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오빠, 오늘 점심에 시간 돼요?
저 상담 좀 해주세요.
학식을 나오는 길에 한울 오빠를 붙잡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대뜸 상담을 해달라는 나를 보고 오빠가 오히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엥 상담? 무슨 일 있어? 그래그래, 이따 12시에 KI 빌딩에서 보자.”
아침부터 불쑥 상담 요청을 하게 된 것은 불안 때문이었다. 며칠 째 마음이 심상 찮았다.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나아가는, 그러다가도 늘 같은 벽에 부딪혀 도무지 길을 잃은 듯 갑갑했다. 한바탕 몸을 움직이고도 가시지 않는 답답함에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숨통을 틔우지 않으면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은 마음에 결국 한울 오빠에게 SOS를 청한 것이다.
그는 1학년인 내가 보기에 척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태산 같은 어른이었다.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에 왔다는 점도, 평소에 나를 친동생처럼 잘 챙겨주었다는 점에서도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혼자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생각들을 껴안고 잠시 후 우리는 오리연못 옆의 야외 벤치에 마주 앉는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오빠 저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골랐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파란 하늘이 담긴 연못에선 분수가 부지런히 솟아오르고 그 옆으로 오리 한 쌍이 평화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눈이 부시게 찬란한 여름이 오고 있었다.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영을 정말 잘하고 싶어요..!
“오빠 저요, 정말 진지하게… 근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고민. 대나무숲에 비밀을 묻듯 서툴게 꺼낸 나의 고백에 그의 동공이 잠시간 흔들렸다. 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뭐? 아 난 또 뭐라고~ 심각한 건 줄 알았잖아. 수영을 잘하고 싶어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었어? 너 수영에 진짜 진심이구나! 하하하”
그렇다. 나는 수영에 진심이었다.
유난히 수영에 울고 웃는 나날이었다. 스노클이 영 익숙하지 않아 잔뜩 물을 먹다가도 어쩌다 한번 고래처럼 힘차게 물을 내뿜는 날이면 그 한 번에 종일 싱글벙글했다. 자세가 좋다는 선배들의 칭찬에 내심 뿌듯하다가 또 기록이 늘지 않으면 조급해 애를 태웠다. 접영과 배영으로 신나게 앞서가다가 평영에서 금세 따라 잡히고 기분이 고꾸라지는, 도무지 결과를 알 수 없는 IM 레이스처럼 한 바퀴 한 바퀴에 기분이 요동쳤다. 스무 살의 나에게 수영은 이상하리만치 중요하고 잘 해내고 싶은 무언가였다.
나의 고민에 그가 줄 수 있는 답도 그리 뾰족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을 전공하고 수영이라곤 이제 막 나와 함께 훈련을 시작한 것이 전부인 그가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기에도 애매했다. 어쨌거나 그냥 웃어 넘기기엔 사뭇 진지한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나 그는 당황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훈련부장을 찾아가야 했을 고민인가?
“수영을 잘하고 싶어요.”라는 고민 너머엔 더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1학년 첫 학기도 어느덧 끝이 났다. 수영하랴 술 먹으랴 과제하랴 24시간이 모자란 첫 학기를 보내고 봄의 끝자락에 나는 첫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공부를 제법 열심히 했던 터라 4.3 만점에 4.28 정도 되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고 17학점 7개 과목 중에 A+만 무려 6개, 유일하게 A0를 받은 과목도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에게 “이 실험 보고서는 물리실험계의 아주 모범적인 예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분석된 이 보고서를 앞으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두고두고 참고하길 바란다.” 하고 인정받는,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전설과도 같은 성적은 다 남의 이야기이고 나는 첫 학기부터 대차게 학고를 받는다.
