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로부터의 단절, 갑자기 생리현상에 몰두하는 하루하루, 내가 누구인지 까먹어가는 이 과정이 아직 뭔지 잘 모르겠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 사랑을 느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기가 태어난 뒤 몸을 조금 추스르고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놀랍도록 강렬한 사랑이 내 안에서 솟구쳐올랐다. 연인이나 부부 간에 느끼는 사랑 말고, 부모님한테 받는 내리사랑 말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신이 있다는 걸 믿게 만들 만큼 - 내 자신의 고통을 잊을만큼 강렬한 거였다.
막달에 아기가 너무 커져서 유도분만으로 낳았는데, 아기 빨리 내려오라고 하루 두 시간씩 걸어서 그런지 자궁문이 3센치 열린 상태로 시작해 무통주사 효과를 톡톡히 보며 진통은 겨우 20분 느끼고서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후처치가 너무 아파서 꼬매는 게 다 느껴졌고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도 아기한테 제대로 말도 걸어주지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병실에 내려왔는데 열상 때문에 너무 아프기도 하고 피곤이 몰려와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미역국을 먹고 이제야 좀 쉬려는데 모자동실 시간이라며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병실로 데려와 젖 물리는 법을 알려주신단다. 그땐 병원이 모유수유 권장 병원이어서 배려해준 것도 모르고 '나 이제서야 좀 쉬려는데 왜 괴롭히는 거야' 하는 마음이었다. 아기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젖을 무는 걸 보고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제 좀 자고 싶었다.
아기가 가고 나서 밤이 되었다. 갑자기 남편이 옆에서 자고 있는데도 꿈속에 아까 봤던 아기와 남편 얼굴이 번갈아 나오면서 너무 보고 싶고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모자동실을 신청해서 아기를 세 시간동안 들여다봤다. 눈을 감고 있는 아기를 요모조모 뜯어 보니 남편과 똑 닮았다. 새근새근 숨쉬고 있는 아기가 이제서야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기가 눈을 아직 뜨지 못해서 멀쩡히 깨어 있는 아기를 옆에 두고 왜 맘마를 안먹고 잠만 자는지 걱정하는 바보엄마. 그냥 저 작은 것 같기도 하고 큰 것 같기도 한 아이가 전날까지 내 뱃속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직 나는 아무 준비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나온 아기가 몹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진통을 20분밖에 못 느낀 나에게 순산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제대로 앉지도 걷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솔직히 임신해서 내 몸이 힘들다는 생각과 회사 일에 좀더 몰입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 지배적이었다. 그래도 뱃속의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건 왠지 꺼리게 되었다. 전자기기 대여섯개를 하루종일 옆에 끼고 있는 직업 특성상 전자파 차단 담요를 항상 덮고 일하고, 두통이 심할 때도 타이레놀 한 번 먹지 않고 버티고, 좋아하는 양념게장도 날씨가 선선할때 정말 회전율 좋은 가게에서 한두점 정도 먹은 게 다였다.
임신 28주가 되니 병원에서 입체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아기 손가락 발가락 등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운 좋으면 엄마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아기 얼굴을 3D 그림으로 미리보기 할 수 있다. 결국 우리 신비주의 아기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초코우유도 마시고 열심히 걸었건만, 고사리 같은 손과 귀만 보여주고는 오른쪽 골반 쪽에 머리를 콕 박고 쿨쿨 자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귀는 내 귀를, 손은 남편을 똑 닮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초음파 사진에 아기 입이랑 코의 모양과 양 볼이 선명하게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남편을 쏙 닮아서 아기가 태어나는 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8개월차에는 몸이 말도 안되게 무거워지고 허리가 아파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 자비로 리클라이너 의자를 가져다 놓고 거기서 일하며 버텼다. 그렇게 했는데도 하루에 네다섯개의 회의를 하고 나면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좀비가 되어 제발 누구라도 자리좀 양보해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게 되었다.
막달에 출산휴가에 들어갔을 땐 수시로 배뭉침과 가진통을 느끼며 밤에 잠을 쉽게 잘 수 없었다. 게다가 신체리듬이 신생아 돌보기에 최적화되어 새벽 세 시만 되면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짐볼 위에서 유튜브를 보며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가 동네 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가곤 했다. 요즘 주변에서 임산부를 구경하기 힘들어서인가, 귀에 헤드셋을 끼고 캐롤을 들으며 산책하는 나에게 동네 어르신들은 심심찮게 인사를 건네셨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노곤해져서는 다시 단잠에 빠져들었다.
그 때의 생활 리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기가 통잠을 자도 나는 새벽에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아기가 수유 후 첫 번째 낮잠을 자면 나는 샤워도 하고 밥도 차리고 글도 쓴다. 원래 나는 잠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 밤잠을 최소 8시간 이상은 자야 하는데, 지금은 아기가 잠들고 2~3시간 정도 후에 잠들어서 아기와 같이 깨니 밤잠을 5~6시간만 자고도 버틴다. 물론 모유수유로 인해 커피도 안마시고 있으니 낮이 되면 병든 닭처럼 졸기는 한다. 그럴 땐 그냥 아기랑 같이 짧은 낮잠을 잔다. 아기가 깨어있을 땐 큰일을 보는 것도 어려우니 아기가 잘 때 타이밍을 맞춰서 해결해야 한다. 복직을 하려면 낮잠을 커피로 대신해야 하겠지.
사회로부터의 단절, 갑자기 생리현상에 몰두하는 하루하루, 내가 누구인지 까먹어가는 이 과정이 아직 뭔지 잘 모르겠다. 우주도 가고 핵도 쏘는 최첨단의 시대에 왜 임신출산만큼은 이토록 고통스럽고 원시적인 건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내 배아파 낳은 아기라 그런지 눈앞에 없으면 아른거리고 보고싶고 보면 사랑스럽다.
아기를 낳고 시간이 지날 수록 아기와 24시간 붙어있고 싶은 기분은 조금씩 옅어져간다. 하지만 탯줄로 이어져 있던 아기와의 연결고리는, 아기가 기고 걷고 뛰고.. 독립해서 가정을 이루고 해외에 가서 떨어져 살게 되더라도 진하게 우리를 이어줄 것이다.
아가에게,
너를 만나고 나는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묵혀둔 신혼여행과 이직한지 얼마 안되어 다녀온 출장 직후 찾아온 네가 감격스럽다.
회사를 너와 함께 아홉 달이나 다녔는데 너는 어찌나 튼튼한지 아무 이벤트도 심한 입덧도 없었단다.
어줍잖은 10년간의 직장생활을 갑자기 쉬어야 한다며 네탓이라고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했던 내가 모자랐다.
너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소중하고 완벽한데, 그런 너란 존재를 부족한 내가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인데 말이다.
너를 품고 만났던 사람들, 갔던 장소들, 너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매일같이 걷던 산책길들이 어느새 그립기도 하다.
너를 낳을 때 처음 본 너희 아빠의 눈물을 나는 못 잊을 것 같다.
너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냐 물으면, 절대 아니오 라고 대답할 거란다.
앞으로 긴 긴 시간동안 나는 나로써만 사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너의 동반자이자 서포터로 살아갈게.
네가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언제나 서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