부등호를 돌리시면 됩니다. 즉 1>99 -> 99>1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돌리시면 1에 쏠린 눈에 99가 들어올 것입니다. 이제 그곳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바꾸는 건 참 쉽다. 맘이 없어서 그렇지 이런 쉬운 걸 못하니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답답하실 겁니다.
불행과 행복은 아주 큰 차이 같지만 실은 작은 차이입니다. 바로 방향 차이입니다. <1>보다 <99>을 갖고 계신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하세요.
성경말씀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