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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Sep 24. 2023

그렇게나 뜨거웠던 그해 여름

할아버지를 보내고


할아버지의 발인을 앞둔 전날 밤, 조의금 문제를 논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앉았다. 하나라도 빠질세라 지폐를 헤아리고 구체적인 금액을 낱낱이 기억하는 동안은 스위치를 누른 듯 슬픔이라는 감정도 잠시 중단된 것 같았다. 외할머니가 할아버지 없이 보내는 두번째 밤. 나머지 가족들은 보통의 일상을 보내듯 장부를 기록하며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좋아하시겠다는 농담도 할 만큼 지금의 상황에 비근한 체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봉투를 꺼내던 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소년이었던 시절부터 함께했던 동네 친구라고 했다.


“진현이는 어릴 때부터 키가 컸어. 그래서 내가 진현이랑 같이 다니면 꼭 마을 대장부가 된 것 같구 괜히 뽐내고 싶고 그랬지.”


자신의 운명을 예행연습하듯 이미 수십번의 죽음을 위로했을 그의 눈에서 처연함을 읽을 수 있었다.


“엊그저께두 장례식을 다녀왔네. 그래도 여긴 조문객들이 많이 와서 다행이야. 거긴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참 쓸쓸하더구만. 자식을 잘 키웠어, 그래.”


절을 마치고 거푸 술을 들이켜던 그는 이제 정말로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어지러운 세상보다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이 더 기다려진다며. 어르신, 그런 말씀 마세요.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던 외삼촌은 연신 손을 휘저었지만 백발의 노인은 정말이라며 기신기신 말을 이었다. 이곳을 벗어난 우리 할아버지의 세상은 어떤 모양일까. 아니, 애초에 익숙한 곳을 벗어난 할아버지의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긴 할까.


“나는 먼저 떠난 친구들이 다른 세상에서 만나고 있을 것만 같아. 그래서 이젠 죽음이 기다려질 정도지.”


여든의 노인은 같은 공간에서 만나 이유없이 함께했던 것처럼 이승의 인연이 저승에서 다시 만나는 것 역시 당연하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기약없는 기대는 애인과의 경황없던 이별에 허우적대던 나에게도 묘한 위로가 됐다. 적어도 다른 세상의 나는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콤파스로 콕 점을 찍어두듯, 할아버지는 자신이 삶을 시작했던 곳에서 생을 마무리했다. 주욱 힘을 빼고 선을 그으면 동그란 원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경산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그곳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크고 작은 삶의 모양을 만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할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넷이나 낳고,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평생 텃밭을 가꾸고 상추를 심으면서 밭일을 하셨다. 남들이 보면 지루하고 한갓지기만 한 이곳이 할아버지에겐 평생 자신만의 이야기를 썼던 무대가 된 것이다.




며칠 잠을 잘 못 자고 그날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 탓인지 입안이 까끌거렸다. 괜찮다고 연신 손사래를 쳤는데도 엄마는 하루가 길 거라며 앞에 간단한 반찬거리와 국을 내놓았다. 기껏해야 스쳐보던 기사 제목에서 발인이라는 단어를 몇 번 들은 게 전부였던 내게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는 과정은 생경하면서도 두려운 일이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잠시 놓고 있던 슬픔의 무게를 다시 눈 앞에서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의 앞에 절을 올리며 연신 울음을 토해냈다. 외사촌동생은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채 할아버지의 무대였을 동네를 몇 번이나 오갔다. 거동이 불편해진 후론 할아버지의 24시간이 깃들었을 집안에서는 외사촌동생은 코를 훌쩍이며 몇 번이나 울음을 삼켰다. 고작 나보다 2살 어린 사촌동생도, 누군가의 말로를 이렇게 투명하게 바라본 건 처음이였을 테다. 할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무대였던 안방에서는 일부러 배회하듯 몇 바퀴를 더 돌았고, <전원일기>가 항상 틀려있던 거실에는 고요만이 가득했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현관을 나서는 우리를 향해 욕봤다며 연신 되뇌였다. 평생 살아오느라 욕봤소. 사실 할머니는 우리보다도 할아버지에게 이런 인사를 전하고 싶었을 거다. 구십도로 굽어있는 할머니의 등과 마른 뺨이 유독 마음에 밟혔다. 둘이었던 이곳의 추억은 이제 할머니 혼자 간직해야 할 몫이 되었기에.


화장터 전광판에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얼마의 대기시간을 거치니 이제 마지막 인사를 전하라는 관계자의 말이 들렸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관을 빙 둘러선 채 아빠를 잃어버린 꼬마처럼 너나할것없이 다시 엉엉 울었다. 예견하고 있다고 해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영원 앞에서 무뎌질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일은 삐죽빼죽한 가위로 종이를 난도질하는 것과 같았다. 

아빠, 잘 가. 이모의 인사를 들으며 나도 할아버지, 잘 가요. 꼭. 마음 속으로 희구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얀 유리 사이로 이제는 고운 가루가 된 할아버지가 보였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커보였던 할아버지는 이제 손으로 꽉 쥐기도 힘들 만큼의 작은 형체가 되었다. 가족들은 벽 너머로 빗자루로 뼛가루를 퍽퍽 쓸어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게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였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보다 돌아가신 후로 그를 더 많이 떠올린다. 그때부터였다. 이제 할아버지는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만 같다고 느꼈던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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