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건, 나만의 육아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크고 작은 노력들을 계속해 왔고, 그 과정에서 남편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복직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짜인 루틴을 통해 엄마인 내가 안정감을 느끼고 아기도 그 안정감 속에서 어린이집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엄마의 바쁜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SNS에서 갓생과 루틴이 유행을 한지는 꽤 오래된 걸로 기억한다. 나의 경우에는 임신 전에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과 사우나를 하고 한 시간 일찍 출근하던 때가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던 시기였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긍정적인 마인드 세팅도 했다. 임신을 하고서 처음엔 몸살기운 때문에, 중기에는 배가 뭉쳐서, 후기에는 허리가 아파서 운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약한 근력운동 정도는 계속했어도 되는 건데 첫아기라 몸을 사리게 되었던 것 같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니 운동하는 루틴을 지키며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나의 루틴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자세히 적어 보고 싶어졌다.
출산휴가를 쓰기 전에는 여느 회사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냥 아침에 늦어도 뛸 수가 없기에 출근 준비에 필요한 기상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여유 있게 출발하는 게 다였다. 다만 새벽에 헬스장 운동은 갈 수가 없었다. 출산휴가 들어가고 나서는 새벽에 눈이 떠져서 유튜브를 보거나 짐볼 운동 등을 가볍게 하다가 동이 트자마자 산책을 나가서 한두 시간 걷다 들어왔다. 혹시라도 양수가 터져 병원에 실려갈까 봐 아침에 샤워를 해 두고 남편이 회사를 가고 나면 단잠에 빠져들었다. 낮에 일어나서 요리를 해서 먹고 집안일을 좀 한 뒤 육아용품을 당근 하러 가거나 요가를 했다. 저녁에는 한번 더 산책을 다녀왔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 보면 고단해서 금방 잠이 왔다.
아기를 낳고 조리원에서는 새벽에 일어나 수유콜을 다녀오고, 다시 잠을 조금 보충한 뒤 아침식사를 하면 모자동실 시간이었다. 아기가 신생아실로 돌아가면 마사지를 받고 식사를 한 뒤 또 수유콜을 갔다. 간식을 먹고, 수유콜을 하고 나면 또 모자동실 시간이 돌아왔다. 아기가 돌아간 뒤 저녁을 먹고 나면 씻고 유축하고 자기 바빴다. 집에 가기 직전에는 모자동실 시간이 지날 때까지 아기를 데리고 있었다. 모두들 집에 가면 못 쉬니 제발 쉬라고 했지만, 아기가 너무 예뻐 보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기가 움직이고 싶어 해서 오래 안겨있지 못하기도 하고 너무 무거워져서 자주 못 안아주는 요즘, 그나마 가장 가벼울 때 내가 낳은 아기를 오래오래 안아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와서는 새벽에 아기와 함께 기상해서 산후도우미 관리사님 오시는 오전 아홉 시까지 아기를 먹이고 놀아주었다. 관리사님이 오시면 아침식사를 후다닥 하고 잠을 보충했다. 점심 즈음 일어나 아기를 먼저 먹이고 점심식사를 한 뒤 또 잠을 잤다. 한두 번은 도수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오후에 관리사님이 가시면 이상하게 아기가 많이 울었다. 혼자서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퇴근하고 올 남편을 얼마나 목 빠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저녁을 먹으려고 간신히 데워 놓으면 아기가 안아 달라고 우는 탓에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밥을 먹어 보려다가 아기 머리에 온통 반찬을 흘린 기억도 벌써 아련해진다. 남편이 오면 잠깐 아기를 같이 돌보다가 밤새 두세 번 깨어 기저귀를 체크하고, 수유를 하고, 긁는 아기에게 손싸개를 해 주고 쪽잠을 잤다. 모유와 분유를 같이 먹였기에 남편에게 대신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삼사일에 한 번 정도 샤워를 하면 그게 그렇게 행복하고 좋았다.
신생아 시절이 지나고 백일이 되기도 전에 통잠을 자 주던 우리 아기가 아토피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한두 달 동안은 긁는 아기가 신생아 때보다 더 자주 깨서 나의 피로는 계속 누적되어 갔다. 밤에 그렇게 긁고 깨고서도 새벽에 번쩍 눈을 뜨는 아기 덕에 나도 새벽에 일어나 시어머님이 차려 주시는 아침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이 시기에는 아침에 젖병 씻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해둔 뒤에 아기가 낮잠을 잘 때 잠을 자는 걸로 간신히 버텼다. 아기가 낮잠에서 깨어나면 아기를 하루 종일 집에서 돌보기가 지루해 매일 산책을 나갔다. 다녀오기 전에는 짐을 싸느라, 나가서는 이것저것 잊어버렸던 세상 구경하느라, 돌아와서는 짐 정리하느라 시간이 잘도 갔다. 아기가 유모차에 앉아 있기도 지루해하기 시작해서 문화센터를 등록해서 점심시간 동안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다 왔고, 그러는 동안 아기는 쑥쑥 잘 자라서 어느덧 혼자 앉아있게 되었다.
이후에는 복직 후 출퇴근 시간을 염두에 두고 집안일을 저녁에 몰아서 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내가 새벽에 일찍 나가고 남편이 등원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서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이유식 쌀을 씻어서 불려 두고 건조기에 빨래를 돌려놓는다. 외출하면서 - 요즘은 어린이집 등원 하면서 -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고 돌아와서는 퇴근할 시간 즈음에 아기를 집중해서 놀아준다. 아기가 혼자 잘 놀 때 이유식 밥을 짓고 고기와 야채에 불을 올린다. 이후 아기에게 집중해서 놀아주는 것도 한계가 올 때 즈음 아기를 옆에 두고 할 수 있는 일 - 빨래 개기, 이부자리 청소, 목욕물 받기 - 등을 한다. 아기에게 빨래 바구니나 청소 도구 등을 가지고 놀게 해 주며 말을 걸어준다. 다음 날 어린이집에 가져갈 물품과 이유식 등을 미리 챙겨 놓고, 식기세척기를 돌려놓고, 세탁기에 아기 빨래를 예약해 놓고, 이유식을 냉동시키고, 마지막 분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나면 아기와 놀아주다가 침대로 같이 가서 재우면서 나도 잔다. 남편의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고 아기 관련된 집안일은 내가 대부분 챙기는 게 효율적이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엔 아기가 잠든 후 빠져나와 환기를 시키고 샤워를 한다.
가장 큰 변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기가 밤에 덜 자주 깬다는 점이다. 더 어릴 때는 가려워서 엉엉 울면서 긁어서 약을 먹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하는 일이 많았는데, 확실히 밤에 가려워서 힘들어하는 정도가 줄었다. 깨더라도 분유를 먹지 않고 다시 잘 수 있다. 아기가 밤잠을 8시간 내외로 자는 편이라 잠이 많지 않지만 이렇게 루틴을 어느 정도 짜서 움직이니 나도 대여섯 시간은 이어 잘 수 있어 감사하다. 그래도 하루가 끝나면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지만 이마저도 아기가 어린이집에 풀타임으로 적응하고 나면 덜해질 걸 안다. 그래서 아기와 단둘이 더 많이 있을 수 있는 지금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 보려고 한다. 분명한 건, 나만의 육아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크고 작은 노력들을 계속해 왔고, 그 과정에서 남편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복직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짜인 루틴을 통해 엄마인 내가 안정감을 느끼고 아기도 그 안정감 속에서 어린이집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엄마의 바쁜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