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에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가려워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거다.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별 탈이 없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말이다.
아이가 아토피로 가려워하고 힘들어하기 때문에 엄마인 나도 물론 힘이 든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에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가려워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거다.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별 탈이 없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말이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귀를 뚫었는데, 알고 보니 금속알레르기가 있어서 귀가 회색빛으로 퉁퉁 부어올라 귀찌만 가끔 한다. 청바지도 금속 단추에 테이프를 붙여야만 입을 수 있다. 20대 중반 까지는 찬바람만 불면 손 끝이 벗겨져서 지문인식도 안 되고,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만 하면 건반에 피가 흥건하게 묻곤 했었다. 비염이 있어서 감기에 걸리면 항상 코가 막히고 기침이 나서 잠을 잘 못 자고, 20대에 한동안은 축농증이나 중이염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금속 장신구를 한 친구들이나 언니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 회사를 다닐 때 지문인식이 안 되어 나만 혼자 사원증을 걸고 다닌 적도 있다. 감기에 걸리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스크를 하루종일 끼고 다니며 운동 등의 활동은 올스탑이다.
이렇게 작은 불편함에도 평범한 사람들을 한없이 부러워하게 되는데, 내 아이는 온몸이 건조하고 껍질이 벗겨지며 모기 물린 것의 70배나 가려운 아토피 질환을 앓고 있다. 나를 닮아 비염도 있다. 아직 검사는 해보지 않았지만 아기 아빠를 닮아 꽃가루 알레르기도 있을 수 있고, 금속 알레르기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먹일 수 있는 음식도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식품 알레르기도 몇 가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저귀만 갈려해도 도망가는 월령에 손싸개만 해도 우는 아기를 달래 가며 로션과 연고를 바르느라 목욕에만 한 시간 가까이 씨름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 모든 게 미워 보이다가도, 저 어린것이 얼마나 가려울까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느 여름날, 집에 매일 모기가 한 마리 있었던 적이 있다. 이상하게 잡아도 잡아도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어느 날은 산모기에 물려서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너무 가려운 거였다. 벅벅 긁고 있는데 아차, 아기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였다. 아뿔싸. 너는 절대 못 긁게 하느라 손도 감싸고 힘으로 막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줬으면서, 엄마인 나는 신나게 벅벅 긁으며 시원해하고 있구나. 너무 미안했다. 아기가 옷으로 붕대로 감싸져 있어서 시원하게 긁지 못하니 짜증이 늘어 가는 요즘이다. 가끔은 그냥 시원하게 긁게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더 아기일 때는 귀 밑부분도 항상 찢어져 있고 발목 등에 진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새 아기가 자라고 피부가 튼튼해져 얼굴 피부는 음식 알레르기만 아니면 깨끗한 편이고 몸통은 아기 피부를 되찾았다. 진물이 나는 부위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전보다 더 가려움을 잘 느끼고 많이 긁지만 아기는 그새 훌쩍 자라서 피부 면역을 획득했다. 새벽에 열 번씩 깨지 않고 두세 번만 깨는, 가끔은 한 번도 깨지 않고 열 시간의 통잠을 자는 작은 변화로도 희망을 가지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스테로이드 없이 나아지고 있었는데 최근 아이가 더 긁고 괴로워해 대학병원을 가보려 한다. 왕복 네다섯 시간을 소모해 가며 피를 뽑고 와야 하는 고된 일정이겠지만, 원인만 찾는다면, 아이가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덜 괴로워한다면 뭔들 못하랴 싶다. 예전엔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버겁고 무서워 가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냥 해결하면 되는, 출장 같은 태스크라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무서워 바르다 말았었는데, 아이가 덜 괴로우려면 눈 딱 감고 제대로 발라야지 다시 결심한다. 예방접종도 아토피가 심해질까 봐 지연접종을 생각하고 열이 나도 어느 정도까지는 집에서 케어를 하며 버텼었는데, 코가 막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아이에게 콧물 기침약 정도는 먹여서 덜 괴롭게 해 주기로 결심한다.
오늘은 코감기에 걸려 미열이 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오는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세 시간이 넘게 걷고,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에 가서 이유식을 맡기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고,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오면서, 나도 어느새 엄마 역할에 적응해간다 싶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코를 빼는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덤덤하게 꽉 잡고 진료가 끝난 후 더 꽈악 안아주는, 조금은 단단한 어미가 된 것 같다. 미열과 콧물이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보다는 '잠깐이라도 재미있게 놀다 오렴, 엄마가 얼른 씻고 밥 먹고 집안일해놓고,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돌봐 줄게.'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대신 선생님께는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 시간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생각보다는,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기에 내가 이렇게 긍정적이고 단단한 엄마로 변해 가는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을 채워 넣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