학사 경고(學事 警告)
: [명사] 대학이 요구하는 일정 수준 이하의 평점을 받은 자에게 내리는 경고. 카이스트의 경우 3.0 기준이며 이를 넘지 못할 시 등록금 면제에서 제외돼 다음 학기 국가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
나의 첫 학기 평점 2.8. 오해할까 봐 밝히 건대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애초에 착실한 대학생활을 꿈꾸며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그 동아리에 들어간 게 아니던가? 우리의 청춘은 교실 밖에 있다며 반항하듯 결석을 일삼기는커녕 대리출석 품앗이로나마 출석부를 살뜰히 챙겼고, 과제 보기를 돌 같이 하며 보고서 제출을 미루기는커녕 ‘Due Maketh Man’ 파워의 마감충이었다. 시험 때도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금메달 획득에 열을 올리기는커녕 존경과 아부를 가득 담아 교수님께 장문의 편지를 남기는 식의 모범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또 얼마나 잘하게요” 같은 부모님의 변명이 무색할 정도로 나름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3.0을 넘지 못한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내 성적이 아니라 그 수업들이 말이다. 첫 학기로 대학수학, 일반물리, 일반화학, 일반생물, 일반물리실험, 일반화학실험,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다. 이름만 들으면 수학 과학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머지 교양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시간표지만 그건 내 선택이 아니라 모두 정해진 커리큘럼이었다. 신입생들은 전원 무학과로 1년간 29학점의 공통 과목을 수강한다. 무학과 제도는 전공 수업을 위한 기초역량을 쌓고 전공 탐색을 찬찬히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진로나 학업 수준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나에게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처음 일반화학실험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새로 산 실험복처럼 빳빳한 긴장을 안고 강의실로 향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조교가 실험 과정을 소개해 주었다. 각자 실험을 한 뒤 다음 주까지 3쪽짜리 실험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화학 실험이라곤 피펫으로 물을 쭉 끌어올렸다 내려 본 것이 다인 나였다. 그런 내가 두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은 왼손엔 삼발이와 오른손엔 중탕냄비를 들고 실험을 척척 진행하는 것은 물론 보고서 작성을 위한 데이터까지 깔끔하게 확보하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과학고를 조기 졸업했다는 실험 메이트와 랜덤으로 짝이 되어 거의 관찰에 가까운 실험을 했다. 모든 것이 이미 익숙한 듯 뚝딱뚝딱 움직이는 친구들 사이로 나는 실험복만큼 새하얘진 머리로 멀뚱 멀뚱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에서 심화 과목까지 배웠던 일반 생물은 좀 낫지 않을까 기대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강의실, 다행히도 익숙한 내용들이었는데 익숙한 얼굴과 익숙한 발음을 한 교수는 익숙한 내용을 낯선 언어로 가르쳤다. 이 세포의 영어 이름을 내가 왜 외워야 하지..? 4천 학우 모두를 세계 굴지의 생명과학과로 유학 보낼 듯한 열정적이고 맹목적인 영어 수업이었다.
익숙한 생물 수업이 낯선 언어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언어 수업도 있었다. 프로그래밍 수업에서는 한 학기 동안 파이썬을 배우며 휴보 로봇을 움직이는 코드를 짰는데 파이썬은 내가 살면서 배운 가장 짜릿한 언어였다. 나의 휴보는 도대체 왜 앞으로 나아가지도 비퍼를 줍지도 않고 나와 밀당을 하는가? 휴보의 몸짓 하나하나에 내 마음이 요동쳤다. 프로그래밍 수업 때면 매번 제일 늦게까지 강의실에 남아 퇴근하려는 조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갈수록 컴퓨터 본체도 제대로 키지 못해 버벅거리는 휴보가 되곤 했다.
모든 신입생이 나처럼 헤매는 건 아니었다. 여기서 잠깐, 카이스트 신입생들의 백그라운드를 알아보자. 신입생 중 가장 많은 이들이 한국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등학교 졸업생들이다. 영재고는 카이스트 부설 학교로 해마다 많은 신입생을 배출하고, 전국의 약 20여 개 과학고에서 대부분 조기 졸업을 한 학생들이 카이스트에 입학한다. 영재고와 과학고 출신이 전체 신입생의 약 70%를 차지하고 그 외에 외국어고등학교 같은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졸업생들도 있다. 특목고는 해마다 입학생들이 꾸준히 들어오다 보니 선배 동문회도 탄탄하고, 그래서 입학 시즌이 되면 동아리 홍보 자보만큼이나 동문회별로 본교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경쟁하듯 내걸린다.
한편 나처럼 일반계고를 졸업하거나 혹은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도 더러 있다. 일반계고 출신 신입생 비율은 2010년부터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되면서 그해 29.5%로 크게 는 편이라고. 하지만 일반계고에선 신입생이 대거 입학하기는커녕 해를 연이어 입학하는 경우도 흔치 않기 때문에 동문 네트워크랄 것 없이 점점이 떨어진 느낌이다. 처음 부산을 떠나 대전 유학길에 오른 그날의 기분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마트에서 산 이불 한 채를 손에 들고 갓 상경한 시골쥐가 된 기분이었달까, 갑자기 별세계에 떨어진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달까.
특목고 학생 수가 많아서인지 신입생 커리큘럼과 학업 분위기는 묘하게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되었다. 내겐 그저 생소했던 실험과목도 프로그래밍도 영어수업도 이미 익숙한 그들은 어려서부터 일찍 고생한 만큼 그 이력도 이미 별세계였다.
국가대표 과학영재로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았다거나 해마다 손꼽히는 대통령 장학금을 받는다거나 하는 꼬리표는 물론, 당장 내 앞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저 선배는 수학과 과탑이라느니 그 선배 말로는 자기는 열심히 할 뿐 진짜 타고난 최종_천재는 자기 옆의 저 선배라 했고, 그 타고난 천재 선배 말로는 자기 옆의 쟤가 최종_final_영재라고 했다. 카이스트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공과대학이라는데(보고 있나 포스텍?) 가히 수재와 천재와 영재들이 가득한 아침 밥상이었다. 그들에 둘러싸여 콩나물 볶음을 먹는 아침이면 나는 종종 생각했다.
‘이 친구들은 휴보로 비퍼 100개쯤이야 눈 감고도 줍겠지? 공부가 얼마나 쉬울까… 부럽다….’
장기하는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는데 나는 다 부러웠다. 과탑은 고사하고 학고 안 먹은 쟤도 부럽고, 특목고 나온 쟤도 부럽고, 수재 천재 영재 쟤도 부럽고. 나 빼고 다 부러워!!