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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Oct 19. 2024

D+341) 뚜벅이로 버티며 육아 추억 만들기

*이번 연재를 기점으로, 매주 발행이 어려워졌음을 알려드립니다. (1) 글감이 생각나는 주기가 길어졌기도 하고요, (2) 매주 쓰지 않아도 글을 쓰는 습관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의 분량을 꾸준히 써 왔기 때문에,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우면 피아노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이제는 매주 써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도 하고요 (3) 매주 연재한 덕분에 다른 파생 주제들이 떠올라 새로운 브런치북을 시작할 예정이기도 하고 (4) 복직 준비 등으로 더욱더 바빠진 일상에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매주 글이 올라오자마자 좋아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틈틈이 글을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시간이 있을 때는 시간을 더 써서 돈을 아낀다. 시간이 없을 때는 돈으로 해결한다. 복직 후에는 돈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질 것이다. 그래도 뚜벅이는 당분간 계속하게 될 예정이다. 내가 운전을 자신 있게 하게 되는 그날, 돈으로 시간을 사도 되는 그날, 아이 하굣길에 픽업이 필요해지는 그날, 아이가 충분히 커서 같이 놀러 다닐만 해지는 그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우리 부부와 비슷한 소득을 가진 내 주변의 모든 아기 있는 집은 차가 있다. 우리만 없다. 나는 임신 직전에 기능시험을 열여섯 번 만에 합격해서 겨우겨우 딴 장롱 면허만을 가지고 있고, 남편은 아직 우리 형편에 차를 사기엔 무리라고 판단해서, 시댁 근처에 살면서 차가 필요할 때만 차를 빌려 타는 식으로 버티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주변 친구들은 궁금해한다. 왜 남편이 차를 사줄 때까지 기다리냐고. 나는 제대로 운전을 해본 적도 없고 좋은 차를 고르는 눈도 없다. 반면 남편은 운전을 잘하고 차를 잘 본다. 그런 남편이 차는 감가상각 되는 자산이고, 우리는 지금 수입이 줄고 지출이 느는 시기인데 차를 사기만 해도 매달 추가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아기가 아직 어려서 내가 혼자 아기를 태우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기회에 저렴한 비용으로 구할 때까지는 미루자는 합리적인 이유를 말하니 고민할 수밖에. 


엄마인 내가 이동이 제한되어 불편하고 답답한 것, 그리고 날이 너무 덥거나 춥거나 눈비가 올 때마다 아기도 고생이고 외출이 너무 힘이 드는 점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나는 운전에 필요한 순발력이 부족하고, 아직 너무 연약한 아기를 내가 혼자 태우고 다니다 아기가 울고 나는 달래지도 못하고 당황해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많다. 자유롭게 외출을 하지 못해 우울한 감정이 찾아올 때면 애꿎은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운전면허를 일찍 따고 내가 번 돈으로 아기 낳기 전에 차를 샀으면 되는 일인데, 왠지 남편 때문에 차가 없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했다. 재밌는 점은, 연애 때 어머님 차를 빌려 타고 데이트하러 오는 남편은 차보다는 집이 먼저라는 생각이어서 왠지 돈도 잘 모으고 잘 살 것 같아 결혼했다는 것이다. 원래 연애 때 장점이 결혼하고 나면 단점으로 바뀐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기 낳고 단점으로 바뀌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아껴 쓰는 남편이니 앞으로 돈도 더 잘 모으고 잘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이래저래 고민한 결과, 나는 아기 낳고 근 1년째 뚜벅이를 유지하고 있다. 임신 기간까지 합치면 2년 정도를 버틴 셈이다. 너무너무 힘들지만 세이브한 돈이 2년간 유지비만 생각해도 5백만 원은 된다. 버틴 게 아까워서라도 더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낀 돈으로 아기 명의로 주식을 더 사주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차가 없이 다닌 2년간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막달에는 정말 힘들 때 택시를 타고 버텼던 것 같다. 생후 백일 무렵에는 아직 추운 날씨에도 아기를 꽁꽁 싸매고 갈 수 있는 동네 카페와 음식점은 다 다니며 많이도 걸었다. 유모차를 밀며 걷는 것이 의외로 근력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그 힘으로 육아를 버텨냈다. 


