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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Mar 02. 2024

D+43) 딸과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창밖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듣던 캐롤을 아기를 안고 들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병원에서 2박3일, 조리원에서 3주 4일, 산후관리사 선생님과 3주를 보냈다. 총 두 달 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풀타임으로 받았는데도, 우량아인 아기를 보느라 손목과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배에 힘이 없어 허리, 무릎과 발목 앞쪽이 항상 욱신거렸다. 


정부지원 산후도우미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었다. 오신 다음날 바로 예방접종도 데려가주시고, 우리 집에 육아 용품이 별로 없어서 일하기 불편하셨을 텐데 항상 웃는 얼굴로 도와주시며 육아템 구매 요령도 많이 알려주셨다. 아기만 보기도 바쁘실 텐데 반찬도 해 주시고 냉장고 청소도 해 주시고 심지어 싱크대까지 정리해주셨다. 공기청정기에 먼지가 많다며 아기한테 안 좋다고 필터까지 꺼내어 청소해 주셨다. 


알고 보니 관리사님은 젊을 때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분이란다. 일찍 시집가셔서 자녀분을 다 키울 때까지 꿈을 접었다가 최근에 산후도우미 일을 하며 손주를 돌보는 일이 무척이나 뿌듯하다고 하셨다. 관리사님의 수첩에는 신생아를 돌보는 비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런 도우미 선생님을 만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친정엄마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포근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직장 다니면서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간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관리사님은 처음에 시집가면 다들 서툴다며, 아기 낳고 키우다 보면 저절로 느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다. 


관리사님의 도움으로 낮잠을 한번씩 꼭 자니 몸에 회복 속도가 붙었다. 그래도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얼굴이 땡땡 부어 있다. 아기의 100일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 몸이 '그나마' 내 몸 같아지는 데에는 최소 100일이 걸리는 것 같다. 아직도 자면서 오한이 들고, 앉을 때 골반이 예전같지 않으며, 무릎과 발목 앞쪽은 계속 저리고, 복근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 걸을 때마다 발바닥을 땅에 던지듯이 걷고 있지만 이마저도 1년쯤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니 안심을 해본다. 


관리사님이 계실 때는 아기가 우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분명 아기는 깨어 있는 시간이 꽤 되는데, 관리사님은 아기를 보면서 어떻게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시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지금은 한계를 열 번 정도 뛰어넘어서 그 모든 걸 혼자 해내고 있지만 그때는 아직 자도자도 졸립고 조금만 못 자면 회음부 열상이 다시 심해지는 시기였다. 이미 아기가 오전 8시쯤부터 깨어 있을 때여서, 아기를 먹이고 응가를 치워주다가 관리사님이 도착하시는 9시가 되면 바톤터치를 하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자러 갔다. 


'조리원은 천국이다' 라는 말이 이해 되지 않았었는데 집에 와서 생활해 보니 서서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조리원에서는 삼시세끼 밥과 간식이 시간 맞춰서 딱딱 침대에 올려지고, 유축기도 반납하자 마자 소독되어 있고, 청소도 빨래도 다 해주고 마사지까지 해주었다. 관리사님은 반찬 2가지 정도를 해주시고 나머지는 반찬가게에서 주문해 먹었는데 그마저도 언젠가부터 질리기 시작했다. 100일 즈음부터는 아기를 등에 업고 요리를 해서 먹지만 그땐 그럴 짬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임신했을 때 주문하지 못한 육아용품들을 허겁지겁 마련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정확히 일반인보다 500칼로리 많은 2700 칼로리에 맞춰져 있던 조리원의 수유부 식단을 먹다가 집에 와서 남이 차려주는 반찬을 먹는데도 2끼밖에 못먹으니 모유량은 계속 줄었다. 관리사님이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잠을 못자는 나를 보며 얼른 자라고, 먹는거보다 잠이 회복과 모유량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정말 낮잠을 1시간이라도 자면 몸이 확 좋아지고 모유량이 늘었다. 


참 그러고 보니 우리네 엄마들 시대에는, 아기 낳자마자 아기를 업고 집안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도우미도 잘 쓰지 않던 시기였다고 하는데 아마 대부분 20대 초반에 아기를 낳아서 그런 게 아닐까? 지금은 초산 평균 나이가 35세 정도 되니 15년 정도 차이다. 나도 평균 나이에 근접하게 아기를 낳았으니 힘든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천기저귀 빨래도 해야 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는데, 나는 왠지 그 시절 엄마들에 대한 존경심이 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20대의 체력은 육아를 위해 주어진 거라는데, 일찍 아기를 다 키워놓고 40대 후반이 되면 벌써 자유시간을 즐기는 엄마들이 부럽기도 하다. 20대는 놀고 일하는 데에 다 쓰고 30대에 골골거리는 나는 '그래도 20대에 놀았으니 후회없이 육아를 하는 거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관리사님이 퇴근하시는 5시가 되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일명 '마녀시간' 이라고 불리는 그 시간이 되면 아기는 관리사님이 계실 때와 달리 이상하게 더 보채고 나는 혼자 있는 그 느낌이 너무 무서웠다. 그나마 조리원에서 그리고 관리사님에게 아기 돌보는 법을 많이 배워서 하나씩 대입해볼 수 있었지만, 남편이 퇴근하는 8시까지 그 세 시간이 나에게는 서른 시간 같았다. 


관리사님은 주말에도 아기를 걱정해 주셨다. 남편이 바빠서 주말에 아기 목욕을 못 시킨다고 하니 로션으로 목 주름에 있는 때를 살살 밀어주라며 전화로 알려주시기도 했다. 아기 태열에 좋은 로션도 병원갈 때 실비 처리하라며 챙겨주시고, 신생아 결막염이 생겼을 땐 안약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 주셨다. 나중에 복직할 때 이런 분한테 아기를 맡기고 싶다고 생각하고 여쭤보니, 이미 그렇게 생각한 산모 분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한다. 역시, 이런 분을 엄마들이 놓칠 리가 없다. 아쉽지만 카톡으로 종종 아기 사진을 보내드리며 안부를 묻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기도 한다. 이런 분을 알게 된것만으로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사님과 보낸 마지막 주는 크리스마스였다. 이제는 나도 아기가 울면 원하는 것도 제법 빠르게 파악하고 해줄 수 있는 어엿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기가 울면 기저귀를 먼저 확인하고, 그 다음 트림을 시켜 보고, 안 되면 안아주기도 했다가, 맘마를 먹였다. 아기는 매일 매일 많이 먹고 많이 자고 많이 싸고, 조금씩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흑백 모빌을 보여주니 잘 쳐다본다. 아기가 50일 즈음에 이미 밤잠을 여섯 시간 넘게 자 주어 나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창밖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듣던 캐롤을 아기를 안고 들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아가야, 내년에는 너와 함께 눈 내리는 길을 걸어 보고 싶구나!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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