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려면 아기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존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만 아기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가 10년은 족히 걸리니,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과 멘탈을 엄마인 '내가' 키우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엄마라는 역할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게 키 포인트였다.
아기에게 진액을 다 뽑아가며 애쓰는 것보다는, 잘 쉬고 잘 먹고 스트레스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집중해서 돌봐주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다는 것은, 연구 결과를 굳이 뒤져보지 않더라도 확실하다. 최선을 다하는 엄마보다는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을 오늘도 다시 시작한다.
남편의 육아 및 가사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그리고 아기가 풀타임으로 어린이집을 간지 3주 차가 되면서 내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것들이 조금씩 녹아내려간다. 아기 이유식 만드는 것만 해도 버거운데 잠깐 혼자 놔두면 벅벅 긁는 아기를 막아가며 하려니 막막했던 마음. 성치 않은 팔로 하루 종일 무거운 아기를 들었다 놨다 하며 손목이 나가고 지쳐서 남편이 조금만 늦게 퇴근해도 원망스러웠던 마음. 무엇보다 원래 하던 일과 관련된 시간은 하나도 낼 수 없는 답답함과 조급함. 여자로 존재했던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불안함.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니, 아기를 향한 '죄책감'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감정이 해체되어 윤곽이 잡힌다.
죄책감의 정체는 이런 거였다. 나는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출발선이 많이 뒤처져 있었다. 그래서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달려왔다. 그 기저에는 '정말 잘 살고 싶다'는 마음 - 어떻게 보면 욕심 - 이 가득했다. 달리고 달리다 숨이 차서 잠시 쉬어가야 할 타이밍에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달려야 할 타이밍에 번아웃이 와버렸다. 갑자기 엄마가 된 것도 집안일도 아기 돌보는 것도 모두 낯설고 버겁게 느껴졌다. 아토피가 있는 아기라 수면 부족은 기본이었고 엄마가 오롯이 챙겨야 하는 항목이 많아 부담이 됐다.
기댈 친정이 없으니 남편에게 기대고 싶은데 남편은 남편대로 미래의 우리 가족을 위해 달려야 할 시기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모성애가 유독 강한 나는 아기에게 나와 같은 결핍을 물려주기가 싫어서 내 몸의 진액을 뽑아 쓰는 기분으로 아기에게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뽑고 뽑으려 해도 더 뽑을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기에게 아무리 잘해 줘도 내 마음에조차 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만큼 아기에게 에너지를 쓰지 않는 남편이 밉고 서러웠다. 이 모든 상황은 나의 우울감을 더했던 것 같다.
그런 우울감을 아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기에게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기를 보다가 눈물이 나면 뒤돌아 숨죽여 울고 눈물을 닦고 다시 돌아와 웃어주고. 아기가 혼자 놀 때 등 돌려 집안일을 하며 어깨를 들썩거리곤 했다. 과연 아기는 내 노력의 결과로 우울감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우울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기 어렵겠다는 결론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풀타임으로 연장반으로 보내도 아이가 결핍 없이 잘 자란다는 통계자료가 있어도 나는 그걸 끌어다 믿지 못하고 나 자신을 채찍질할 것 같았다.
처음엔 남편에게 하지 않던 요구들을 했다. 집안일도 좀 도와달라고, 아기도 좀 더 봐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체력이 그대로인 남편이 도와주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나도 나를 바꾸기 어려운데 40년 가까이 따로 살아온 남편을 바꾸는 건 더 어려웠다. 다만 내 상태가 심각해진 걸 보고서 남편이 조금 더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맞았다. 남편이 도와주는 일이 늘어날수록 내 상태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생각이 가능해졌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안 된다는 건 분명했다. 심리상담을 계속 받다 보니 내가 남편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들을 남편이 하고 있어서라고 한다. 예를 들면 밤잠을 깨지 않고 이어 자는 것, 아기를 보다가도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뜨는 것 등이다. 반대로 남편이 아기 울음소리에 깨거나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아기를 안아줄 때는 그런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상황상 남편과 아이를 같이 재우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남편이랑 자면 아기가 깔려서 아파할 게 뻔했다. 아기가 깨도 남편이 못 들을 게 뻔했다. 남편이 하루 종일 아기를 안아주며 통화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확실히 하는 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릴 때 내가 누리지 못한, 중산층 이상의 화목한 가족이었다. 거기에 내 직업도 있고 해외생활이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교류하거나, 전시와 공연을 즐기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 하는 것들은 부수적인 거라 목표가 달성되면 언제든 실현할 수 있는 일들이다. 처녀 때처럼 밤새 술을 마시며 놀거나 해외여행이 고픈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아기를 떼어놓고 어디 혼자 놀러 갔다 오라고 해도 나는 하루 종일 아기와 남편 생각만 하다 올 거라 별로 달갑지가 않다. 다만 지금은 아기가 말도 하지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육아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 부부의 역할 분담이 중요한데 서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화목함이 유지되기가 참 어려운 거다. 내 시간도 없고 휴직 중이라 일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려면 아기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존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만 아기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가 10년은 족히 걸리니,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과 멘탈을 엄마인 '내가' 키우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엄마라는 역할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게 키 포인트였다. 그러기 위한 액션 플랜을 짰다. (1)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멘탈이 올라올 때까지 심리 상담을 지속한다. (2) 남편을 미워하는 감정이 들 때는 그 원인이 되는 욕심을 아예 내려놓거나, 안되면 현명하게 위임한다. (3) 등원 후 헬스장을 다녀오는 루틴을 만든다. (4) 육아 동지와의 교류 및 신앙생활을 꾸준히 이어간다. (5)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복직을 한다.
아기에게 진액을 다 뽑아가며 애쓰는 것보다는, 잘 쉬고 잘 먹고 스트레스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집중해서 돌봐주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다는 것은, 연구 결과를 굳이 뒤져보지 않더라도 확실하다. 최선을 다하는 엄마보다는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을 오늘도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