생후 6개월 무렵엔 지하철도 용감하게 타 보고, 문화센터와 장난감도서관, 키즈카페 등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장난감을 반납하려면 유모차에 첫째가 올라타는 용도의 킥보드가 있는데 거기에 장난감 가방을 묶어 놓고 팔자걸음으로 먼 거리를 다녀야 했다. 애석하게도 반납하는 날만 되면 비가 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폭염에도 비가 오면 긴팔 우비를 쓰고 장맛비 같은 땀을 뻘뻘 흘리고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 뻗었던 기억이 난다. 그맘때 나는 우비를 입고 장난감을 싣고 아기는 레인커버 밑에서 발목에 붕대를 감고는 더워서 축 처져 잠든 사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짠해진다. 중고 거래도 참 많이 했다. 육아휴직 중이니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돈보다는 시간이라 생각해서, 장난감을 팔아서 번 돈으로 새로운 걸 사줬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아기를 데리고 다니며 장난감을 빌려서 아낀 돈만 벌써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아낀 돈만큼 아기가 나중에 크면 들려줄 추억거리도 많이 생겼다. 


폭염이 한창일 때는 걸어서 20분 거리의 교회를 갈 때 아기띠를 하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같은 교회 영아반에도 어린 아기를 데리고 버스를 타는 엄마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예배 후 그룹 활동을 하다가 내가 버스 시간에 맞추겠다고 일어나면, 영아부 선생님들이 달려 나와 차를 태워주겠다고 하셨다. 몇 번 얻어 타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었다. 엄마가 참 대단하다고, 요즘 세상에 차 없이 애 키우는 집이 정말 없다고 했다. 이게 그렇게 칭찬받을 일인가 싶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미련해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애매한 거리의 교회나 소아과 빼고는 지하철 역도, 마트도, 시냇가도 모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에 살기 때문에 차가 없이도 잘 사는 것 같다. 


이제는 시어머님이 차에 카시트를 설치해 주셔서 필요하면 아기를 데리고 먼 거리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가니 더더욱, 당장 차를 살 필요가 없어졌다. 평일 내내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많은 아이들과 복작대며 지낸 아이를 주말에도 굳이 먼 곳으로 데리고 외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복직을 하면 더더욱 집에 있는 시간이 소중해질 것이다. 물론, 차를 타고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아기를 데리고 친구들과 수다 떨거나 새로운 걸 보여줄 만한 공간들이 즐비한 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정 나가고 싶으면, 어머님 차를 빌리면 된다. 아기가 좀 더 크고 매일 밖에 나가자고 하면, 일단은 두세 살까지는 동네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와 공원을 하나씩 정복하면 될 것 같다. 


사실 지금 시기의 먼 거리 외출은 아이를 위해서보다 부모를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태교여행도 그렇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데리고 떠나는 해외여행도 그렇다. 그래서 내가 가고 싶은 걸 아기를 위해서라고 포장하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다. 정말 여행이 가고 싶으면 혼자 다녀오라는 남편의 말에 이제는 화가 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해결하려고 한다. 복직 전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고기리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 왔다. 물론 마을버스를 타고 왔다. 임신했을 때는 막달에 좋아하는 브런치 카페를 시간 맞춰 가기 위해 택시를 타기도 했지만 이제는 택시를 쉽게 타지 않는다. 시간이 있을 때 시간을 활용하자고 생각한다. 헬스장도 팬시한 곳 말고 동사무소에 있는 저렴한 곳으로 다닌다. 


출산율이 역대 최저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없으면 아기를 낳지 않는 쪽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집값이 너무 비싸고 물가는 오르는데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소득은 한정되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주변의 모든 아기 있는 가정에 차가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결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뚜벅이로 버티면서 일부는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시트가 설치된 택시를 충분히 보급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약제로 운영하면 대기 중인 택시가 많지 않아도 되고, 먼 거리의 병원을 간다던지 하는 이벤트에 타기 좋을 것 같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기업이 있는데 아직 우리 지역에는 서비스가 되고 있지 않아 이용하지 못했다. 


뚜벅이로 버티면서 내가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내키는 대로 소비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출을 해왔다는 걸 느낀다. 물론 갑자기 계획적으로 소비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여기저기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힘들게 모은 장난감들을 아이가 새로 산 장난감보다 잘 가지고 노는 걸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시간이 있을 때는 시간을 더 써서 돈을 아낀다. 시간이 없을 때는 돈으로 해결한다. 복직 후에는 돈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질 것이다. 그래도 뚜벅이는 당분간 계속하게 될 예정이다. 내가 운전을 자신 있게 하게 되는 그날, 돈으로 시간을 사도 되는 그날, 아이 하굣길에 픽업이 필요해지는 그날, 아이가 충분히 커서 같이 놀러 다닐만 해지는 그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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