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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Oct 25. 2022

실버버튼 없는 4년 차 유튜버입니다만

“이정도면 나도 하겠는데?”

“아 그럼 니가 해보던가!”


유튜브를 볼 때마다 자기도 할 수 있겠다며 중얼거리는 친구의 말이 그날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유튜버들은 이런 거 좋아하지 않느냐며, 이거 완전 유튜브 각이라며, 나보다 유튜브를 잘 아는 거 같았던 그는 내게 유튜브에 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막상 그는 유튜버가 되진 않았다. 그 이유를 물으면 “귀찮아서 안 하는 거지. 대신 내가 너한테 아이디어를 주잖냐. 안 그래도 최근에 82년생 김지영 영화 나왔던데, 그걸로 영상 만들면 100만 넘을 거 같은데 어때?”라고 답했다. 누군 안 귀찮아서 유튜브 하냐고. 100만이 누구 집 반려견처럼 부르면 나오냐고.


성공하는 게 쉽진 않지만 진입장벽이 낮고,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으면 급성장할 가능성도 있어 너도나도 “유튜브나 해볼까?”라는 말을 달고 산다. 솔직히 나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2018년 초부터 2020년 말까지 약 3년 동안 유튜브를 하면서 ‘사람은 겸손해야 된다는’ 말을 뼈로 새겼다. 그러니 이제는 말을 바꾸겠다. ‘이 정도면 나도 하겠는데’가 아니라 ‘이 정도라도 하는 게 대단하다’고. 특히 기획부터 제작까지 혼자 하는 1인 크리에이터들에겐 기립박수를 드리고 싶다. “이정도면 나도 하겠다"는 친구 말에 발끈한 것도 그래서였다.


무언갈 하기로 마음을 먹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해놓고 떡볶이를 먹는 것처럼 말이다. 나 또한 유튜브를 해야지하고 마음은 먹었어도 막상 실행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유튜브 자체보다 영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유튜브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영상을 기획해서 찍은 게 아니라, 영상 촬영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찍다 보니 자연스레 유튜브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영상을 좋아하는 것과 유튜버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험난한 북튜브의 세계


나는 소위 ‘북튜브'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북튜브란 책(Book)과 유튜브(Youtube)의 합성어로, 책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의미한다. 책을 소재로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책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겨울서점’과 ‘다이애나의 책장'등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유튜브에는 정보보다는 흥미 위주의 콘텐츠가 많았어서, 유튜브를 하려면 자극적인 콘텐츠를 다루거나 유튜버가 재치있고 입담이 좋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혹은 매우 감성적이거나.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극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성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겨울서점’과 ‘다이애나의 책장’이었고, 나는 그들의 영상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유튜브에 올라갈 영상을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군가 내 영상을 본다고 생각하니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영상을 올릴 수는 없었다. 난 그정도로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말이나 하는 영상을 두고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내 영상을 좋아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리지 않은 영상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과 기획이 필요했다.


첫 번째로 내가 구독하는 북튜브 채널들의 인기 동영상을 모아봤다. ‘언박싱', ‘독서루틴', ‘~하는 법'등 소비와 자기계발에 관련된 콘텐츠들이 인기가 많았다. 가장 시도하기 쉬운 ‘언박싱' 영상을 먼저 찍기로 했다. 책덕후에게 책을 사는 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유럽여행 때 썼던 소니 카메라를 꺼내 영상을 찍고, 편집은 곰믹스라는 무료 편집 프로그램을 썼다. 쓴 지 6년 된 노트북으로 영상을 편집하려니 자꾸만 노트북이 꺼져서,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만 일주일 넘게 걸렸다. 구린 노트북과 구린 프로그램으로 편집했으니 영상도 높은 확률로 구릴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라서 뿌듯하기만 했다. 용기 내어 올린 첫 영상은 일주일 동안 조회수 5회를 기록했다. 그 중 4회가 나, 1회가 친구의 몫이었다.


영상을 10개 정도 올렸을 때즈음 조회수가 처음으로 두 자리수를 기록했고, 소중한 구독자 8명이 생겼다. 구독자가 50명이 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는데, 다음 50명을 모으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50명을 만드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는데 100명 만드는 건 쉽다니, 참으로 요상한 플랫폼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자, 대부분의 유튜버가 겪는다던 슬럼프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유튜브를 하다 보면 특정 구독자 수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버벅대는 시기가 있다. 내 경우 1~50명까지, 700~1000명까지가 그랬다. 특히 구독자 700명~1000명 사이였을 때가 절정이었는데, 50명까지는 초반이라 그렇다 쳐도 유튜브를 1년이나 했는데 1,000명이 안 된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나와 같이 유튜브를 시작한 지인은 벌써 만 명이 넘었고, 심지어 나처럼 북튜브를 운영하는 분의 채널도 쑥쑥 크고 있었다. 나만, 내 채널만 그대로였다.


