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힘이 들었습니다. 1인 기업가로 일한 지 25년째 실은 큰 복병(?) 아닌 복병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 사회 여러 면에서 그 판이 바뀌거나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늘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판이 커야 합니다. 즉 ‘파이가 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나눌 것이 많고 가질 수 있는 몫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판이 좋더라고 그 사이즈가 작으면 몫은 줄어들기 마련이지요.
판이 줄어들면서 그 여파가 저에게도 미친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더 절실해지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뭔가 돌파구를 모색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당시 제자훈련에 이어 사역훈련을 받고 있던 터라 나름 영적 근육이 조금씩 자라 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사역훈련을 함께 받는 J집사가 단톡방에 호수공원 사진을 하나 올렸습니다. 그리고 사진 설명으로 남겼다 “새벽기도 마치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출근합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뭔가 뒤통수를 한 대, 땅! 하고 맞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아! 새벽기도를 하고 출근하다니? 대단한 분이네!’ 정말이지 제 기준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 충격이 나에겐 신앙생황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출근을 안 하니까 새벽기도에 함 가보자.” 이렇게 맘을 다지고 아내에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 내일부터 새벽기도에 함 가볼게”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뭐! 당신이 새벽기도에 간다고?” 다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대꾸를 했습니다. 말인즉 그 게 가능한 일이냐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새벽기도에 나갔습니다. 신앙사경회 등등으로 아내와 함께 간 적이 있었지만 스스로 제 발로 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충격을 맞게 됩니다. 교회 본당에 들어섰는데 앞이 깜깜했습니다. 등을 켜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주일 예배시간처럼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본당에 먼저 오신 성도들이 각자 자신만의 거룩한 성스러운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떨 결에 늘 앉는 자리 저의 지정석(맨 앞줄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한 10분 정도 지나자 불이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약 80여 명에 달하는 성도들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새벽 예배를 드리고 다시 불이 꺼지고 각자 기도를 드리게 됐습니다.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고 마치 중학생 시절 스스로 인근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나온 느낌 같은 것이 몸을 에워쌌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눈물도 조금 흘렸습니다. 조금은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새벽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새벽기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4시에 기상해서 준비하고 약 30분 정도 걸어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집에 오면 너무 졸려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전 이때 이렇게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구나! 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습관을 만들고 있을 때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더 체험하시도록 연이어 <신앙사경회>와 <특별 새벽기도회>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 행사가 새벽에만 이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 기간을 통해 덩달아 ‘새벽기도 길들이’를 하게 된 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언젠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앞서 말한 J집사 뒤에서 일어나면서 “집사님! 나오셨네요.” 하면서 내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놀라 “에구 정말 다니시네요?” 하고 말하는 순간 내 팔목에 뭔가 쑥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만져 보니까 팔지였습니다. “아니 뭐예요?” 그 집사는 “혈액 순환에 아주 좋데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집사는 내가 열심히 새벽기도를 다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차고 다니던 게르마늄 팔지를 건네준 것이었습니다.
이런 뜻하지 않는 선물은 마치 초등학생시절 받아쓰기 100점 받고 오면 부모님이 맛난 음식을 해주시거나 칭찬해 주시는 것 같은 효과를 준 것 같았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 집사를 통해 작은 상급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입니다. 이렇게 8주간에 걸친 새벽기도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말하자면 새벽기도 입문을 한 셈입니다. 물론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도중에 포기라는 단어가 자꾸 아른 거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새벽기도시간엔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면서 부단히 울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우는 것에 대해 아내는 감동을 주시는 성령님이 임하시는 거라면서 기뻐했습니다.
<러너 하이(runner high)>라는 게 있습니다. 마라톤을 뛰는 마라토너가 약 20Km 정도를 달리면 달리는 것이 힘든 것에서 아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 거리를 뛰게 되면 마치 엔도르핀이 마구 생성되어서 고통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프레이어 하이(prayer high)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바로 8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나의 습관을 바꾸는 데는 약 3주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습관을 바꾸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8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기도가 기뻐지고 축복으로 치환됩니다.
물론 당시 8주간에 걸친 새벽기도 입문을 마치고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달라는 것밖에 없어서였습니다. 기도가 아니라 간구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팔찌를 준 그 집사도 생각이 나고 부단히 응원을 해준 아내도 생각이 나고 내 모습을 본 목사님들이 격려를 해주셔서 포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나름 고집이 있는 성격이라 들이대보기로 했습니다. 대신 5시에 시작하는 1부 새벽기도를 를 나가지 않고 6시 반에 시작하는 2부 새벽기도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아직은 새벽기도 대표는 안 되고 후보군이 된 것입니다. 물론 후보도 열심히 뛰다 보면 대표선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쯤 해서 저는 <새벽기도>에 대한 정의를 한번 내려 보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새롭게 벽을 넘어야 할 기회이자 도전이다!> 이렇게 나름 정의를 내리고 이 <넘사벽>을 하나씩 넘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넘사벽>을 매일 넘자 작은 은사와 은혜 등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지면이라 다 말씀을 드릴 수 없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를 조금씩 체험해 갔습니다. 그때마다 엄청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마구 나옵니다.
그중 가장 은혜로운 일은 제가 제법 긴 <로마서 8장>을 암송한 것입니다. 물론 남들은 경제적인 것 아니면 물질적인 것을 생각하시겠지만 그 당시 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영적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넘사벽>은 저를 영적전쟁 상비군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기해년 새해에도 이 <넘사벽> 넘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아주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저희 부부가 지금은 함께 새벽기도를 나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새벽기도를 부부가 함께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이 작은 발걸음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저에게 새벽기도는 이렇게 변했습니다. 새벽기도는 <새로운 영적전쟁을 위한 든든한 벽이고 복음을 위한 기틀(초)이자 도장(구)이다.> 오늘도 새벽기도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루를 엽니다. 전 새벽기도가 참 좋습니다.
“여보! 빨리 일어나! 새벽기도 가야지!”
성경말씀 ☞
너는 기도할 때 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하게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