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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Oct 05. 2024

D+327) 아픈 몸으로 아기 돌보기

살면서 이렇게 아파서 누워 있고만 싶을 때조차 내게 일분일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감기에 생리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뺨을 후드려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는 와중에 평소보다 유독 더 칭얼대고 안아달라고만 하는 아기를 돌보고 있자니, 어디 무인도라도 가서 숨어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그 자체로 초인이 되어야만 한다. 아기가 밤에 잠에 들 때 콜록, 한두 번 하는 것 같더니, 쌔한 예감은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새벽에 열이 38도를 넘기며 축축 처진다. 돌발진이었다. 잠이 너무 많은 나는 열보초를 서는 건 하지 못하고 아기가 중간중간 깨어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일어나서 따듯한 물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열이 나서 건조해진 피부에 로션을 발라 주고, 미지근한 물로 수건을 적셔 이마에 대어 주었다. 아기는 혼자 누워서 잘 자던 평소와 다르게 잠들 때까지 안아달라며 칭얼거렸다. 아기를 안아서 재우고 나도 다시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점점 열이 떨어지더니 아침에는 37도 언저리에서 머물길래 약은 먹이지 않았다. 


복직을 한다면 가장 걱정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아기가 아플 때이다. 이렇게 집에서 새벽에 열이 나면 영락없이 그날은 출근을 못 하겠구나 싶었다. 열이 조금 내렸지만 아기는 평소처럼 놀지 못하고 징징 울고 축축 처지며 나에게 와서 안기기만 했다. 이마를 만져 보니 뜨끈뜨끈하다. 아, 이대로 어린이집을 보낼 수는 없었다. 어른도 아프면 하루 연차 내고 쉬어야 좀 낫는데 아기는 오죽할까 싶어서다. 이런저런 것들을 하려고 부풀었던 마음을 하나 둘 스르르 내려놓았다. 선생님께 오늘은 못 가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아기가 열이 이렇게 난 게 처음이었다. 기초체온이 낮아서인가, 감기에 걸려도 콧물과 기침 조금 하다가 끝이 났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아기의 몸이 감기와 맹렬히 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처음 겪는 오한과 고통에 아기는 몸부림쳤다. 처음으로 분유도 물도 뿌리치며 짜증을 냈다. 그래도 다행히 잘 먹고, 잘 싸고, 낮잠을 잘 자고. 그렇게 오전이 지나가고 아침에 있었던 미열조차 오후가 되면서 흔적조차 사라지고,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으며 놀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열이 다시 살짝 올랐고 나는 한 번 깨서 또 물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로션을 발라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아기는 아픈지 모를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다. 


삼일 째가 되니 콧물 조금과 기침을 하는 것을 빼면 아기는 완벽하게 건강했다. 열꽃이 피었지만 이틀 만에 없어졌다. 문제는 나였다. 이젠 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기한테 옮은 거였다. 임신을 했을 때도 코로나 걸린 사람 옆자리에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옮지 않았었는데, 이상하게 출산 후에는 체력이 떨어졌는지 아기가 아픈 게 겨우 다 나아갈 때쯤이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내가 아프기 시작한다. 더워서 땀을 흘리는 아기를 위해 에어컨을 틀고 나는 몸살기운에 덜덜 떨면서 잠을 청하기를 몇 번. 아기보다 증상이 몇 배는 심한 콧물감기로 아직도 고생 중이다. 


살면서 이렇게 아파서 누워 있고만 싶을 때조차 내게 일분일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감기에 생리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뺨을 후드려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는 와중에 평소보다 유독 더 칭얼대고 안아달라고만 하는 아기를 돌보고 있자니, 어디 무인도라도 가서 숨어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플 때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정말 초인적인 힘이 필요한 일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죽을힘을 다해서 먹기 싫은 김밥과 감기약을 또 꾸역꾸역 밀어 넣고, 목이 간질간질할 때면 아기가 낮잠에서 깰까 봐 부러질듯한 갈비뼈를 부여잡고 기침을 참았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초인적인 힘을 내게 하는 것 같다. 


한 차례 아프고 나니 아기는 갑자기 안 하던 새로운 예쁜 짓을 한다. 똑똑똑 노크도 배우고, 빠빠이도 하고, 무엇보다 얼굴은 그대로 조그맣고 몸만 훌쩍 자랐다. 벌써 아기가 태어난 지도 한 해가 다 되어간다. 엄마인 나도 그동안 아기 덕분에 한계를 여러 번 극복한 강한 사람이 되어 있다. 연말이 다가오고, 새해가 다가오고, 복직이 다가온다. 이렇게 빨리 시간이 가고 아기가 크다 보면 금방 시집을 보내고 할머니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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