780명이었던 구독자가 그 다음 날에는 778명이 되어 있었고, 그 다음 날은 779명이 됐다가 또 그 다음 날에는 775명이 됐다. 마치 주식과도 같은 들쑥날쑥한 업다운의 향연에 멘탈이 탈탈 털렸다. 설상가상 악플도 달렸다. 달리자마자 삭제에 신고까지 해서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기억 속에 ‘한녀'라는 단어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1,000명도 안 되는 채널에 나를 욕하는 댓플까지 달리다니, ‘이것이 바로 유튜버의 무게?’라고 말하기엔 채널이 너무 작은 거 아니냐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슬럼프는 6개월이 지나서야 잦아들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걸렸지만 어찌됐건 구독자 수 1,000명은 넘긴 것이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유튜브도 알았는지, 1,000명이 되자 채널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영상의 퀄리티도 점점 나아졌고, 독서루틴과 책장투어, 왓츠인마이백 등 당시 유행하던 콘텐츠를 따라하니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도 했다. 1,000명이 넘은 북튜브 채널은 출판사에서도 유심히 보는지, 출판사 이곳저곳에서 책리뷰를 제안하는 메일이 왔다. 초반에는 이런 게 바로 성공의 맛인가 하며 신나게 책리뷰 영상을 올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기획과 노동력에 더 가치를 느껴 메일을 보지 않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15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건데, 수고비 없이 달랑 책 한 권만 주는 게 말이 안 됐다.



유튜브로 맺은 인연과 새로운 시작


유튜브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건, 유튜브를 한 지 2년이 지나서였다. 그때 나는 한창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 책리뷰 영상도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 서로 알고 지내던 어느 북튜버 분께서 내 영상을 보고는 지인의 팟캐스트 모임에 나를 소개해주셨다. 종종 그분의 채널에서 댓글을 달았던 내 소소한 행동이 좋은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도 마포FM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맺은 인연은 또 있었다. 구독자이자 인스타그램 팔로워였던 분과 만나 함께 놀다가 절친이 된 것이다. 당시 나는 김한민 작가님의 <아무튼 비건>을 읽고 충격을 받아 비건 지향 선언을 했는데, 내 모습을 본 팔로워이자 지금의 내 친구가 영향을 받아 자신도 비건 지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비거니즘이라는 키워드로 빠르게 친해졌고, 지금은 ‘EFG(이엪지)’라는 콘텐츠 브랜드를 만들어 비건지향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유튜브를 3년하면 실버 버튼을 받을 줄 알았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채널이 떡상하고, 광고를 받아 짭짤한 수익을 얻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일주일을 꼬박 투자하는 날들이 반복됐지만 떡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유튜브를 오래 하다 보면 어떤 콘텐츠가 터지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과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라면보다 죽에 가까웠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영상을 만드는 나한테 떡상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라면이 아닌 죽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나를 좋아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이건 비단 유튜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꾸준히 무언갈 하다 보면 날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 사람들은 나를 응원하기도,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나서서 소개해주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지지하는 마음이 되고, 지지하는 마음은 기꺼이 돌보는 마음이 된다. 


번아웃으로 유튜브 장기 휴재를 선언했을 때 받은 구독자들의 편지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됐다. 지금도 가끔씩 DM으로 독자들의 반가운 연락이 오곤 한다. 유튜브를 애청하고 있는 구독자라면서, 요즘은 잘 지내시는지,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있고, 좋은 영상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으로 빽빽하다.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고, 시간을 들여 이렇게 긴 편지를 쓴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벅차고 기쁜 일이다.


그들의 다정한 말 덕분에 다시금 일어설 용기가 생겼고, 2022년 3월, 나는 다시 유튜브로 돌아왔다. 지난 3년 간 실버 버튼을 받는 일은 없었고 어쩌면 영영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유튜브에 돌아와 다시 영상을 찍고 올리는 이유는, 어찌보면 단순하다. 나와 내 영상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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