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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Sep 14. 2024

D+306) 어린이집을 풀타임으로 보낸 소회


전업주부가 되는 상상은 거기까지만 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집안일을 하면서 속은 후련했지만 의무감에 가득 차 있어서 한 거지 그 일이 내가 잘하는 일도 아니고 즐겁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효용은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안일을 잘 챙김으로써 사람을 쓰지 않아도 되고, 남편이 마음의 안정감을 얻고 돈을 벌어올 수 있으며, 아기는 깨끗하게 치워진 집을 보며 자랄 수 있으니까. 

직장을 가지 않아도 아기를 풀타임으로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이 많고 그게 무조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더 덜어내 보려고 한다. 돌 즈음에 아기가 하루 종일 깨어 있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집안일도 할 수가 없다더니 우리 아기는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리 왔기도 하다. 시한폭탄처럼 터질 것 같던 마음이 기관을 보내고 나니 금세 가라앉으며 온화해지더라. 똑같은 한 시간을 아기와 보내도 온전히 웃으며 보낸 게 얼마만인지.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그 말, 그 말만 보고 가보려고 한다. 

한창 아기가 낮잠을 길게 잘 때 즈음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 일기장을 읽는 듯한 이야기에 절로 끄덕여졌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다시 펼쳤다가 200% 공감이 가는 부분을 발견했다. 


(아래는 책 본문 인용) 


돌이 조금 지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정지원 양은 의외로 잘 적응했다. 9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가서 간식을 먹고, 잠깐 놀다가, 점심을 먹고, 1시 전에 집에 와서 씻고 낮잠을 잤다.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시간을 빼면 김지영 씨에게 3시간 정도 여유가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온전히 김지영 씨의 휴식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없이 빨래를 돌리고, 쌓아 놓은 설거지를 하고, 집을 정리하고, 아이가 먹을 간식과 반찬들을 만들었다. 차분하게 커피 한잔 마시는 날이 드물었다.
실제로 0~2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여가 시간은 하루 4시간 10분 정도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여가 시간은 4시간 25분으로 하루 15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고 주부가 푹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를 데리고 집안일을 하느냐 아이 없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김지영 씨는 마음 편하게 집안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지원이가 순하고 적응도 잘하는 편이라 낮잠까지 자고 조금 더 늦게 가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당분간 점심 먹고 바로 데려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아이를 조금 더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다니 김지영 씨는 뭔가 시작해보고 싶었다. 


여기에 나오지 않은 나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보태자면, 어린이집에 아기를 풀타임으로 보내고 처음으로 가족에게 부탁하지 않고 - 즉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에 시달리는 피곤한 남편 혹은 두 남매를 키우느라 30년 가까이 고생하신 어머님을 조금 더 힘들게 만들지 않고도 - 이렇게 길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아기가 0세 반이라 정부 지원금에서 절반 가량 금액이 줄어들긴 했지만 하루 반나절 이상을 아기를 돌봐주는 데에 대한 대가로는 미안할 정도의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아기가 없었다면 받지 못했을 돈이기도 하고, 아기를 돌보는 고단함과 그걸로 인해 누리는 온 가족의 효용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아기가 낮잠을 안 자고 돌아오는 첫 주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문 밖에서 대기하다가 아기가 엄마를 너무 찾거나 선생님이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바로 들어갔다. 어린이집에 보낼 물품이나 선생님께 아토피 케어 관련으로 전달드릴 사항이 많아서 육퇴 후에도 평소보다 더 할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 아기를 데리러 갔는데 아기가 낮잠을 곤히 자고 있어서 둘째 주부터 낮잠을 재우고 오기로 했다. 낮잠을 자고 맘마를 먹으니 어느덧 하원 시간이라 얼떨결에 기관에 풀타임으로 아기를 맡기게 되었다. 어떤 아이는 엄마와 잠깐만 떨어져 있어도 엉엉 울어서 적응에 오래 걸린다는데, 우리 아기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인사할 때만 엄마한테 조금 안기고 선생님한테 간 후로는 알록달록한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엄마가 인사를 해도 보는 둥 마는 둥 잘 놀았다. 엄마를 아직 모르는 건가 싶어서 서운할 정도였다. 


아기를 풀타임으로 어린이집에 보낸 첫날, 계획도 없이 찾아온 일곱 시간 가까운 자유시간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처음으로 생긴 부담 없는 자유시간에 대한 기쁨도 잠시, 그동안 하고 싶은데 꾹 참고 있던 집안일을 몰아서 하다 보니 전날 못 잔 잠과 허기가 몰려왔다. 허겁지겁 냉장고에 있던 빵을 먹으면서 진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셨다. 드디어 내가 진짜로 하고 싶던 책 읽기와 같은 것들을 하려고 했지만 가전 수리 관련 전화와 아기 아토피 병원에서의 전화를 받고 나니 어느덧 하원 시간이었다. 부랴부랴 내일부터는 이 시간에 뭘 할지 계획을 세우다가 자유시간은 끝나 버렸다. 


