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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에서 망했다. 쉽게 생각한 내 탓이다.

딥펜 잡고 영문 캘리그라피 쓰고

by 흔적작가 Nov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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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아! 넌 롱다리가 아니야.
넌 숏다리아.

왜? 왜? 왜?
롱다리가 되었니.
흑흑흑.



고딕 영문 캘리그라피 과제를 하고 있다. 과제는 a부터 z까지 한 번에 쓰는 것이다. 중간에 잘못 쓰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으윽! 무섭다. 처음부터 다시라니. 만약 y까지 잘 넘기고, z에서 망하면? 생각하기도 싫다. 이러니 무섭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파벳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연습을 하고 나서 겨우 하나를 쓴다. 매번 쓸 때마다 살 떨린다. 그래서 첫 장을 쓸 때 어려웠던 d는 빼고 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 새벽에 d썼었. 그 어럽다는 d를. 썼는데 결국은 보기 ? 아니지 보기 나쁘게 망했다. 휘어진 d는 참 못생겼다. 그 느낌 아시죠? 쓰는 순간 '악! 망했다.'라는 생각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절망의 순간을요. 정말 주마등처럼 몇 날 며칠 연습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a부터 f까지만 쓴 상태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미 d 때문에 생명이 끝난 종이를 내려버리고, 새로운 종이를 꺼내서 두 번째 작업을 시작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번째는 조금 덜  진지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어쩔 수 없나 보다. 알파벳이 한 글자 한 글자 채워지니 열심히 주의보가 찾아왔다. 사실 이왕이면 세 번까지 가는 것보다는 두 번째에서 끝나는 것이 좋은 것이니깐. 어찌 되었든 열심히 연습을 하면서 글씨가 최상의 컨디션일 때 과제 종이에 다. 하루 만에 휘리릭 쓸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며칠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래서 주말을 잘 이용해야 한다. 오늘과 내일이 바로 그 주말이다. 그것도 과제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주말. 오후 2시부터 쓰기 시작했다. H(×2), I, J, K(×2), L.  7글자를 완성했다. 기뻤다. 잘하면 내일 오전, 혹은 오늘 잠들기 전까지는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가볍게 쓰면 오히려 긴장을 하지 않아서 잘 쓸 수밖에 없는 거야! 이런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마침. 정말 익숙한, 나름 쉬운 알파벳인 m이 나왔다. 'm쯤이야. 기본이지.' 이렇게 생각했다. 진짜로 기본선 두 개만으로 쓸 수 있는 글자가 바로 m이긴 하다. 마음을 놓았다. 첫 번째 세로선을 반듯하게 썼다. 뿌듯했다. 두 번째 세로선을 쓰고 있었는데 뭔가가 싸했다.


'어? 세로선이 왜 이렇게 길게 내려가지?' 


순간 눈이 커졌다. 자동발사가 돼버린 비명이 방안에 가득 찼다. 빠르게 교재의 d와 비교를 하는 눈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좌절하는 어깨의 처짐 또한 느꼈다. 망한 m이 미웠다. 아니, 너 왜 롱다리인 건데? 원래 너는 숏다리잖아. 롱다리... m이라니. 아이코, 머리야. 아니, 왜? 진짜 왜? 왜 롱이냐고.



브런치 글 이미지 2




람은 마음을 잘 먹어야 하나 보다. 만만하게 보는 순간 바로 뒤통수를 맞는다. 네, m이  뒤통수를 쳤어요. m이 말이에요. 허! 어이없네요. m이 m다워지려면 숏다리여야 한다. 짧은 다리라서. 그래서 m이 예쁜 것이다. 그런데 롱다리가 돼버렸다. 세상에나, 다리가 긴 m이라니. 휴우. 자만했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언제나 자만심은 나를 무너뜨린다. m은 빌런이 아니었다. 진정한 빌런은 m을 우습게 여겼던 나의 자만심이었다. 내 발등 내가 푹하고 찍은 것이다. 괜히 m한테 미안하네. 화풀이해서...



이제 어쩔 수 없다. 세 번째 과제 종이를 꺼내고, 다시 a부터 쓸 수밖에. 휴-우... 죄송해요. 아직 답답한 마음이 다 해소되지 않아서 그래요. 아니... 언제 쓰냐고요. 흑흑흑. 숙제가 밀렸다고요. 다음 숙제는 더 힘든데. 아, 정말 눈물이 난다. 휴-우. 짝짝짝.(뺨을 때리는 소리는 아닙니다.) 정신차리자. 그냥, 처음부터 다시 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포기 할 수는 없으니깐. 대신 이번에는 무조건 자만심을 버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신경쓰면서 써야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마음을 비우데 긴장감은 유지하면서. 그러면 더 이상 비명소리는 나오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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