역시나 커피로 피곤함을 이기려던 내 생각이 짧았다. 하원 후 아기가 졸려해서 침대에서 재운다고 잠깐 누웠다가 나만 잠들어 버렸다. 잠깐 미용실을 갈 때도, 병원을 갈 때도, 아기는 같이 낳은 건데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 시어머님께도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었다. 기관에 맡기면 그런 미안함은 없으니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부담감에 일분일초도 허투루 쓸 수가 없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에 미리 걱정했던 대로, 어제 피나도록 긁었던 목덜미에 반창고가 잘 붙어있을지, 선생님이 유독 챙길 게 많은 우리 아이를 부담스러워하진 않을지, 그런 것들이 떠오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내 아이를 남에게 맡기면서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노트에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가득 적혀 있지만 당분간은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운전 연수도 추석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육아로 지친 내 몸과 출산 후 받은 내 마음의 충격을 달래주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남편이 육아와 집안일을 도와주어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나만 아는 나의 고충을 어딘가에 쏟아놓을 곳이 필요해 정부에서 해주는 상담도 신청해 두었다. 


한편으로는 낮잠 시간을 제외하면 아기가 하루에 5시간만 선생님과 지내고 나머지 시간은 엄마랑 있는다고 생각하니 하루에 5시간만 일하는 직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을 했다. 연장반을 가게 되면 하루에 7시간은 선생님과 보내고 엄마아빠랑은 두세 시간밖에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기에겐 선생님이 엄마보다 더 익숙한 사람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까마득해졌다. 딱 하루 어린이집에 오래 다녀왔는데 하원 후 집에 가는 길에 서 있는 가로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신 뭐라 옹알이하는 부쩍 활발해진 아기를 보며, '엄마랑만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빨리 자라겠구나.' 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전업주부라면,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해 보니 집안일은 내려놓으려 해도, 제대로 하려 해도, 끝이 없다. 그동안 내려놓았던 집안일을 다 하고 나니 내 마음이 후련하기는 한데 뭐가 바뀐 건지 당최 모르겠을 정도로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첫날은 아기 이유식도 내 요리도 한 게 없는데도 그 외의 할 일들이 가득했다. 아기 용품 세탁, 손 설거지, 육아용품 판매, 서랍 정리, 아기 매트 청소, 심지어 택배 뜯어서 정리하기까지. '그동안 아기 보면서 이걸 다 어떻게 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해주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전업주부가 되는 상상은 거기까지만 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집안일을 하면서 속은 후련했지만 의무감에 가득 차 있어서 한 거지 그 일이 내가 잘하는 일도 아니고 즐겁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효용은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안일을 잘 챙김으로써 사람을 쓰지 않아도 되고, 남편이 마음의 안정감을 얻고 돈을 벌어올 수 있으며, 아기는 깨끗하게 치워진 집을 보며 자랄 수 있으니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시간에 낮잠을 자서 깊이 못 잤는지 이른 저녁에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기는 갑자기 처음으로 내가 시키는 말을 했다. 그 단어는 '멍멍'이었다. 아직 '엄마' 소리도 시키면 하지 않는데, 입이 닳도록 매일 들려주었던 강아지 소리, 그 소리를 갑자기 하라고 하니 귀여운 발음으로 흉내 내는 아기가 기특하고 신기해서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월령이 어린 우리 아기. 자기보다 더 큰 아기들과 하루 종일 부대끼다 오니 또 새로운 걸 한다. 형제가 없는 대신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니 덜 심심하겠구나, 엄마랑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걸 보고 배우겠구나, 하고 다시 슬퍼지려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아직까지는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5시간만 일하는 직장은 찾지 못했다. 직장인이 아닌 삶을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경력단절이나 수입을 생각하면 그건 너무 불안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아기를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맡기는 것 또한 너무나 부담되는 일이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 않아도 아기를 풀타임으로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이 많고 그게 무조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더 덜어내 보려고 한다. 돌 즈음에 아기가 하루 종일 깨어 있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집안일도 할 수가 없다더니 우리 아기는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리 왔기도 하다. 시한폭탄처럼 터질 것 같던 마음이 기관을 보내고 나니 금세 가라앉으며 온화해지더라. 똑같은 한 시간을 아기와 보내도 온전히 웃으며 보낸 게 얼마만인지.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그 말, 그 말만 보고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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